게임소설 디프마스터

디프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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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3배빠른K
글쓴날 2005-12-23 18:59:24
고친날 2006-02-26 06:58:51
읽은수 5764 [ 3 K ]
제목 【Dif Master】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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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있는 눈을 뜨지 않은채로 잠시 동안 그것들을 음미했다.

손끝에서 간지랍게 춤을추며 기분 좋게 그 따스함을 전해 주고 있는 햇살. 신발 밑으로 느껴지는 풀들은 조금씩 발을 움직이니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연신 싱그러운 향기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마음까지 노곤하게 만들어주는 봄바람의 부드러운 손길, 너무도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갑자기 쏟아 지려는 졸음을 깨워 주려는 듯 연신 귓가에 속삭이는 풀 벌래 들의 울음소리와 여유로운 봄바람의 하모니들

연신 코끝을 맴도는 초록빛 풀 내음과 꽃들이 풍기는 달콤한 향기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봄의 여왕이 된것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을 중단하기 싫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상당히 지나도록 감고 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내 짧고도 긴 인생 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좋은 추억이라고 할수있는 늦봄의 피크닉 때가 이랬었다. 지금은 빛 바랜 수채화처럼 현실감이 없어져서 다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 됐을 뿐인 그 기억 속의 들판에 비해 지금 내가있는 이곳은 너무도 생생하게 내 몸의 감각 하나하나를 자극 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혼자서 이 순간을 느끼고 있지만 내 가슴속에서 부풀어서 터질것 같은 감정만은 그 추억속에 담겨진 아련함을 다시금 떠올르게했다. 그래서인지 건드리면 묻어나올것 같은 현심감을 느끼며 조금씩 추억속에 빠져들어가 버린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치 10살 의 새침때기 꼬마숙녀가 풀밭에서 장난을 치듯이 마음껏 땅바닥 위에서 뒹굴며 봄 햇살의 따스함과 폭신한 풀밭의 감촉을 더욱 가깝게 느끼고 싶어졌다.

하지만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덕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안녕하세요”

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서 왠지 풀 내음이 날 것 같은 상쾌한 예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은듯하면서도 가볍게 귓가에 울리는 왠지 기분 좋아지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져서 나는 그 동안 뜨지 않고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레 천천히 떴다.

눈을 뜨자 제일 처음으로 보인 것은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들판과 만지면 손에 묻어 나올 것 같은 정말 선명한 파랑 색의 하늘 그리고 돌로 된 제단 위에 고고하게 서있는 온통 초록빛의 여자아이.

15, 16세정도 일까? 나보다는 거의 10살은 어려 보이는 아직 소녀라고 불릴 정도의 여자아이였다.
온통 초록색인 원피스에 머리의 색도 선명한 초록색의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가 귀여웠다.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을 ‘그곳’까지 안내해줄 안내인 스프린 이라고 해요.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나는 아직 이곳에서의 이름은 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나의 분신이 되어줄 나의 이름을 소녀는 내가 얼마든지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아요 하는 듯이 그저 나의 눈을 그녀의 커다란 초록빛의 눈동자로 느긋하게 바라보며 나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잠시 후 나는 내 새로운 이름을 결정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천천히 내 눈동자에 각인시키듯이 바라보며 그녀를 향해 작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내 이름을 들은 그 소녀는 나를 미소띈 얼굴로 천천히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요 샹그릴라에-!”

 

 

 

 

 

 

 

 

 

 

 

 

 

 

 

********

그녀가 샹그릴라 라고 하는 게임을 알게 된 것은 며칠 전의 일이였다.

그녀는 그녀의 주치의와 의도하지 않은 의견차이로 감정섞인 다툼을 하게되었다. 그녀의 몸상태는 오히려 그녀의 주치의보다 그녀가 더 잘알고있었다. 살아 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인데 마비되어버린 왼팔과 양다리의 소생을 바라다니 아무리 낙천적으로 살기로 결심한 그녀라지만 터무니 없는 일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고있지만 그녀의 감정은 솜털만큼도 남지않은 희망에 그녀의 남은 모든것을 걸어보라고 부채질하고있었다.

나는 것만이 그녀의 살아가는 의미였으며 그녀의 존재 그 자체라고도 할수있었는데 그것을 포기하라고하니 이성은 납득하더라도 그녀의 감성은 그 사실을 완전부정해버렸다.

사고로부터는 2년이 지나서 그녀가 의식을 차렸고 그 이후로도 시간이 흘러서 1년이라는 시간이 또 지나갔다. 그 동안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그녀 안의 무언가가 며칠 전에 있었던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정기검진 시간에 폭발 해버린 것 이다.

“솔직하고 간단하게 예 아니오라고 대답해 주세요. 나을 수 있어요? 없어요?”

그녀가 벌써 10년이 넘게 보아온 의사의 두꺼운 안경 뒤에 보이는 두 눈에 복잡한 감정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미안함, 안타까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온 무력감등 의사의 두 눈에 가득 찬 것들을 감정에 북박쳐서 떼쓰고있는 아이같이 다른것은 아무것도 생각할수없었던 그녀는 깨닫지 못했다.

다만 의사의 굳게 다문 입에서 어서 빨리 대답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굳게 쥐고 있던 주먹때문인지 파고든 손톱덕에 조금씩 피가 배어 나오는것도 깨닫지 못한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나을수있는 확률이 분명 있기야 하네만···”

의사는 눈가에 맫힌 땀을 닦으려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눈가를 쓱쓱 문질러서 닦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시선을 피하면서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그 확률이 너무 낮네, 아니 낮은것은 둘째 치고 자네의 생명을 걸어야하네 높게 잡아봐야 채 5%가 넘지 못하는 확률에 만약 실패하면 자네의 목숨이 위험해져!”

원래는 이런 절망적인 이야기는 환자에게 하는것이 아니다. 확률은 다만 확률일 뿐이고 그런 확률을 무시한 완쾌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도 환자에게 낫고자 하는 의지가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을수있는 확률이 5%도 안된다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것을 환자가 알게된다면 나을수있는 것도 낫지 못한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환자라면 절대 이런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환자가 아니였다. 10년전 그녀가 아직 무명이였을때 우연히 만나 그녀의 전속 주치의가 되어서 알게된 그녀의 집착과 열망···그것을 의사는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두리뭉실한 이야기로 헛된 희망을 주느니 냉혹한 현실을 알게해 적응하게 하는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 하는 일임에도 의사는 여자를 쳐다볼수 없었다. 자신만을 믿고 힘든 치료를 1년이나 참아왔는데 여자의 몸상태는 좋아지기는 커녕 나빠지기만 했다. 결국 의사는 그녀가 가장 듣기 싫어할 대사를 할수밖에 없었다.

“그런 위험한 수술 나는 절대 허락할수없네”

하지만 여자는 그런 의사의 의견은 관심 밖이였다. 다만 그 수술 성공확률5%라는 확률만이 그녀의 관심을 끌수있었다.

“5%라면 충분히 걸어볼만 하네요. 어차피 제대로 움직이는것도 하지 못하는 이런몸으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그 5%의 확률에 걸어보겠어요. 뭐 실패해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그때까지 자꾸만 그녀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를 피해왔던 의사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 보았다. 그 불타는듯한 노기띤 시선을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어허···, 일단 그말은 안들어둔것으로 하겠네, 자네도 눈이있다면 여기 책상위에있는 검사결과를 보게나”

여자는 책상위에있는 필름들을 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질리도록 외울정도로 봐온 검사결과였다. 그저 의사의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의사의 두눈을 지긋이 쳐다보고만 있을뿐이였다.

“자네의 양다리는 멀쩡하다네. 다만 자네가 다친곳은 척추일세 척추가 거의 양단될 정도의 사고였지 않나? 그 사고의 충격으로 온몸의 신경이 죄다 조각조각났다네 오른팔로 이어진 신경이 무사하다는것은 둘째치고 즉사하지 않은게 신기할정도의 엄청난 중상이네 자네의 왼팔과 양다리를 소생시킬려면 온 몸의 신경을 일일이 다 이어줘야 한다네 지금 몇달째 아무것도 못먹고 인공장기와 링게르로 겨우 생명만 유지하고있는 자네의 몸이 버티지를 못하는 대수술이란 말일세! 이론상으로는 성공확률이 5%라고하지만 지금 자네의 바이탈사인을 봤을때 성공률은 0.1%도 되지 않을걸세”

성공률이 5%에서 0.1%로 순식간에 1/50로 변했다.

하지만 애초에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결심을 하고 실패할것을 전재로 그녀는 의사에게 수술을 요구했다. 지금에 와서 그 확률이 얼마나 낮아지던 그녀의 결심을 흔들수는 없었다.

“확률같은것은 관계없어요. 만약 확률이 0%라도 저는 하겠어요 어차피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것 자체가 기적이잖아요 그 기적이 낳은 최후의 기회란 말이에요 전 절대로 놓칠수는 없다고요. 그 수술이 힘들다는것은 저도 장님이 아니니까 잘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운선생님한테 부탁드리는거잖아요. 몇번이고 제 생명을 살려주신 운선생님이라면 제 목숨을 건 마지막 기회 빼앗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휠채어 옆에 걸려져있는 작은 가방에서 종이봉투 한장을 꺼내서 운선생님께 내밀었다. 그 종이 봉투의 표지에서 ‘유서(遺書)’라는 한자가 적혀있는것을 발견한 운성생은 잠시 할말을 잃었는지 가만히 그 봉투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도 몸을 움직이는게 좋으냐?”

“네”

“어떻게 해서든 하늘을 날고 싶으냐?”

“두말하면 잔소리죠 전 그것을 위해서라면 하나뿐인 생명이라도 전혀 아깝지 않네요.”

“비록 그것이 단순한 환상일뿐이라고 괜찮으냐?”

“네?”

그녀는 운선생의 말을 잠시 이해할수없었다. 그녀는 몸을 움직이고 자신의 몸으로 공중그네를 타며 자유롭게 나는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런데 그것이 환상으로서 가능하다니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다.

“자네가 수술에 목숨을 걸지 않더라도 걷고 달리고 자유롭게 움직일수있고 그렇게 좋아한다는 공중그네도 마음껏 탈수있지 자네의 특기라는 아크로바트도 얼마든지 마음껏 할수있다네.”

그것들이 목숨보다도 더 좋았다. 그렇기에 그것들을 할수없게된 지금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포기일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가능성은 극도로 낮은 가능성의 수술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제로에 가까운 낮은 확률의 배팅에 손을대어 죽게되더라도 자신의 이상을 위해 죽는것이기에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배팅에 손을 대지 않아도 그것들이 가능하다고 의사는 말을했다. 번개가 치듯이 흥분된 마음에 그녀는 손에 들고있던 가방이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는 사실마저 눈치채지 못했다.

“네? 가능 한건가요? 도대체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할수있죠? 제 몸은 지금 제 의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져있어요 마치 제 살이 아니라 밀납으로된 팔과 다리를 달고있는것처럼 칼로찔러도 전혀 아프지 않아요. 수술을 하지 않고 그런일이 정말로 가능한건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왠지 몸이 떨리는것을 멈출수없다 운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주문처럼 그녀의 가슴속에 각인되어서 몸에 무언가 알수없는 기분을 조금씩 불러온다.

“마치 천국(Shangri-La)같네요···”

그리고 흰가운의 의사는 천천히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웠다.

“자네의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더라도 상관없네 자네가 눈이 안보이는 장님일지라도 듣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환상안에서는 모두 정상인, 아니 그 이상의 자유를 만끽할수있네 그래 비록 환상일 뿐이지만 현실보다 더욱 현실같은 환상 바로 가상현실을 말하는거라네.”

“가상현실이라구요?”

“그렇네, 가상현실은 비록 환상일뿐인 허구이지만 자네가 하고싶고 원하는일이 무엇이든 가능하다네, 아 그렇지 자네가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한 지난 2년간 아주 유명해진 가상현실 게임이 있네 그 이름이 아마 샹그릴라라고 하지.”

가상현실이라니 그녀는 몰랐었다.

그런것은 전혀 생각도못하고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2년전에는 매일같이 공연,촬영,훈련등으로 매일같이 바뻤고 몇년전에 무슨 가상현실 어쩌구하는 기계의 개발자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던적이있었는데 특별히 신경쓰지않았었다.

가상현실은 단지 환상일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던것도 이미 환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결코 가 닿을수 없는 멀고먼 이상향일뿐인 환상으로 말이다.

아마 이대로 그녀는 그 환상의 그림자만을 쫒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상현실게임이라는것으로 그녀가 원하던것을 환상일뿐이라도 할수있다?

정말 그런게 가능한것일까 하는 의문으로 그녀의 머리속은 가득차버렸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가상현실이란게 도대체 뭐죠? 그리고 가상현실 게임이라는것은 또 뭐구요?”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조그마한 희망이라는 감정이 싹트고있는걸 느낄수있었다.

아마 운선생이 성공률 0.1%의 수술을 지금에 와서야 허락한다고해도 그녀는 할수있을 것이다. 이미 희망이라는 달콤한 과육을 맛본 직후이니 말이다.

“아 자네 인터넷 할줄은 아나?”

인터넷은 당연히 할줄 안다 몸도 제대로 가눌수없던 요 몇달간 가끔 휴대용 단말기를 이용해 몇번 해본적이있다. 채팅같은것도 몇번해본적이있다.

“다..당연하죠!!”

“그럼 여기서 뭘 이러고있나 인터넷에 샹그릴라 딱 한단어만 쳐보게나 수만개의 웹들이 자네를 반겨줄것이네”

그녀는 책상위에 올려져있던 유서를 챙기는 것도 잊은채 휠체어의 출력을 최대치로해서는 단숨에 집에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몇일이 지나 지금 이순간.

“대…대단하다.”

그녀의 입에서는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뿐이 나오지를 않았다 몇일동안 웹상에 올라온 모든 정보를 조합해본결과 샹그릴라는 정말 완벽한 가상현실게임이였다, 오죽하면 가상현실대신 리얼현실이라는 별명까지 있지 않겠는가?

그녀는 단숨에 가상현실 다중 접속 온라인게임 샹그릴라(Shangri-La)를 즐길수있는 단말기중에서 가장비싸다는 HSLS-1010bb을 주문해버렸다. 거의 20만달러에 가까운 고가의 기계였다.

고작 컴퓨터에 연결해서 게임을하는 게임단말기일뿐인데 엄청난 가격을 자랑한다는점은 그녀에게 전혀 장애가 아니였다. 어차피 그녀에게 돈이라면 차고 넘쳤다. 그녀가 특별히 돈을 쓰는데 관심이 없다보니 스위스 은행에 쌓이기만하는 엄청난 출현료들에 로얄티에 갤런티들이 수백만 달러가 넘게쌓여있었고 그의 몇배에 달하는 보험금마저 그녀의 집안에 휴지조각처럼 굴러다닌다. 어차피 수술에 실패해서 죽게된다면 일가친척하나없는 그녀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돈들인데 얼마를 쓰던지 무슨 상관일까? 20만 달러가 아니라 200만달러라도 망설임 없이 구입했을게 틀림없다.

“우하!!!왜 이렇게 안오는거야아?”

주문을 한지 벌써 3일이 넘었고 오늘 1시까지 오기로했는데 벌써 시계는 오후 1시 5분을 가리키고있다. 1초가 지날때마다 그녀의 온몸에 뛰고있는 맥박의 두근거림에 천국(Shangri-La)에 접속도 하지 못하고 천국(heaven)에 가버리는거 아냐하는 생각까지 들정도다.

‘아 정말이지 이 미쳐버릴것 같은 두근거림은 내가 처음으로 공중그네를 타고 50m상공을 날았을때의 그 심정과 동급이잖아’

초조하게 어두운방안에서 그녀는 시계의 움직임만을 주시했다, 1초.1초. 초침의 움직임이 계속될수록 더욱 그녀의 심장은 가속을 거듭했다.

그 가속이 절정에 달했을때

딩동

벨이 울렸다.

 

 

 

 

 

 

 

 

 

 

 

 

 

 

 

 

*****

“수고하셨습니다-!”

설치는 그녀의 생각보다 빨리끝났다. 단말기는 생각보다 정말 컸다. 역시 최고급 승용차 한대가격인 만큼 샹그릴라 접속용 단말기중에서도 최고의 가격과 크기를 자랑한다고 했는데 거의 방에있는 침대만한 크기를 자랑했다.

배달원은 기계치인 그녀가 이것저것 깐깐하게 묻는것에 일일이 성심껏 답변해주었고 그에대한 답례로 그녀는 아껴두웠던 베노아티와 과자를 간식으로 대접했다. 사실 아껴뒀다기보다는 먹지 못한것이지만 뭐 상관없잖아?

상당히 교육이 잘되어있는지 배달원들은 설치와 설명을 마치고 다른사람들이 그렇듯이 팁을 요구하지도 않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배달원이 돌아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을 그녀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팁을 달라고한걸 잊어먹었네 어쩌네 하는 잡담이겠거니 하며 신경을 안쓰기로 했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것은 바로 앞에있는 바로 이것 아니겠어!!

“생각보다 귀엽네~♪”

단말기라고 하기에 그냥 무슨 관들이 잔뜩 달려있는 투박한 모양을 상상했는데 마치 포르쉐같은 고급 스포츠 카를 보는듯한 빼어난 디자인이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왠지모르게 네모난 상자안에 들어가서 누운후 뚜껑을 닫는다는데서 뱀파이어들이 잠을 자는 관이 연상되기에 약간의 추가금을 내고 이것저것 추가적으로 딜리케이션한 조형들을 주문했는데 역시나 완성품은 사진으로 볼때보다 몇배는 더 그녀 마음에 들었다.

대략 수치로 환산하면 3배정도?

얼굴을 대고 문지작 문지작 해보니 금속특유의 싸늘한 감촉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최고급 스포츠카에서나 느낄수있는 매끈한 곡선미에 완전히 빨갛게 도색되어 마음을 흔드는 색상 게다가 세계적인 조형가가 새겼다는 멋드러진 날개의 무늬까지 전부 그녀의 취향을 완전히 고려해서 만들어진 디자인이기에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이 단말기를 이용하여 다시금 날수있기를 이란 마음을 담아 주문한 알바트로스의 날개모형을 쓰다듬다고 있으니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날수있을것 같은 생각에 절로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단말기를 이리쓰다음고 저리쓰다듬고있다보니 불현듯 그녀의 생각에 스치고지나가는 한마디의 말.

접속은?

“아차~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잖아, 내가 잠시 내 보물2호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정작 중요한걸 잊어 먹어버리다니 이런일 있을수없다구~”

참고로 보물1호는 그녀의 몸이다.

그녀가 넉놓고 방금 레드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단말기를 바라보는사이 시간은 1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자자 일단 작동시켜보자고.

그녀는 좋아하는것은 아껴먹는 버릇이있지만 이 이상 지체하다가는 아예 오늘은 접속도 해보지 못하고 끝날것 같아서 일단 다른것 다 제쳐두고 이 단말기를 작동부터 시켜보기로 했다.

“일단 단말기의 내부에 누워서 단말기의 뚜껑을 닫은후 완전차폐를 시키면 넷에 접속하거나 샹그릴라에 접속하는것이가능하다라,일단 기본적인 OS는 설치되어있고 모든조작은 음성인식으로 사용가능하니 가능하면 처음사용할때 자신의 음성을 등록해서 오토락을 걸던지 아니면 홍체인식이나 지문인식등 여러방면으로 보안설비가 가능한거구나.”

스윽스윽 대충대충 넘겨가며 설명서를 읽고는 바로 단말기에 누웠다.

휠체어에서 한손만으로 침대에 올르는것은 그녀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일이기에 별로 어렵지 않았고 그녀의 침대 이상으로 단말기 내부는 푹신했다.

“푹신~푹신~”

“어디 그럼 처음은 단말기의 차폐부터라고했지?”

“내부 차폐 개시”

그녀가 설명서에 나온대로 단말기의 AI에게 명령하자 자연스럽지만 왠지 감정이 결여된듯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완전 밀폐까지 앞으로 5초남았습니다.]

[4]

[3]

[2]

[1]

[완전 밀폐 완료.]

어차피 자신이 혼자서 쓸 단말기이지만 혹시 모르는일이기에 그녀는 일단은 암호부터 걸기로 하고는 AI에게 말을 걸었다.

“좋아, 좋아, 레드와인 이제부터 내가 너의 주인이야 인증방법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전부 부탁해.”

[라져- 마스터 레드와인이란것은 저를 부르는 호칭인것입니까?]

‘이거이거 대단하잖아?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것뿐 아니라 말에 대답까지 하고있는데? 이거 단순히 단말기에 딸린 덤같은 A I라고 생각했는데 학습능력까지 있다는거잖아?’

그녀는 단말기의 AI가 그냥 1이라는 것을 입력하면 “일”이라고 대답하는 단순한것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뛰어난 물건이 달려있기에 역시 비싼게 좋은것이라는 만고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깨달을수있었다.

“그래. 하여간 난 어서 샹그릴라에 접속하고 싶으니 어서 등록을 끝내줬으면 싶어.”

[긍정- 최우선 사항으로 등록하겠습니다]

빨간 불빛이 몇번 눈앞에 왔다갔다하더니 잠시동안 전신스캔이 이루어졌다. 성문인식이나 지문인식같은 간단한 방법도있겠지만 그녀는 이런 재미있는 장난감은 보안도 철저해야지라는 생각이기에 가능한한 모든 방법으로 주인등록을 하기로했다.

[하이브리드 전신 스캔 완료, 동시에 마스터 인식완료되었습니다. 마스터 다음 명령을]

단말기에 달려있는 AI는 그녀의 생각보다 뛰어난 아무 엄청난 물건이였지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것은 그런것이 아니라 어서빨리 샹그릴라에 접속하는것이였다.

그녀는 레드와인과의 수다도 즐거울듯 싶어서 왠지 자꾸 말걸고 싶어졌지만 일단은 접속부터 해보기로했다.

“자 그럼 바로 샹그릴라로 접속 개시-!!!!”

[옛스 마스터]

레드와인이 무언가 작동하는지 우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하는 접속인데다가 다른 작업에 비해 처리량이 월등히 많아 약간의 로딩에 시간이 몇분가량 소모되었다.

[랜(LAN)연결 클리어, 핑값 양호 하이퍼 소울 링크 시스템 정상 작동 확인]

그녀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레드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샹그릴라 정상 로그인 완료 접속 시작합니다.]

그녀는 분명 단말기 레드와인 안에 누워있었는데 어느샌가 어딘가에 서있었다.

서있었다고?

분명히 그녀는 서있었다. 마치 밀납인형 같던 다리에 감각이 돌아와있다. 그것도 너무도 예민해서는 차분히 불어오는 따스한바람의 간지름마저도 뼛속 깊이 느끼고있었다. 아아- 이 따스함 정말 너무도 그립다.

잠시동안 아주 잠시동안

감고있던 눈을 뜨지 않은 채 잠시 동안 그녀는 그것들을 음미했다.

***************

그녀의 대답을 들은 초록빛 소녀 스프린은 정말이지 그 이름그대로 봄같 따스한 향기가 날것같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크레르님, 당신을 기다리고있었어요.”

그녀의 이곳에서의 이름은 크레르. 아름답고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있지만 날수없다는 전설상의 새 알바트로스와 대립하는 존재인 작고 더러운 검은까마귀. 모든것이 알바트로스에 비할데 없지만 까마귀는 저 창공을 마음껏 날수있는 한쌍의 날개를 가지고있다. 그것이 바로 크레르. 지금부터 존재를 증명해줄 그녀 자신의 이름.

‘자 나는 오늘 이순간부터 검은 까마귀들의 프린세스라고 하는 크레르가되어 샹그릴라의 창공을 마음껏 날아주겠어’

왠지 모르게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그녀는 그런 웃음을 감출생각이 전혀없다.

지금 그녀의 앞에서 상큼한 웃음을 짓고있는 스프린과는 비교할수조차 없을 어두운 웃음. 그런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녀 역시 스프린을 향해 인사를했다.

“안녕? 나야말로 잘부탁해 스프린.”

 

 

 

 

 

 

 

 

 

 

 

 

 

 

크레르는 여전히 자신을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있는 스프린을 향해 인사를 했다. 스프린의 크고 맑은 초록빛 눈동자가 한순간 반짝였다.

“저는 봄의 수호자, 당신처럼 천국을 원하는 여행자들을 석양의 문까지 인도하는 노세스의 4명의 아이중 가장 큰 언니이자 당신과 같은 이모탈의 가호를 거부하고 모탈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황혼의 여행자를 축복해주는 역활을 맡고있어요”

그리고는 봄의 아이는 초록색 원피스의 끝자락을 잡고 크레르를 향해 우아하게 인사를했다. 그러자 치마자락이 만든 상쾌한 바람에서 기분좋은 풀내음이났다.

“황혼의 여행자들은 그 수가 굉장히 적어요, 여명의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제 3명의 자매들은 3명이서 같이 일을 하는데도 매일같이 바쁜데. 저는 혼자서 일을 하는데도 언제나 한가하답니다, 가끔 잠시도 쉴틈없이 일하는 동생들이 저를 부러운듯 쳐다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에요. 저희 자매들은 여행자들을 안내해주는 일에있어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이 순간 크레르님을 안내 할수 있어서 정말 기쁘답니다”

스프린은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는 듯이 크레르에게 말을 했다. 안내자의 사명은 여행자를 신전에있는 문까지 안내하고 샹그릴라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것들을 여행자들에게 알려주는것이다. 그런데 정말 오랫만에 자신이 맡은 여행자가 찾아온게 기뻐서 스프린은 자신의 사명도 잊고 수다를 떨기시작했다.

크레르가 보기에도 스프린은 정말로 즐거워보였다. 스프린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정말로 자신의 맡은 사명에 자부심과 즐거움을 가진 사람이나 지을수있는 그런종류의 미소였다. 마치 현역때의 자기 자신과 똑같이 보일정도로..

“크레르님은 정말로 엘리시움을 좋아하시나봐요, 황혼의 여행자분들은 많은 패널티를 가지고있어요. 그렇기에 지금까지 거의 모든 유저분들은 여명을 선택했지요. 이모탈의 축복을 받은 여명은 그 외에도 많은 메리트가있어요. 황혼의 여행자가 갖는 단 하나의 메리트를 위해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큰것들이죠. 그렇기에 황혼의 여행자의 수는 고작 6명뿐이 안된답니다. 아, 이제 크레르님까지 7명의 황혼이 존재하는것인가요?”

자신의 사명인 안내는 하지 않고 왠지모를 신세한탄과 푸념을 크레르는 묵묵히 듣고있었다. 스프린은 마치 동생을 보는것처럼 귀엽고 자신의 사명에 자부심을 가지고있어서 빛나보였다. 그렇기에 푸념하는 모습마저도 귀엽게 보여서 크레르는 고개를 끄덕 끄덕이면서 가끔 응 그러니?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조용히 스프린의 말을 듣고있었다.

그런데 황혼과 여명의 여행자에 대해서와 선택한 기억은 없지만 어쩌다보니 자신이 속하게 된것으로 보이는 여명의 여행자가 갖고있다는 패널티라는 것에 와서는 가만히 있을수없었다. 크레르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자신의 꿈을 위해 이 샹그릴라라는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러던 도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혼이라는 것에 속하게되었다. 그런데 저 패널티라는 것이 자신을 속박하게 된다면 말도안되는 본말전도다.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고 가만히있을수는 없었다.

“무..무슨 소리야? 황혼의 여행자는 또 뭐고 여명의 여행자는 또 뭐야? 내가 왜 황혼의 여행자라는것이 되어서 패널티를 잔뜩 받아야되는건지 난 말 한마디도 못들었어!”

그때까지 기쁘게 재잘거리던 스프린의 안색이 바뀌었다.

“네? 크레르님은 황혼의 여행자를 선택하시고 이곳에 오신것이 아니신가요?”

스프린은 정말로 당황했다. 하도 오랫만에 맡게된 임무이다보니 들뜬 마음에 이런저런 수다로 재잘거리는 자신을 보고 화내기는 커녕 어린 동생을 보듯이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저 크레르라는 여행자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 같은 동류에게서 느껴지는 동질감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크레르는 황혼도 여명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크레르가 이곳에 있는것은 무언가 착각이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황혼과 여명에 대해 자세히 들으면 정말로 이 세계(Elysium)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명을 선택할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실망이되었다. 크레르의 첫인상이 좋았기에 더욱더 실망했다. 스프린은 고개를 푸욱 떨구고는 크레르에게 말했다.

“저기, 크레르님은 황혼의 여행자와 여명의 여행자에 대해서 모르시는것인가요….?”

“그래, 난 그런거 한마디도 들은적 없는걸”

스프린은 괜히 혼자서 기뻐서 좋아한 자신이 창피해서 죽을것만 같았다. 아마도 크레르는 무언가의 착오로 이 봄의 신전에 잘못 오게된듯 싶었다. 그런데 혼자서 당연히 이곳에 왔으니 황혼의 여행자겠거니 하고 지례짐작하고 수다만 떨어대다니 자신은 인도자 실격이다. 아무리 엘리시움을 좋아하고 그래서 황혼의 여행자를 선택한 사람이라도 자신같은 덜떨어진 인도자가 맡은 황혼은 선택하기 싫겠지..왠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글썽거리는 눈망울에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것을 억지로 참는것을 보며 크레르는 무엇이 잘못된건지 천천히 생각을 해보았다.

크레르는 여명이 무엇인지 황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마도 이 게임(샹그릴라)에서 기본적으로 선택하는 무언가이겠지만 일단 게임에 접속부터 하고보자는 생각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기계가 오자 바로 접속부터 한것이 큰 실책이였다. 샹그릴라의 전용단말기에 자신의 신상정보를 등록하는것 만으로도 특별히 계정과 패스워드를 입력할 필요없이 게임에 접속이 가능하다기에 생각없이 접속부터 해버렸다.

‘설명서에는 그런거 선택해야된다는 말 없었단말이야~’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저 귀여운 소녀를 울린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신이 아니던가? 일단 울음을 그치게 하는것이 최우선 사항으로 보였다.

“저기,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황혼의 여행자가 무엇인지 여명의 여행자가 무엇인지 모르는것은 내 잘못이야 내가 샹그릴라에 접속하는것에만 신경쓰느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한거라고 그러니까 스프린 너는 잘못한거 하나도 없는거야 스프린 너는 나를 인도할 인도자라고 했지? 그럼 여기서 네가 해야될일은 나한테 황혼과 여명에 대해서 설명해주는일 아니겠어?”

크레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혼자서 훌쩍이던 스프린은 그제서야 자신이 해야될일을 깨달았다.

“저…그러니까요 크레르님은 무언가의 착오때문에 여기로 오시게된거 같아요….원래 여명과 황혼을 선택하고 그후에야 여명을 선택한 여행자분들은 제 여동생들이 각각 맡고있는 여름의 신전과 가을의 신전 그리고 겨울의 신전으로 가게되고요 황혼을 신청한 분만이 제가 맡고있는 봄의 신전으로 오게되요, 아마도 제 설명을 듣게 되시면 당연히 여명을 선택하시겠지만…제 여동생들은 정말 훌륭한 안내자랍니다. 저보다도 훨씬 더 능숙하게 크레르님을 안내할수 있을꺼에요…”

스프린도 자신이 담당하고있는 황혼이 단 한가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것을 희생하고있는지 잘 알고있었다. 그렇기에 설명을 들으면 당연히 크레르도 여명의 여행자를 선택할것이 분명했다.

“뭐 잘못 생각한거 아니야? 난 아직 황혼이 무엇이고 여명이 무엇인지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어, 아무리 다른사람들한테 여명이 좋다고 해도 그게 나한테까지 적용될지 아닐지는 모르는일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여명을 선택할지 아니면 스프린 네가 담당한 황혼을 선택할지는 일단 네 설명부터 듣고 결정하기로 할께”

그러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차 스프린, 나를 크레르 님이라고 부르는것좀 어떻게 해주겠어? 왠지 님이라는 단어 거부감이 좀 든단말이야 뭐 그냥 친근하게 언니라고 부르는게 어때?”

스프린은 크레르 같은 여행자는 처음이였다. 자신들 네 자매는 그저 단순한 안내자일 뿐이다. 그저 이 세계에서 머물 여행자와 스쳐지나가는 작은 인연일뿐이다. 그런 자신에게 친근하게 언니라고 부르라는 사람은 처음이였다. 게다가 울먹거리는 자신에게 억지로 위로해주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는것도 아니였다. 그저 자신의 사명대로 해줄 설명을 기다리며 그에따른 결정은 자신이 내린다. 스프린은 크레르의 첫인상을 수정하기로 했다. 단순히 마음에 드는정도가 아니라 마스터로 섬기고 싶을정도의 사람이다. 자신이 존재하고 나서 말 몇마디 나눈것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빼앗아간 사람은 저 사람이 처음이다.

“예…언니….”

너무 좋은 울림이였다. 여행자와는 거의 만나지도 못하고 바쁜 동생들과도 거의 만나지 못한다. 동생들과 가끔 만나더라도 스프린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아서 언니라고 불르는 존재는 있어도 자신이 언니라고 불르고 의지할 존재는 없었다. 왠지 따뜻해지는 기분에 언제 울었냐는듯이 처음의 상쾌한 미소로 돌아와서 다시금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의 설명을 다 듣고난후 언니는 여명을 선택할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언니를 이어준 여행자와 인도자라는 작은 인연의 끈도 끊어질것이다. 하지만 아마 이 만남을 자신은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언니라고 부르도록 허락해준 여행자니 말이다.

“황혼의 여행자는 단 하나의 메리트를 위해 많은 리스크를 떠안고있어요 일단 가장큰 리스크는 이모탈의 수호를 거부한 그들이기에 단 한번의 죽음이 영원한 죽음이라는데 있죠”

엄청난 리스크였다. 게임을 하다보면 고의든 타의든 죽을수있다. 샹그릴라라는 게임의 배경은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 세계이다.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르고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지켜야하는 생존게임이다. 그런데 죽으면 끝이라니 황혼이 안고있는 리스크는 그것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엄청났다. 그리고 스프린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비록 여명의 여행자는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수있어요. 다만 엄청난 손실과 어마어마한 돈이 들기는 하지만 아예 완전히 죽어버리는 황혼에비하면 훨씬 유리한 조건이죠. 게다가 황혼이 안고있는 다른 리스크는 바로 모든것이 아날로그라는데에 있어요. 여명의 여행자들은 같은 여행자끼리 귓속말을 주고 받거나 아니면 자신의 능력치를 수치로서 볼수가있죠. 그리고 각종 무기물들을 인벤토리라고 하는 다른 차원의 공간에 일정수까지는 집어 넣어서 보관할수가있어요. 하지만 현실감만을 극대화 시킨 황혼의 여행자들에게는 그런것들은 전부 불가능하죠”

크레르는 스프린의 설명을 듣던 도중 한 단어가 신경에 쓰여서 스프린의 말을끊고 그것에 대해 물었다.

“황혼은 현실감이 극대화 되어있다고?”

“네 그래요, 황혼의 여행자는 현실감만을 위해서 게임만이 가지고있는 많은 메리트를 포기하고 마치 또 하나의 현실과 같은 극도의 현실감(reality)를 얻었어요. 극도의 현실감을 위해 특수 제작된 단말기로만이 접속이 가능하고 그 현실감덕에 잘못하다가는 쇼크로 실제로 죽는일이 발생할수도 있어요 게다가 게임상의 PC(PLAYER CHARACTOR)는 언니 바로 그 자체가 되는거에요”

극도의 현실감? 크레르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비록 몇가지 패널티들이 신경에 쓰였지만 그런것은 별로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극도의 현실감이라는 단어가 주는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여명의 여행자들은 게임상에서의 수련을 통해 강해질수가 있어요. 전사는 전투를 통해 근력을 기르고 마법사들은 수련을 통해 자신의 스톡(STOK)을 늘리고 그에따라 더욱 고위의 마법을 사용할수 있게해요. 그러니까 간단히 예를 들자면 여명의 여행자중 성직자가 된사람은 단지 기도와 성물을 통해서 신성 마법을 쓸수있어요, 그 사람이 아무리 나쁜사람이던 나쁜 일에 사용하던 그것은 사용자의 자유이죠. 하지만 황혼의 여행자는 그런것이 불가능해요. 실제로 신성마법을 쓰기에 적합한 심성을 가지지 못하면 절대로 성직자가 될수 없어요. 그러니 황혼의 여행자가 게임에서 강해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현실에서 수련을 하고 마법을 쓰기위한 수식을 외우며 독실한 신앙인이 되어야해요. 여명의 여행자의 캐릭터는 현실에서 아무리 체력이 없고 머리가 나쁘더라도 게임을 많이하면 강한전사도 막강한 마법사도 될수있지만 황혼의 여행자는 그것이 불가능해요. 황혼의 여행자를 선택한다면 그 캐릭터는 단순히 게임 캐릭터가 아닌 언니 바로 그 자체가 되는것이죠, 이것이 바로 황혼의 여행자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자 극도의 단점인 무한의 현실감(Unlimited reality)이에요”

아직 스프린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 짧은 설명만으로도 크레르는 자신의 방향을 정할수있었다.

“정했어 스프린”

스프린의 안색이 바뀌었다.

“네?….역시 언니도 여명의 여행자를 선택하시는거네요…네….저도 잘 알아요 황혼의 여행자가 얼마나 많은것을 포기해야 하는지를요…저한테 선택하라고해도 여명을 선택했을걸요…”

“스프린, 침울해 지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누가 언제 여명을 선택한다고 그랬니? 나는 황혼의 여행자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고 한거라고?”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였다. 크레르가 원한것은 게임을 즐기는것이 아니라 게임에서 자신의 몸으로 움직이고 아크로바트를 하고 공중그네를 타는 현실감을 원한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무한의 현실감이라니, 수십개의 패널티를 무시하고도 충분히 선택할 가치가있었다.

“에?”

스프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로 기뻤다.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만나는 마음에 드는 여행자였다. 그런 여행자와의 인연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수있다니 언니에게 뛰어가서 안기고 싶은게 솔찍한 심정이였다.

하지만 단순한 의사 이외에도 한가지 조건이 또 있었다.

“저기, 언니- 황혼의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 한가지 필요한것이 있어요”

아무리 극도의 현실감을 위해 황혼의 여행자가 되려는 여행자들을 가로막는 큰 벽이였다. 그랬기에 수만명의 이용자가 있는 샹그릴라에서 단 6명만이 황혼의 여행자인지도 모른다.

“필요한것이라니?”

“극도의 현실감을 위해서 필요한것은 특수 제작된 하이퍼 소울 링크 시스템이 탑제된 단말기에요, 즉 HSLS씨리즈에요. 그런데 그 단말기의 가격이 일반 플레이 용보다 몇백배는 비싼걸요…”

빙고

크레르는 싱긋하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할정도로 기분 좋게 웃었다.

“역시 비싼 값어치는 하네? 내가 무슨 단말기로 접속했을꺼라고 생각해? HSLS-1010BB, HSLS씨리즈의 최신예 기종이라고,20만 달러나 하더라구. 이 정도면 충분한거 아니니?”

조건은 완벽했다.

 

 

 

 

 

 

 

 

 

 

 

 

 

 

*******

스프린의 설명은 얼마간 계속되었다. 황혼의 여행자가 엘리시움을 여행하는데 꼭필요한 기본적인 것들과 간단한 수칙들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필요한것의 극히 일부분조차 되지 못한다. 더 자세한것은 직접 엘리시움에서의 생활을 통해 직접 습득해 나가야 할것이다. 이제 크레르가 엘리시움으로 가게되면 의지할것은 아무것도 없어진다. 다른 여명의 여행자들이 동료들과 인스턴트 채팅을 한다거나 멀티 BBS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등의 뉴비(NEWBE)가 도움을 받을수있는것들이 황혼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치 물가에 던져진 아이처럼 모든것을 혼자서 헤쳐나가야만 한다. 스프린은 하나라도 더 언니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 싶은 마음에 뉴비인 크레르가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용어까지 잔뜩 써가면서 이런것 저런것을 크레르에게 설명했다.

“그리고요, 언니가 직업을 얻고자 한다면 여명의 여행자들이 받는 간단한 전직시험이 아닌 훨씬 더 어려운 네이티브들이 받는 더 고난이도의 시험을 봐야해요 여명의 여행자와 달리 황혼의 여행자는 네이티브와 거이 동일한 조건을 받기때문에 그 전직시험은 통상 3배는 더 어렵다고 보시면 되거든요”

결국 크레르가 폭팔했다.

“으왁! 그런설명 들어봐도 이해가 전혀 안된다고! 전직이 어떻고 네이티브가 어떻고 난 그런 단어 전혀 처음들어 보는걸”

“그러니까 전직이라는것은요 일단 여행자는 처음 엘리시움으로 접속하면 아무런 직업도 없는 초보자(뉴비)상태인것이에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엘리시움의 세계에 적응을 하시면 엘리시움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업들은 선택하고 그 직업이 되기 위해서 수련을 하는것이 전직이에요. 직업이 여러개일수도 있고 아예 없을수도 있지만 그것은 언니의 자유이고….또….”

또다시 설명이 길어질려고 하자 크레르가 스프린의 말을 끊었다.

“설명은 거기까지!”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설명은 거기까지 하기로 하자. 나는 말이야 조금이라도 빨리 샹그릴라에 접속하고 싶단말이야 스프린 네가 나를 생각해서 이것저것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것은 나도 기쁜일이지만 어차피 너와는 또 사계절의 여신의 신전으로 찾아가면 만날수있지 않니? 그러니까 자세한것은 다음번에 설명해 주기로 하고 일단 샹그릴라로 안내해 줫으면 좋겠는데”

그제서야 스프린은 어째서 이렇게 크레르에게 지금 당장은 쓸모도 없는 설명은 주구줄찰 늘어놓고있었는지 깨달을수 있었다.

불안했던 것이다.

사계절의 여신을 모시는 사계절의 신전으로 가면 언제라도 인도자인 네자매들과는 만날수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여행자들은 극히 드물었다. 어찌보면 그저 도우미일뿐인 인도자들과 기부금까지 내가면서 신전으로 찾아와서 다시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있다면 사계절의 여신을 모시는 신관이 된 여행자들이나 간간히 만나는정도이지 다른 직업을 선택한 여행자와 다시 만나는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크레르와 헤어진다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긴 설명을 한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레르는 스프린에게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것이 너무도 기뻤다.

“언니…정말로 저를 만나러 신전으로 오신다는것인가요?”

“물론이고 말고! 스프린 너는 내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난 인연인걸, 게다가 나를 ‘언니’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몇명 없어 그런 귀여운 동생을 만나러 안가면 누구를 만나러 가겠니? 게다가 나는 샹그릴라는 정말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있어 아마 조금이라도 모르는게 있으면 너를 찾아갈지도 모르는걸 아마 너무 자주 찾아가서 이젠 오지 마세요~라는 소리라도 듣는게 아닌지 몰라”

스프린은 갑자기 무언가 뜨거운게 머리로 올라오는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려요 언니”

“나야말로 잘부탁해”

다시금 인사를 나누며 크레르는 스프린의 손을 잡고 신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스프린의 인도자로서의 임무는 모두 끝났다. 하지만 처음 만난지 몇시간뿐이 되지 않은 처음으로 생긴 언니가 스프린의 머리속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괜찮아 또 만날수 있을꺼야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스프린은 다시금 사계절의 여신의 신전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던중 문득 스프린은 한가지 잊어먹었던 사실이 떠올라서 중얼거렸다.

“어라아 내가 언니에게 황혼의 여행자는 자신의 능력에 맞게 외모가 재구성된다는것을 설명해 주었던가? 뭐어 언니라면 내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무엇이든 할수있을것 같은 분이시니까 분명 알아서 잘 하실꺼야”

왠지 인도자가 하기에는 무책임한 말을 하는 스프린의 마음속에는 오늘 처음생긴 차가워보이지만 따스함을 자신에게 부여해준 언니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생겨나고있었다.

‘그래 언니는 정말로 어떤것이든 할수있을지 몰라’

그리고 스프린은 언젠가 다시 만날날을 기다리며 자신의 신전으로 돌아갔다.

***********

스프린의 손을 꼬옥 잡고 문으로 발길을 옮기던 도중 어느순간 스프린이 사라진것을 크레르는 알수있었다. 아마도 인도자의 사명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간것이겠지. 스프린은 정말 귀여운 소녀였다. 크레르는 만약 자신이 고아가 아니라 동생이 있었다면 저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크레르와 스프린은 어딘지 닮아있었다. 항상 혼자이고 본능적으로 남과의 관계에 거리를 돌려고 하는 그러한 자신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사실은 크레르도 스프린과 조금더 같이있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주 목적인 샹그릴라로의 접속이 먼저이기에 스프린의 설명을 다 듣지 않고 일단 엘리시움에 와버렸다.

“다시 만날수 있으니까”

만약 이번에 헤어지도 영원히 다시 만날수 없었다면 크레르도 샹그릴라에 접속하는것은 포기한채 오늘 하루종일 스프린과 같이 봄의 평원에서 이야기나 하고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계절의 여신의 신전이란곳으로 찾아간다면 언제라도 만날수 있다고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일단 게임에 접속부터 제대로 해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프린에게는 조금 미안하게 됬네”

처음 만날때는 왠지 생기가 없던 소녀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너무도 싱그럽게 웃게되었다. 그것이 자신과의 만남덕분이라는것을 크레르도 잘 알고있기에 이렇게 헤어져 버리는것이 조금 미안했다.

“뭐 자주 만나러 가면 되겠지”

오늘은 조금 힘들것 같고 내일이라도 만나러 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크레르는 일단 엘리시움에 처음으로 온 여행자들이 누구나 그러하듯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레르는 쉽게 생각했지만 크레르가 스프린과 다시만나기까지는 매운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때의 크레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크레르는 숲속에 나있는 조그만 오솔길 사이에 서있었다. 저기 멀리 어스렴풋하게 성곽으로 보이는 음영이 보이고있고 그것외에 보이는거라고는 초록빛의 나무들뿐이였다.

“그냥 숲이잖아?”

솔찍히 크레르는 실망했다. 너무도 극도로 현실감이 넘쳐 오히려 환상으로 보일정도였던 봄의 정원에서 스프린과 반나절동안 있다 와서 그런지 그냥 평범하게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울창한 숲이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디하나 흠잡을때 없이 진짜같은 현실이 만족스러운 편이였다.

“어디보자 그러니까 기본장비가 이것이라고 했지?”

크레르의 허리춤에는 작은 단검 하나가 꼽혀 있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신분 증명서와 1실버가 들어있는 작은 주머니하나가 더 달려있었다.

크레르는 단검을 손에 쥐어봤다.

“어라? 손에 딱 맞네?”

마치 예전에 단검 던지기 묘기를 할때 항상 손에 쥐고있어서 손에 익었던 단검을 쥔듯이 익숙하게 손에 달라붙는 감촉이 기분 좋았다. 몇번 단검을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고있는데 왠지 반짝이는것이 몇개 보였다

길의 구석에 크레르가 손에 쥐고있는것과 똑같이 생긴 단검들이 몇자루 버려져있었다. 그 단검은 뉴비들이 게임을 시작하면 누구나 한자루씩 받는 초보자 전용의 단검이였다. 다루기는 쉽지만 위력이 약해서 차라리 시작할때 주는 1실버로 다른 검을 사는게 좋다는게 다른 여행자들의 평이기에 전사계열이 아닌 다른 직업을 목표로 하고있는 여행자들이 임시로 쓰다 버리는 그런 무기였다.

하지만 크레르는 이 단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치 몇년동안 손에익었지만 단검 던지기를 하다가 부러진 애용하던 단검과 정말이지 닮아있었다. 이렇게 많이 있으면 한자루쯤 잊어먹더라도 여분으로 충분하겠지? 그래서 땅에 떨어져 있는 6자루의 단검을 모조리 주워서 허리춤에 꽂아 넣고는 숲에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길을 나섰다. 일단 저기 보이는 성으로 둘러쌓인 마을로 가보는것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띠링

“거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차고있던 단검 한자루를 던졌다. 단검은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서 나무가지 사이를 순식간에 지나쳐 그녀가 목표로 삼았던 장소로 날라갔다. 무심결에 던져진 단검이지만 그 엄청난 속도에 단검의 진로상에 있던 나무가지들이 후두둑 거리면서 땅으로 덜어졌다. 단검은 찰나의 순간에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나 나무들의 숲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뭐였지? 내가 착각을 한건가? 그래도 내 실력 아직 녹슬지는 않았는거 같네”

녹슬기는 커녕 그녀의 전성기때의 단검던지기의 몇배나 되는 위력있는 던지기였지만 그녀는 얼떨결에 한자루 잊어먹은 단검생각만을 하고있었다.

“뭐 아직 6자루나 남았으니까 넉넉해. 이제는 안 잊어먹게 조심해서 써야겠어”

단검이 어디로 날라갔는지는 생각도 안하고 그녀는 성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정말 이곳이 맞기는 한거냐? 이런 초보들 사냥터에서 그런 유니크한 보스 크리쳐가 나온다는 소리 처음들어 보는군”

마을로 향하는 크레르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한 파티의 여행자들이 나무 가지를 연신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있었다. 삐까번쩍한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기사(Kight)가 얼마전부터 BBS상에 떠도는 소문을 절친한 동료인 루인에게 전했다.

“맞다니까. 정말 이 게임의 자유도에는 질릴정도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상식을 벗어난 짓까지 할줄은 몰랐다. 초보자존에 그런 로드가 나오다니 몇일전부터 게시판에서 난리도 아니였단말이지. 초보자들은 커녕 우리 파티정도도 준비를 잔뜩 해야 상대할수있을정도로 강력하고 드롭(Drop)하는 물건도 90%이상이 값나가는 초 고가 아이템에다가 비록 그 확률은 낮지만 루인 너같은 고위 마법사도 탐내는 상급 주문서까지 주는 블러드 오우거 로드에 몇명의 초보들이 당했다고 푸념섞인 글을 올린걸 보고 어제 내가 이 눈으로 확인까지 했다니까 분명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있다!”

파티의 리더인 바스의 호언당당한 말에 루인은 코웃음을 쳤다.

“눈이 어떻게 된거 아니냐? 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 찾기 시작한지 벌써 반나절째잖냐 게다가 겨우 한개만 스톡(STOK)해둔 디텍팅 마법에도 감지가 되지 않고있는데 정말 10일 기도중인 루나티스 양까지 불르길래 무슨일인가 해서 와봤더니 이게 무슨일이냐”

루인의 불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얼마전에도 드래곤의 레어를 발견했다고해서 거의 50여명의 사람들을 드래곤 슬라이어가 되어봅시다!하고 해서 끌고왔는데 알고보니 드레이크의 레어였을뿐이다. 50명의 사람들의 파티플레이(화풀이)에 불쌍한 드레이크는 몇분도 안되어서 절명했고 그 이후 바스의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확실하게 대박이라는 말에 신전에서 스톡을 높이기 위해서 기도중이던 프리스티스인 루나티스까지 억지로 끌고왔는데 몇시간째 오우거로드는 커녕 오크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내가 네놈의 허풍에는 질릴지경이다. 오늘도 오우거 로드가 출몰했다는 허풍에 속아서 다른거 다 포기하고 제노사이드 2방과 디텍트 마법 한방만 겨우 스톡했는데 이래서는 다른 사냥조차 불가능할 정도 아니냐”

미리 그날 사용할 마법은 스톡해 두어야 사용할수 있기에 루인은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마법인 제노사이드를 2방 겨우겨우 스톡했다. 그리고 남은 스톡의 잔량이 6이기에 스톡의 소모가 5인 디텍팅을 한개 스톡하자 남은 잔량은 겨우 1이 남았다. 1이라면 가장 간단한 마법인 라이팅조차 스톡할수 없는 애매한 잔량이기에 오늘 루인이 사용할수 있는 마법은 제노사이드 2방과 디텍팅 한방이 전부다. 게다가 디텍팅은 미리 사용했기에 지금 남은것은 제노사이드 2방뿐이다. 차라리 이럴줄 알았으면 파이어 애로우를 150방정도 스톡해서 다른 크리쳐나 사냥하는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걱정 말래두 그러네 분명 여기 있다니까!”

옆에서 조용히 바스와 루인의 티격태격을 지켜보던 루나티스가 조용히 말했다.

“바스님 잠시만요 저기 건너편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 말을 들은 바스가 나무 가지를 헤쳐서 길을 만들자 눈앞에 거대한 크기의 크리쳐가 서있었다.

“나왔다!!!! 루인은 바로 제노사이드의 스톡을 해제해서 쓸수있도록 해주고 루나티스양은 저와 카로스에게 강화마법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데칼민군은 활로 견제를 부탁한다!”

엄청난 속도로 파티의 개인개인에게 지시를 내리는 바스는 그야말로 파티의 리더였다.

“저기 형 저 크리쳐 아무리 봐도 죽어있는것 같은데요?”

하지만 데칼민의 한마디에 용맹하게 지금당장이라도 오우거와 싸우러 갈려고 자세를 잡은 바스는 쓰러질려는 몸을 가다듬었다.

“뭬이야!”

“그러니까 이미 죽은것 같다구요 아직 에테르로 돌아가지 않은걸로 봐서는 죽은지 채 10분이 안된것 같은데요?”

바스가 실망스럽다는듯이 말했다.

“뭐야 벌써 선수친 파티가 있다는 소리잖냐. 쳇 아침부터 서둘러서 오자고 했더니 루인이가 스톡한다고 시간끄는 바람에 늦었잖냐 쳇쳇”

루인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바스의 뒤통수를 퍽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숲속에서 헤멘 너 때문이잖아!”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데칼민은 오우거 로드의 머리를 보더니 갑자기 할말을 잃었다.

“…….!!!!”

그리고 데칼민이 손으로 가리킨 오우거의 머리를 보던 루인도 역시 입이 떡하니 벌어져서는 바로 반격하려고 준비중이던 바스의 큼지막한 주먹조차 신경쓰지 못하고서는 오우거의 머리를 바라봤다.

갑자기 이상해진 분위기덕에 바스역시 데칼민이 손으로 가리킨 오우거를 쳐다보고 역시나 할말을 잃었다.

“초보자용 단검?”

들고있는 커다란 배틀엑스 한방이면 성벽마저 무너트린다는 오우거 리더의 미간에는 한자루의 초보자용 단검이 박혀있었다.

 

 

 

 

 

 

 

 

 

 

 

 

 

 

다른 파티원들이 멍하니 오우거의 머리에 박혀있는 한자루의 초보자전용 단검을 보고있는 도중 역시나 도적인 카로스가 재빠르게 오우거에게 다가가 뒤적였다.

“드롭(Drop)된 물건은 전부 있군요!”

그 말을 들은 일행은 다시한번 모두 놀랐다.

자신들이 블러드 오우거의 로드와 싸웠다면 저렇게 오우거의 시체가 온전하지는 못했을것이다. 굉장히 치열한 혈전이 되었을것이 틀림 없으니 자신들도 그렇겠지만 오우거도 온몸에 치명상을 입고 죽기 직전까지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저 오우거의 몸에 있는 상처라고는 미간에 꽂혀있는 단검 한자루뿐이다. 당연하겠지만 단검 한자루로 저 오우거를 죽였을리는 없다. 살아있는 생물들의 대부분은 머리부분이 급소이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보호할려고 하고 특히나 오우거라는 크리쳐의 경우는 머리가 굉장히 튼튼하기에 왼만한 전사가 휘두르는 바스타드 소드정도로는 흠집 하나 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치명상을 주기위해서는 수백번을 때려야 하고 그런데 저렇게 온전하게 주위에 전혀 상처하나 없이 꽂혀있는 단검이 바스들에게는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카로스는 오우거가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지 때때로 오라던지 우와같은 탄호성을 질르며 드롭된 물건들의 감정을 하기에 바빴고 그렇지만 다른 일행들은 드롭된 물건보다 저 수상쩍게 죽어있는 오우거에게로 더욱 시선이 갔다.

결국 바스가 루인에게 물었다.

“루인아 저건 분명 마법으로 죽인것이겠지? 저 단검은 그냥 기념으로 꽂아두고 간걸꺼다 분명”

마법중에는 파이어계(系)나 아이스계(系)등의 공격당한 대상이 무슨 마법에 당했는지 확실히 알수있는 마법이 있는가 하면 그라비티계(系)라던지 스트라이커계(系)같이 마법에 당한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 마법들의 계열도 다수 존재한다. 그래서 저렇게 정체불명의 죽음의 원인은 대부분 마법이라고 볼수있다.

하지만 루인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오우거를 바라보다가 바스에게 대답했다.

“그럴리가 있냐. 오우거 로드를 저렇게 상처하나 없이 죽일려면 상당히 고위급 마법이나 아니면 약한마법을 거의 수백방을 정확히 급소에 명중시켜야만하지 그런데 이곳에는 그러한 마법이 개방된 흔적이 전혀 없단 말이야! 분명히 말하자면 마법은 아니다”

그말을 들은 바스가 비아냥거렸다.

“뭐야 네가 잘못알고 있는것 아니야? 그 스톡 개방의 흔적이라면 얼마든지 숨길수 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루인이 배를잡고 웃으면서 바스를 바라봤다.

“푸하핫. 정말 고맙다 바스야! 우리파티의 피로를 없애주기 위해서 홀로 그 무식함을 드러내면서 웃음을 주다니! 역시 네놈의 무식함은 국보 급이다!”

“뭐야? 내가 그렇게 대단한걸 했냐?”

갑자기 자랑스럽다는듯이 가슴을 쭈욱펴는 바스를본 루인은 그냥 저런 바보는 가만히 냅두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스를 무시한채 다른 일행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했다.

“저 바보놈은 무시하기로 하고 일단 제 설명부터 들어주십시오. 이곳에서는 분명 스톡개방의 흔적이 없습니다. 저보다 고위급 마법사라면 그 흔적을 숨길수 있겠지만. 저 오우거를 쓰러트리는데 필요한 마법의 양은 엄청납니다. 그것을 일일이 흔적을 없앨려면 거의 몇시간은 지났다고 볼수가 있죠. 그런데 아직 저 오우거는 에테르로 돌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죽은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다고 볼수가있죠. 만약 저 오우거를 마법으로 쓰러트렸다면….”

루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을 했다. 열심히 시체를 뒤지면서 드롭된 물건을 뒤지고 있던 카로스를 제외하고 이 자리에있는 파티원 5명이 모두 루인의 말에 귀기울여서 어서 다음 설명이 들려오길 기다렸다.

“이 플라톤 제국에서 세손가락 안에 드는 대마법사임이 틀림 없습니다. 마법 한두방에 저 크리쳐를 쓰러트리고 순식간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며 우리들이 이곳으로 오기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런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가진 마법사가 유저(USER)중에 있다는 소리는 못들어봤고 아마 국가 마법사 협회의 네이티브 대 마법사이겠군요”

진지하게 마법의 원리와 그 기술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루인의 말은 갑자기 들려온 카로스의 큰 말소리에 묻혀서 사라졌다.

“루인! 이것좀 봐주지 않겠어? 아무리 봐도 마법의 주문서 같이 보이는데 말이야!”

“뭐 제 설명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만약 저 오우거를 잡은 자가 마법사라면 그는 분명 무서울정도의 실력을 가진 대마법사입니다. 하여간 저기 카로스가 불르니 가보도록 하죠”

루인은 몇미터 떨어진 곳에서 열심히 감정을하던 카로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카로스가 손에 들고있는것은 도저히 도적인 자신이 감정이 불가능한 두르마기 한개였다. 저런 양피지로된 두르마기는 대부분 마법사가 마법 주문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주문서가 대부분이기에 파티원중에서 유일한 마법사인 루인을 불러서 감정을 요청한것이다.

그리고 카로스의 곁으로 다가가 그 주문서를 바라본 루인의 손이 갑자기 부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헤….헬 파이어?”

그 주문서는 파이어계열 최강의 마법이라고 알려져있는 헬파이어였다. 화염계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루인에게는 꿈만 같은 마법이였다. 비록 지금은 배우더라도 스톡의 잔량이 충분치 않아서 사용은 힘들겟지만 일단 배워두면 열심히 수련해서 스톡의 잔량을 조금만 올려두 사용할수 있게 될것이다. 드디어 루인이 꿈꾸던 경지인 대마법사가 될수있는 철호의 찬스였다.

“뭐라고? 헬파이어? 그거 정말 엄청나게 비싼거 잖아?”

돈을 얼마를 주던지 거의 구하기 힘들 초(超)유니크한 주문서이지만 몇개월전의 경매에 올라온것을 염화의 마도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한 유저에의해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렸다고 들었다. 그때의 가격을 루인은 잘 알고있다.

“아마도 가격은 1만골드 이상”

루인의 말을 듣고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루나티스까지 깜짝놀라 루인의 손에 들린 주문서를 바라보았다.

“1…1만 골드라고?”

1만골드면 거의 성한채의 가격이다. 그만큼 헬파이어같은 최상위급 주문서는 대부분 드래곤이라도 잡지 않으면 구할수없는 유니크한 물건이다. 그런데 고작 오우거 로드가 저런 주문서를 주다니 놀라운 일이였다.

멍해진 일행중에서 제일먼저 정신이 든것은 파티장인 바스였다.

“잠깐! 우리 여기로 오기전에 뭐라고 했냐? 아이템은 전사용 아이템은 전사가 성직자용은 성직자가 마법사용은 마법사가 가지기로 했잖냐. 그러니까 저 주문서는 진짜 엄청나게 아깝지만 루인이에게 몰아줘야겠다. 모두 동의하지?”

미리 그렇게 약속은 했지만 돈 1만골드는 상상할수 없을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말로는 천국이다 이상향이다 하지만 몇급 골드로도 PK가 벌어지곤 하는곳이 이곳 엘리시움이다. 그런데 아무리 믿음과 우정으로 뭉친 파티원이지만 1만골드나 되는 거금을 앞에두고 갈등하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것일지도 모른다.

“바스야 아니다. 나혼자 먹기에는 너무 비싼거잖아 일단 팔아서 나눠가진다고 해도 1인당 1500골드정도는 돌아가니 그돈으로 다른 마법서를 수십권은 살수있잖냐 뭐 헬파이어를 배워도 지금은 스톡수가 부족해서 쓰지도 못하는데 그냥 팔아서 나눠 갖자”

바스의 말을 들은 파티원들은 모두 감동했다. 아무리 지금 사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법사의 능력은 배우고있는 마법의 강함으로 판별난다. 어차피 수련을 하다보면 스톡수는 늘어나는것이고 루인정도라면 조금만 수련해도 헬파이어 1방정도는 사용할수있게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최강의 마법사중 한명이 되게 된다는것인데 그 기회를 포기하고 파티를 위해 희생을 한다고한다. 파티원들은 그런 루인의 말에 감동했다.

“저기 지금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져계시는거를 깨는거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주문서 한장보여주고 말이 다끝나지 않았는데도 무시당해버린 카로스가 파티원들에게 벙찐표정을 지어보였다.

“드롭된 아이템은 저 주문서 하나가 아니거든요? 저것말고도 거의 드래곤 사냥이 성공한 드래곤 슬레이어 파티나 얻음직한 초유니크한 아이템이 많이 나왔으니까 걱정들 마세요 한명에 하나씩은 충분히 돌아가니까요”

시가 1만골드인 주문서 한장으로도 모잘라서 그런 가치의 물건이 1인당 한개씩 돌아갈정도라고? 오랫만에 파티원들의 눈에 후광까지 보이던 루인만 멋쩍어지고있었다.

“하하하, 이정도면 이제 우리파티가 이 나라 최강이 되는것도 시간문제이구만!”

상당히 이름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드래곤 슬레이어 파티들에 비하면 가진 장비와 재산면에서 차이가 많이났었다. 그런데 드래곤 사냥에 성공한 파티나 얻음직한 초대박을 거저 먹다니 거짓말 같은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바스와 파티원들은 그후로도 몇시간 즐겨운 분배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을 맞이했다. 정작 그 오우거를 한방에 잡고 하나도 아닌 십여개의 유니크 아이템을 드롭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까마득하게 모른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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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르가 길을 향해 어느정도 나아가자 큰 성벽이 보였다. 스프린의 말대로 일단은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서 간단한 정보를 얻고 그 마을에서 간단하게 보급을 한후 근처에서 약한 크리쳐들을 몇마리 잡아보면서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지는것이 좋을것이라도 말했다.

크레르의 엘리시움에서의 생활이 이제 곧 시작되려고 하고있다.
 

 

 

 

 

 

 

 

 

 

 

 

 

 

 

성벽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있었다.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언뜻 윤곽이 비치기에 걸어서 10여분 정도면 도착할수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의 1시간여를 걸어서야 거의 성벽에 다다를수 있었다. 성벽은 크레르가 생각했던것보다 거의 몇배는 큼직하게 생겼다. 당연히 게임을 처음시작해서 제일처음 당도하는 마을이기에 작은 시골마을같은것을 상상하고있었는데 엘리시움에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큼직한 성곽의 모습은 크레르로서는 상상밖이였다.

“저기가 입구?”

오솔길의 끝에는 약간 작은 문이있었고 그 문앞을 지키고있는 번쩍거리는 하프플레이트 메일과 핼버트로 무장한 경비병이 서있었다. 그런데 멀리떨어져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꼬마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검문을 기다리며 문앞에서있었다.

이렇게 커다란 성에 꽤 큰편이지만 겨우 사람 3~4명이나 통과할듯한 문을 겨우 경비병한명이 지키고있다니 그 경비병이 완전무장을 하고는 있지만 무언가 부족해보인다. 아무래도 저 문은 정문이 아닌 뒷문같아 보였다. 아마도 정문은 이런 숲속에 나있는 작은 길이 아닌 커다란 대로에 연결된 큼지막한 도개교가 달린 튼튼한 성문일것이다.

“역시나 경비병이네 키가 엄청 큰걸?”

멀리서 봤어도 상당히 장신으로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커지는게 165센티미터라는 여자로서 그렇게 작은키가 아니였던 크레르보다 거의 30센티이상은 커보였다.

“분명 이 게임의 배경은 중세일텐데 저렇게 농구선수만한 사람도 있으니 신기하네”

중세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키가 매우 작았다. 그런데 저 경비병은 거의 농구선수를 해도 될정도로 장신이였다. 저 경비병만 특이하게 키가 큰것인지 아니면 이 게임이 원래가 사람들의 키를 크게 만든것인지는 모르지만 저 경비병의 키는 크레르를 압도할정도로 장신이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성문의 출입을 기다리던 꼬마아이와 그녀의 엄마로 보이는 20대 중반의 여자의 키도 굉장히 컸다. 12~3살이나 먹었을 남자아이가 크레르와 거의 맞먹을정도의 키였고 그녀의 엄마도 크레르보다는 거의 10센티미터이상은 커보였다.

‘뭐야 여기는 다들 키가 엄청나게 크잖아?’

별로 키에관한 콤플렉스는 가지고 있지 않던 크레르였지만 아무래도 이곳의 사람들의 키는 크레르의 키정도는 평균정도에도 들지 못하는 작은키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자 왠지 한숨이 나왔다.

“자 다음사람”

앞에 서있던 여자와 남자 아이가 어느새 문안으로 들어가버렸는지 경비병이 멍하니 서있던 크레르를 불렀다.

“어이쿠 우리 꼬마친구가 엄마 심부름이라도 갔다 왔나 보구나? 기특한걸!”

아무리 자신이 키가 크더라도 크레르도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니였다. 게다가 꽤나 동안으로 어려보이기는 했지만 크레르는 25살의 성숙한 여인이였다. 그런데 아무리 경비병이 키가 엄청난 장신이라고는 해도 꼬마라고 불르다니 왠지 열받는 말이였다.

“저기요 아무리 경비병’아져씨’가 키가 크시다고는 해도 그렇게 사람을 꼬마 꼬마라고 불르시면 안되죠!”

하지만 경비병의 반응은 크레르가 예상한것과는 아주 달랐다.

“하하하. 우리 꼬마친구는 꼬마라고 불리는걸 싫어하는 모양이구나? 그래그래 남자아이가 13~4살정도 되면 다 큰것이고 말고! 이거 미안하구만! 하하하”

남자아이? 13~4살? 크레르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였다. 분명 자신은 어디로보나 여자였다. 아무리 헐렁한 티셔츠에 바지를 입고있지만 다른것은 다 보지 않더라도 글래머 소리듣던 가슴만 보더라도 자신이 여자라는걸 금새 알수있을것이다. 아무리봐도 저 경비병은 자신을 놀리는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크레르는 가슴을 쭈욱펴고는 당당하게 어디를봐서 꼬마에 남자아이라는거에요? 라고 경비병에게 쏘아줄려고하다가 발견하게되었다.

“뭐야 이거?”

정말로 작았다. 거의 없다고해도 좋을정도였지만 슬쩍만져보니 완전히 없지는 않았지만 거의 옷입은 상태에서 봤을때에는 완전 남자로 오해해도 좋을정도의 절벽가슴이였다.

크레르의 입에서는 자신도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래서는 저 경비병이 자신을 남자라고 오해해도 할말이 없는것이다 그럼 설마 키도 그렇다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현듯 경비병에게 물어봤다.

“경비병 아져씨! 제 키가 얼마 정도로 보이세요?”

그러자 경비병이 여전히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대답했다

“하하. 역시 성장기라서 그런지 키에는 예민하구나? 이 아저씨가 미안했다! 꼬마친구도 밥 많이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쑥쑥 클거란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경비병은 크레르가 원하는 대답은 해주지 않은채 엉뚱한 소리만을 해댔다. 아무리봐도 저 경비병은 크레르를 작은키에 컴플렉스가있는 꼬마 남자아이정도로 오해한듯 싶었다. 크레르가 표독스럽게 째려보자 그제서야 경비병은 크레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어디 네 키 말이냐? 내가 너만한 아들이 있는데 말이다 지금 너보다 약간 크구나 한 150센티 정도는 될까? 그래도 걱정 말거라 어차피 네 나이대에는 전부 키가 고만고만하단다 금방 너도 이 아져씨처럼 클거다”

꽤나 젊어보이는 경비병이였는데 자신만한 아들이 있다니 크레르는 꽤나 놀랐다. 그렇지만 자신의 키가 150센티보다도 작아보인다는것에는 정말 놀랐다.

지금까지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몇번이고 들었다. 봄의 평원에서도 자신보다 10살은 어려보이던 스프린과 이상하게 눈높이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기간 휠채어에 익숙해진덕에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러고보니 이곳에 와서 모든 사물들이 정말 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들이 큰것이 아니였다. 다만 크레르가 작은것이였다. 저 경비병도 190센티가 넘는 장신이 아닌 170센티정도의 키였고 아까본 꼬마와 여인의 키도 평균적이였다. 어째서 그것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것일까?

“아져씨. 혹시 거울이나 비슷한물건 없으세요?”

크레르는 변한게 단순히 키나 신체사이즈뿐 아니라 다른무언가도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성별은 변하지 않은거 같지만 일단 거울이라도 봐서 자신의 현재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는게 급해보였다.

“거울말이냐?”

경비병에게는 거울같은것 볼시간도 없겠거니와 볼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거울같은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물건은 있었다.

“거울은 없고 대신 이 방패가 번쩍번쩍하게 잘비치지. 그런데 거울은 왜 보여달라고 그러냐?”

번쩍번쩍하게 광낸 타운드 실드를 내미는 경비병의 말을 무시한채 크레르는 방패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바라보았다.

변해있었다.

역시 경비병이 남자아이로 본 이유가 크레르의 외모덕분인듯 싶었다.

귀밑까지 겨우오는 짧은 검은머리와 얼굴윤곽이 동글동글해서 귀여운 남자아이를 보는 느낌이였다. 게다가 뉴비(NEWBE)의 기본장비인지 머리에는 두건이 씌워져있어서 활달한 개구장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자세히보면 굉장한 미소년으로도 보였다. 크레르가 얼굴을 비쳐보고있는 타운드 실드보다도 더 은빛으로 반짝이는 신비해보이는 은빛눈동자가 검은머리와 어울려서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있고 동글동글하니 껴안아 주고 싶을정도로 귀엽게보였다. 하지만 크레르가 원한것은 이런 외모가 아닌 현실에서의 자신의 스타일 좋은 외모였다.

“황당하네”

크레르는 작게 중얼거렸다. 분명 이 게임은 현실의 외모를 90%이상 반영하고있다고했다. 비록 약간의 변형정도는 가능했지만 완전히 타인같은 외모로의 변형은 불가능하고 현실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형과 동생 언니와 동생정도의 차이가 보일정도로 닮아있는 외모정도로뿐이 변형이 불가능했다. 크레르는 자신의 외모가 너무 완벽하기에 외모변형창이 뜨지 않았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알아서 꼬맹이로 변해있다니 정말 기가찰 노릇이였다.

크레르가 채 듣지못한 스프린의 설명이 이에관한 것이였는데 크레르는 그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경비병 앞에서 황당한 기분만을 맛볼뿐이였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크레르가 지금까지 자신의 외모가 변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있었다는것이다. 단순히 외모만 바뀐것이라면 거울을 보지 않는한 깨닫지 못할수도있다. 하지만 크레르는 키와 팔과 다리의 길이까지 엄청나게 짧아져있었다. 그렇다면 보폭이라던지 팔의 놀림등의 차이가 보여서 걷기도 힘들어야 할텐데 크레르는 오히려 현실의 자신의 몸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활동했다. 몸놀림이 더욱 가벼워졌고 온몸에 생기가 도는듯했다. 평소라면 힘들어할 고난이도의 아크로바트 기술이라도 얼마든지 성공할것 같은 기분이였다.

아마도 오랜기간 가만히 앉아서 휠체어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몸으로 직접 움직이는 기분이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였다.

크레르는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에서의 새로운 생활 새로운 몸과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는것도 꽤나 좋아보였다. 게다가 길을 걷다가 몇번 폴짝거려봤는데 현실에서 움직이는것보다 몇배나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줬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게임을 시작한 이유인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날고싶다는 목적에는 전혀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좋은조건이 아닌가.

하지만 자꾸 꼬마라고 부르고있는 저 남자 경비병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방패에서 눈을때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있는 경비병을 쳐다보고는 한마디 했다.

“저는 꼬마가 아니라 성…아니 크레르에요 게다가 남자 아이가 아니라 여.자 입니다”

얼떨결에 자신의 현실에서의 이름을 말할뻔했지만 급하게 수정했다.

크레르의 얼어붙을것같이 째려보는 눈빛에 얼떨결에 기가 죽었는지 경비병은 허허 웃기만했다.

“자 일단 여기 통행증있거든요. 이것이면 되죠?”

아까전에 스프린에게서 받은 한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여행자가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통행증이다. 잃어버린다면 가까운 신전으로 찾아가서 재발급 받아야한다고 하기에 소중하게 보관하라는 신신당부를 받았다.

“통행증 말이냐? 설마하니 너 이 마을의 꼬마가 아닌거냐?”

그렇게 째려보임을 당하면서도 끝내 꼬마라는 말을 하고말았지만 그냥 웃어넘기기로했다.

“네 저는 방금 막 이 세계로 온 황혼의 여행자 크레르입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허허거리면서 금방이라도 머리라도 쓰다듬을것 같이 부드럽게 굴던 경비병이 허리를 꽂꽂이 세웠다 허리를 바짝피고 왼손에 쥐고있던 헬버트를 직각으로 세워서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되게 당당하게 말했다.

“여행자 님이셨군요! 지금까지 실례 많았습니다! 저는 드림성의 제 7경비대장 유레스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좋은추억 만드시기 바랍니다!”

유레스가 다시 내민 통행증을 받아들고 크레르는 성안에있는 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크레르의 등뒤로 유레스가 한마디 덧붙였다.

“여행자 님! 지금 꿈의 도시 드림에서는 영주님의 제 44회 생일을 맞이하여 축제가 한창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들려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영주님도 여행자님이라면 환영해드릴겁니다!”

축제가 있다는 말에 모종의 기대를 품고 크레르는 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성문은 다시 끼익하는 소리화 함께 닫혔다.

다만 마음껏 몸을 움직이고 싶다. 날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게임을 시작했다.

비록 외모도 달라지고 키도 약간 작아지기는 했지만 크레르가 새로 정한 자신의 이름처럼 그것은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위한 작은 하나의 발판이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목숨마저 포기할 각오로 꿈을 갈구했다. 그런 꿈을 이루기위한 작은 희생정도로 생각해도 좋을것이다. 오늘 게임에 접속하고 반나절동안 크레르는 요 1년동안 만난사람들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마치 동생같이 귀여운 인도자인 스프린. 귀여워보이던 꼬마아이와 그 엄마. 그리고 비록 자신을 꼬마라고 불러서 마음에는 안들지만 용맹해보이던 경비대장 유레스. 아마 이제 더욱 많은 만남이 있을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다만 기쁨으로만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아”

크레르는 자신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자신은 이상향(샹그릴라)과 만났다. 자신의 앞길은 분명 즐거움만이 가득할것이다.

그런 생각을하며 크레르는 멀리보이는 왠지 떠들석한 마을을 바라보았다.
 

 

 

 

 

 

 

 

 

 

 

 

 

 

 

“소울링크 시스템 이상발생”

방안에 있는 유일한 물건은 반나절 전에 주인에의해 레드와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하나의 커다란 타원형의 붉은색의 단말기뿐이였다.

단말기의 주인은 단말기 안에 누워 오랜기간동안 한번도 지을수 없었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꿈을꾸고있었다.

행복한꿈

언제까지나 깨지않는 꿈. 하지만 꿈은 영원히 계속되지 못하기에 꿈이라고 불리는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을것만 같은 영원한 천국과의 만남

레드와인은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도 계속해서 경고메세지를 내고있었다.

그리고

 

 

 

 

 

 

 

 

 

 

 

 

 

 

 

******

드림이란 이름의 성안에있는 마을은 경비대장인 유레스가 말했듯이 한창 축제분위기에 달아올라있었다. 1년에 몇번없는 대목을 잡기위해서인지 많은 노점상들이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고있고 슬슬 저녁때라서그런지 마을에있는 펍(PUB)에는 야외에 테이블을 깔아두고 벌써부터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드림문(DREAM MOON)축제에 어서오세요]하는 현수막이 마을 곳곳에 걸려있는걸로 봐서 단순히 영주의 생일파티라고 보기에는 이상할정도로 큰 규모였다.

크레르는 옆에 지나가고있는 중절모를 쓴 신사같아보이는 분에게 실례합니다만 이라는 말과함께 정확히 무슨축제인지 물어보았다.

“저 실례합니다만 듣기로는 이 성의 영주의 생일축제라고 하던데 이상하게 규모가 엄청 큰거 같네요 단순한 생일파티가 아닌건가요?”

그러자 신사는 허허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렇단다 단순히 영주님의 생일이라고 보기에는 좀 큰규모이지 않니”

신사는 동쪽 하늘에 얼굴을 내밀고있는 달을 가리켰다. 동쪽 하늘에는 마치 크레르의 두 눈처럼 은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달이 떠있었다. 크레르가 달을 바라보고있는걸 확인한 신사가 말을 이었다.

“저 달이 보이지? 드림문이라고도 불리는 페더문이란다. 13개월중 단 한달 이번달에만 뜨는데 저렇게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는것은 일년중 단 3일뿐이란다. 그래서 이렇게 축제를 벌이는거지”

“그런가요? 그런데 왜 오늘이 영주의 생일이라고 하는건가요?”

그러자 신사는 마치 똑똑한 아이구나 하는듯이 크레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약간 기분이 안좋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물어보는것을 무시하지 않고 제대로 대답해주는 사람이기에 밖으로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강의를 듣는 학생처럼 신사의 말에 귀를기울였다.

“그렇지 우리 영주님은 정확히 말해서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란다. 여명의 여행자라고 불리는 다른세상에서온 초월자시지. 몇년전 전쟁에서 용병으로 출전해 공을 세우고 이 나라의 귀족이 되어 저렇게 영주님이 되셨지. 그런데 영주님의 이름이 드림이란다. 그래서 생일이 없으시다던 영주님에게 드림문축제날이 곧 생일이 되신거지”

아마도 이곳의 영주는 크레르처럼 오프라인에서 이 게임에 접속한 유저인듯 싶었다. 비록 오프에서의 생일이 존재하겠지만 저 신사의 말에서 유추해보자면 이곳은 1년이 13개월인듯 싶다. 그래서 현실에서의 생일을 이곳에서까지 적용하기 어려웠던지 마침 자신의 이곳에서의 이름인 드림과 똑같은 축제가있다는것을 알게되고 그날을 생일로 정했다는것으로 보였다.

‘헤에? 영주라고?’

단순히 이 게임에서 선택할수 있는 직업은 검사라던지 마법사나 성직자나 도둑같은 다른 RPG(롤플레잉)게임과 비슷한 직업만을 선택할수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선택할수있는 직업의 수는 다양한 모양이였다.

일단은 모두가 함께 즐기는 즐거운 축제인듯 싶으니 크레르도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을 먹었다.

“설명 감사드려요”

신사는 아무말 없이 몇걸음 물러나더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크레르에게 웃어보였다. 그러더니 뒤돌아서서 길을 가기전에 크레르에게 한미디 덧붙였다.

“꼬마아가씨 그럼 즐겁게 축제 즐기시게나”

몇명 사람만나지 못했지만 항상 소년으로 오해받았었는데 비록 꼬마라는 별로 마음에 들지않은 호칭이 따라왔지만 여자로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왠지 고마웠다. 역시나 신사는 연륜만큼이나 보는눈이 있네하는 생각을 하며 축제의 인파속으로 휩싸여 들어갔다.

사람은 정말이지 질릴정도로 많았다. 아마도 꽤 유명한 축제인지 이웃마을에서도 구경을 온것인지 마을곳곳에는 먼길을 온듯한 말들이 펍의 기둥에 묶여 여물을 뜯고있었다.

크레르가 너무 작아서 제대로 안보여서 그런지 인파사이를 헤치고 지나갈때면 누군가가 크레르를 툭툭치면서 지나가는게 조금 기분 나빴지만 축제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노점상에서 파는 물건들에게서 나는 입맛돋구는 향기가 축제가 한창인 마을 중심부로 향하던 크레르의 발길을 붙잡았다.

“그러고보니 배 고프네”

정말로 오랫만에 느끼는 감각이였다. 사고가 나서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위장덕분에 항상 식사는 튜브로하는 유동식이 전부였다. 항상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먹는다는 감각을 느껴본적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크레르가 몇번이고 생각한것이지만 정말 잘만든 게임이였다. 단순히 5감을 느끼는것뿐 아니라 식욕같은 욕구까지 거의 완벽하게 재현되어있었다. 한번 배가 고프다고 생각했더니 식욕이 물밀듯이 밀려오기시작했다.

생각해보니 크레르가 축제에서 쓸돈은 충분하다고 볼수있다. 이 게임은 여행자로 처음 시작하면 누구든지 1실버씩을 가지게된다.

그 1실버로 대부분 간단한 무기를사거나 기본적인 장비를 갖춘다고했다. 하지만 크레르는 그럴생각은 전혀없었다. 어차피 움직이는것과 게임을 즐기기위해서 하는것이지 꼭 좋은무기를 얻고 강해지기위해서 이 게임을 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프린은 일단 1실버로 쓸만한 무기를 중고로 하나 구입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충고했지만 한동안 초보자전용 단검으로 버텨볼 생각이였다. 6자루나 되니 몇자루쯤 잊어먹어도 충분할듯 싶었다.

치이이익

크레르의 옆에있는 노점상에서 정말로 기분좋아지는 소리가났다. 무언가를 맛있게 볶고있을때 나는 소리에 크레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노점상으로 다가갔다.

노점상에서는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땀을 뻘뻘흘리며 고기 간 것으로 보이는것을 열심히 철판위에서 볶고있었다.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손이 한번 움직일때마다 고기가 적당히 알맞게 익어갔다.

예전에는 체중관리때문에 마음껏 먹지 못했고 요즘에는 위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먹는것 같지도 않은 유동식만을 먹으면서 지내왔던 크레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식탐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었는데 지금은 자신도 모르게 침이 고이는걸 참을수없었다.

“주인아져씨! 이 음식 도대체 무슨 음식인가요? 냄새가 굉장하네요”

철판에서 구워지는 고기가 정말이지 맛있을것 같았다.

“허허허. 셀마리더 타코라는 음식입니다”

크레르는 처음들어보는 음식이였다. 셀마리더 타코는 이 지방의 명물음식이라 곳곳에 이 음식만을 파는 노점상이 많이 보였다. 엘리시움만의 독특한 음식이라고 볼수있다.

“헤에? 맛있어 보이네요 하나 주세요!”

일단 먹어보기로했다.

남자는 방금전까지 철판에서 고기를 볶고있던 손으로 옆에 잘 구워져서 놓여져있는 동그란 모양의 하얀 원반같이 생긴 얆은 전병을 손에 쥐더니 잘 볶아진 간 고기를 듬뿍 퍼서는 얇게 펴발랐다. 그리고는 노점상 선반위에 놓여진 그릇에 담긴 싱싱해보이는 양상추와 양파 그리고 시큼하게 초절임한 토마토를 듬뿍 얹었다. 그리고는 2개의 소스병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크레르에게 물었다.

“무슨 소스를 쳐드릴까요?”

2개의 소스병은 한가지는 빨간색병에 한가지는 노랑색 병에 들어있었다. 크레르는 이 셀마리더라는 음식을 처음먹어보는것이기에 어느쪽 소스가 무슨맛인지 알길이 없었다.

크레르는 일단 모르는게있으면 염치불문하고 물어보는 성격이였다.

“이 소스들 무슨맛인가요?”

그러자 남자는 손에 들고있던 셀마리더 타코를 테이블 위에 놓더니 에피타이저로 같이 파는것으로 보이는 감자튀김을 내밀었다.

“일단 먹어보시겠습니까?”

아마도 감자튀김에 찍어먹어도 되는 소스인듯 했다.

일단 크레르는 노란색 소스부터 먹어보기로했다. 노란색 소스통에는 역시 노란색 소스가 들어있었다.그 소스를 살짝 발라서 방금 튀긴것인지 따끈따끈한 감자튀김을 입에 넣었다.

“새콤하네요?”

약간 단듯하면서 새콤한게 샐러드등에 곁들여 먹으면 딱 좋을듯 싶었다. 다음은 빨간색 소스를 먹어볼 차례였다. 빨간색 소스는 향이 정말 강했다. 살짝 뿌렸을뿐인데 강한 향기가 크레르의 코를 찔러서 매울정도였다.

소스를 찍은 감자튀김을 입에넣자 강렬한 향처럼 매운 향기가 강하게 입안가득 풍겨나왔다. 첫맛은 엄청나게 매웠지만 매운맛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새 깊은맛이 느껴졌다.

두가지 소스모두 정말 어느것하나 흠잡을데없는 소스로서는 최상의 맛이였다.

“어느 하나로 결정 못하겠네요 그냥 둘다 쳐주세요!”

결국 크레르는 어느 하나로 결정을 못내리고 노란소스와 빨간소스 두가지를 모두 쳐달라고 했다. 남자도 가끔 그런취향의 사람이 있는지 웃으며 소스들을 듬뿍발라서 동그란 전병을 돌돌 말아서 손에 소스가 묻지 않도록 종이봉지에 담아서 크레르에게 내밀었다.

크레르는 셀마리더를 받자마자 일단 한입 베어물었다. 안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감자튀김 몇개를 집어먹었더니 더는 참지못할 상황에까지 와버린것이다.

전병으로 감싸여진 여러가지 야채와 철판에서 잘 볶아진 고기는 정말이지 잘 어울렸다. 특히나 싱싱한 양상추와 초절임 토마토의맛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한입 베어물자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2가지 소스의 다채로운맛이 입안가득퍼져서 여러가지 신기할정도로 다양한 맛을 연출했다.

두가지 소스가 섞인 비율에따라 새콤하기도하고 매콤하기도하고 달콤하기도한 묘한 맛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맛있네요!”

크레르는 자신도 모르게 음식에대한 감상을 남자에게 말햇다.

“하하 맛있게 드셔주시니 감사하군요”

역시 자신이 만들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본 남자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크레르는 순식간에 한개를 다먹고 한개를 더시켜서 이번에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었다.

양이 적어보였는데 2개를 먹자 배가 상당히 찼다.

“정말 맛있었어요! 특히나 저 소스들은 정말 최고였는걸요?”

크레르는 2번다 2종류의 소스를 한꺼번에 섞어서 먹었는데 맛이 전혀 엉키지 않고 나름대로의 조화를 이루면서 그윽한 향을 냈다. 단순히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에 들어가는 소스치고는 너무도 맛이있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이제 배도 적당히 불러왔고 슬슬 다른곳으로 가서 이 축제를 본격적으로 즐겨볼까하는 생각을하며 크레르는 계산을 하기위해 가격을 물어보았다.

“제가 먹은것 전부해서 얼마인가요?”

“6실링입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였다. 1실버가 100실링이니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아직 크레르에게는 94실링이나 남은것이다. 몇일정도는 충분히 쓸수있을 돈이다.

“헤에 가격도 저렴하네요! 어디 돈이 여기에 있을텐데”

크레르는 허리춤을 뒤적였다. 분명 스프린에게서 받은 반짝이는 은화한개가 주머니에 잘 들어서 왼쪽 허리춤쯤에 잘 두었던 기억이 난다.

“얼레?”

그런데 아무리 손으로 뒤적거려봐도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6자루의 단검뿐이였다. 돈이 든 주머니는 아무리 찾아봐도 만져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남자가 물었다.

“저기 손님 돈이 없으신겁니까?”

분명 돈은 허리춤에 잘 있었었다.

“아니요 분명히 1실버가 허리에 달린 주머니에 아까까지만해도 잘있었는걸요”

그러자 남자가 당혹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이쿠! 조심하셧어야지요 요즘은 소매치기들이 손님같이 어린손님의 코묻은 돈까지 손댄다고 하던데 혹시 어딘가에서 누군가 손님한테 부딛히거나 하지 않았던가요?”

잘 생각해보니 아까 저쪽 큰길가에서 인파가 많은길을 걷던중 몇번 부딛힌 적이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런일이 있었네요”

“어이쿠! 당하셧군요!”

솔찍히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냥 주머니에 잘 넣어뒀기에 당연히 잘있을줄 알았다. 여명의 여행자들이라면 돈이나 귀중품같은것은 인벤토리안에 넣어두면 다른사람은 손을 댈수가 없지만 황혼의 여행자인 크레르는 직접 몸에 지니고 다녀야되기에 조심하는것이 좋다고 스프린에게 들었지만 초보자가 가진 몇푼정도라고 생각해서 안일하게 달랑거리는 주머니에 넣어서 차고다녔다. 명백하게 크레르의 실수였다.

“저런…”

당황하고있는 크레르를 남자는 안타깝다는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걱정하지 말라는듯이 크레르에게 말했다.

“돈을 잃어버리신것은 어쩔수 없군요. 손님은 거짓말을 하실분으로는 안보이시니 정말 잃어버리신것이겠지요 그냥 음식값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손님처럼 제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 손님은 오랫만이지 뭡니까”

남자에게는 고마웠지만 공짜로 음식을 먹는다는것은 크레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크레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러다가 불연듯이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있었다.

“뭐야 오늘은 축제날이잖아? 전공을 살리면 돈 얼마정도는 쉽게 마련할수 있는거였는데 그걸 생각 못하다니 역시 공백기가 너무 길었던걸까나?”

크레르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주인아져씨! 음식이 정말 너무 맛있었어요 요 몇년사이에 먹어본 어떤음식보다도 더 맛있었어요 저는 그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그런거 절대 못해요! 돈 받는거 한 30분만 기다려주실수 없나요?”

남자는 이 당돌한 꼬마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그렇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만든 그저 평범할 따름인 음식을 이정도로 높이 평가해주다니 그저 걸어다니면서 먹기 편하니까 대충먹고 한끼를 때우기위해 자기가 만들 음식을 사먹던 다른손님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였다.

“물론이고 말고요! 그런데 무엇을 할생각인겁니까?”

크레르는 씨익 웃었다.

“전공을 이럴때 살려야 되지 않겠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일로 생겨났던 슬럼프. 그리고 그 슬럼프를 이겨내기위해 무턱대고 떠난 여행. 결국 크레르는 그 여행에서 슬럼프를 극복하고 이터널 셔플(eternal shuffle)이라는 최악의 난이도의 기술을 성공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얻어냈다. 그 여행에서도 크레르는 맨몸이였고 여행의 대부분은 거리에서의 공연으로 여비를 마련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지금 다시한번 그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는 이곳 전부, 그리고 관객은 이곳에 있는 모든사람! 일루젼에서 공연할때보다도 더욱 커다란 무대인걸?”

중얼거리는 크레르를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저기 손님 도대체 무엇을…?”

하지만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전에 크레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크레르는 단 한번의 도약으로 크녀의 키의 몇배가 넘는 남자의 노점상의 지붕으로 뛰어올라가서 외쳤다.

“축제에 찾아와주신 여러분들 축제는 잘 즐기고 계시나요? 저 크레르 지금부터 공연 시작합니다”

크레르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축제의 소음에 묻혀서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럿다.

거리에서의 공연은 제대로된 장비도없고 안전장치도없고 무대도 없으며 당연하겠지만 관객또한 정해져있지 않다. 그렇기에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멋진공연이 펼쳐지지 않는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것은 실패하고 박수는커녕 외면만 당하기 쉽다.

특히나 제대로된 장비가 전혀 준비되지 않기에 사용할수있는 소품이라고는 크레르의 머리에쓰고있는 두건과 허리춤에 차고있는 6자루의 단검뿐이다.

하지만 크레르는 단순히 가지고있는 소품만이 아닌 주변의 사물들마저 이용하면서 마치 한마리의 새처럼 사람들의 머리위를 날고있었다.

노점상의 지붕으로쓰고있는 탄력있는 천을 덤블링처럼 밟으며 옆에있는 건물로 뛰어올랐다. 단순히 뛰어올른게 아니라 발목의 탄력을 이용해 평지에서도 하기힘든 트리플 루츠의 회전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옆건물의 간판위에 발을 디뎠다. 게다가 떨어지는 반동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더블 투 루프를 하며 다른건물의 간판의에 깃털처럼 착지했다.

“우와아아아!!”

한시도 그자리에 있지 않고 마치 몸이 깃털로 이루어진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고난이도의 기술들을 연신 펼쳐내는 크레르를보면서 어느새 길을가던 행인들은 어느새 무대로변한 노점상거리를 둘러싸고 크레르의 거리공연을 보고있었다.

현수막을 묶고있는 줄을 타고 2연속의 높은 점프를 하는 엑셀러를 한치의 오차도없이 성공했을때는 길을가던 마차마저 멈추고 크레르의 공연에 빠져들었다.

정신없이 크레르의 공연을 보던 여자아이가 들고있던 풍선을 놓쳐버렸는지 수십미터 상공에 분홍빛 풍선이 떠다니고있었다. 크레르는 그 풍선을 놓치지 않았다.

제대로 발 디딜공간하나 없는 높은건물의 벽에 허리에 차고있던 단검을 순식간에 5개를 박아넣고는 채 몇번의 도움닫기로 그 단검이 박힌 벽면을 차고 날아올랐다.

“브라보!(BRAVO)”

얼떨결에 놓쳐서 하늘높이 날아간풍선때문에 울고있던 여자아이마저 넋을 놓고 크레르의 비행을 보았다. 날개를 가지지못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오랜시간 하늘에 떠있을수있을까? 크레르의 공연을 보고있던 많은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런생각을했다.

엄청난 높이로 쏘아지듯이 올라간 크레르는 여유롭게 날아가는 풍선을 잡을수있었다. 하지만 풍선을 잡기위해 너무 무리를 했는지 몸의 균형이 깨지기시작했다. 순식간에 머리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는 크레르를 바라보며 관객들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저런!”

하지만 그것은 크레르에 의해 연출된 상황이였다, 크레르는 너무도 여유롭게 엄청난속도의 추락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박아넣어 발판으로 삼은 단검이있는 건물의 옥상을 한손으로 디디며 다시금 하늘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몇회전인지 세기도 힘들정도로 온몸을 회전시키며 옥상의 난간위로 착지를 하고는 두 손가락을 펴서 브이자를 그려보았다.

“브이!”

“우와아아아”

숨넘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정도로 조용하게 크레르의 공연을 보고있던 관객들은 자신들도 모르는사이에 엄청난 소리의 박수를 크레르에게 선사했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였어’

크레르는 거의 2년만에 느껴보는 이 기분에 지금 당장이라도 이터널셔플을 해버릴거 같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히 크레르의 몸은 현실의 몸과는 달리 팔길이와 다리길이등은 물론 하물며 폐활량등의 고난이도 기술을 할때 반드시 숙지해야하는 신체리듬이 완벽하게 달랐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크레르의 몸은 스스로 생각한것을 너무도 완벽하게 실행하고있었다. 일루전의 무대처럼 그 무대자체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도 트리플 루츠와 더블 투 루프의 콤비네이션을 작은실수 하나없이 완벽하게 해냈다. 그것도 평지가 아닌 몸을 가누기힘든 공중에서의 고난이도의 기술도중에 그런 지옥의 콤비네이션을 해내다니 그것은 전성기때의 그녀였더라도 힘들었을 기술이였다.

그런데 왠지 그녀는 모든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성공하자 그녀 자신마저 놀라고있었다. 자신의 유효거리까지 아슬아슬하게 팔을 뻗지 않고 기다렸다가 최후의 최후 아슬아슬한 순간에 난간을 잡고 그 반동으로 하늘로 날아올라가는기술인 엑셀러같은 기술은 자신의 신체에대한 완벽한 이해가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기술이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성공했다. 전문가들이 봤다면 눈을 뒤집고 10점만점에 11점을 줬을듯한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이였다.

왠지 지금이라면 지금까지의 성공률이 채 10%가 안되는 극악의 기술인 이터널 셔플마저 성공할거 같은 느낌이였다.

크레르는 가볍게 공중에서 2회전 반을하는 문설트를하면서 어느샌가 생겨버린 간이 무대로 내려왔다.

그런 그녀를 눈을 반짝거리면서 바라보고있는 풍선을 잃어버린 귀여운 아이에게 풍선을 건내주며 그녀는 관객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했다. 그러자 다시금 관객들로부터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언니! 진짜로 최고로 머시서쪄요!”

아직 발음을 제대로 못하는지 혀짧은 발음을 하며 여자아이는 크레르가 내미는 풍선을 받아들었다.

크레르 기대이상의 엄청난 호응이였다. 그저 간단한 기술 몇가지를 가볍게 해보이고 노점상으로 손님을 끄는 일종의 호객행위정도나 해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이였는데 어느샌가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유를 느끼다보니 평소라면 한번쯤 망설였을듯한 고난이도의 기술마저 몇번이고 연속적으로 성공시켰다. 지금이라면 ‘그’기술도 분명 성공할수있을거같은 생각이 들었다.

크레르의 공연을보던 사람들중 한명두명 입을모아 앙코르를 외치고있었다.

정말로 성공적인 공연이였다. 제대로된 소품하나 없었지만 크레르는 이 장소에있는 현수막이라던지 간판같은 일상적인 물건마저 공연의 소도구로 사용하는 순간적인 기질을 발휘하여 멋진 공연을 연출했다.

크레르는 머리에 쓰고있던 두건을 벗었다. 그러자 두건에 감추어져있던 크레르의 허리까지 오는 긴 흑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두건을 양손으로 단단하게 쥐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자아이…?”

그제서야 크레르가 여자아이인것을 눈치챈 사람들이 작은소리로 감탄했다. 성인남자라도 힘들 저런 멋진기술을 작은 여자아이가 했단말인가?

그리고 크레르는 다시금 하늘로 도약했다.

‘지금이라면 성공할수 있어 ‘이터널셔플’을 말이야!’

다시금 시작된 크레르의 비상을 관객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그 자리에 있는 모든사람들은 환상을 보았다.

**********

“뭐라고? 이 큼직한 루비가 단돈 5골드뿐이 안한단 말입니까? 엥?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겁니까?”

바스는 지금 그 남자다운얼굴로 열심히 흥정을 하고있었다. 비록 그 흥정이 주변에있는 그의 파티원들이 보기에는 협박수준으로 보이겠지만 바스는 언제나 물건값을 잘깍고 팔때는 비싸게파는 자신의 흥정술에 자신이있었다.

“그..그러니까 말입니다 최근 보석값이 많이떨어져서 그이상은 힘들겠는데 말입니다. 5골드면 충분히 시세정도의 가격인데 말입니다”

바스의 번쩍거리는 갑옷과 큼직한 주먹과 등에메고있는 스치기만해도 아플듯한 검이 너무나 위협적으로 보였기에 보석상 주인은 연신 땀을 뻘뻘흘리고있었다.

“그냥 10골드에 하는게 어때요?”

그러자 보석상주인의 안색이 더더욱 안좋아졌다.

“그러면 정말 남는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 정도 크기의 보석이면 가공이나 자잘한 세공에도 돈이 엄청나게 깨집니다 그런 원석을 10골드에 사면 정말 밑지는 장사이지 뭡니까?”

흥정이 길어지자 구석에서 딴청을 피우고있던 루인이 바스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이 그냥 적당한 가격에 대충 팔고 가자고 어차피 우리 오늘 완전 대박났잖냐. 그딴 보석 몇골드 싸게 판다고 얼마나 밑지겠냐 어차피 오늘 축하파티 한다고 그거 파는거 아니냐 솔찍히 5골드만해도 한 한달은 왕처럼 놀아도 되겠다”

하지만 바스는 손해보고는 절대 못사는 성격이였다. 바스는 여전히 나름대로 샤프해보인다고 생각하는 미소를 주인에게 지어보이면서 열심히 흥정을 계속했다. 결국 항복한것은 보석상 주인이였다.

“8골드..그 이상은 절대 못합니다!”

“오케이! 교섭성립!”

겨우 바스와 보석상주인의 흥정이 끝난모양이였다. 기분좋게 보석상점을 나서는 바스와 그를 질린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파티원들은 갑자기 들려온 함성에 놀란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와아아아

“뭐지 이함성은?”

그러자 조용히 함성을 듣고있던 카로스가 바스에게 말해주었다.

“저 쪽에서 들리는군”

아무래도 저기에서 무언가 흥미를 끌만한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였다. 어차피 오늘은 엄청난 대박이 있었기에 보석상에서 보석을 팔아서 얻은 8골드로 축제나 즐기면서 한가하게 쉴생각이였던 일행들이 저 재미있어보이는일을 그냥 지나쳐갈일이 없었다.

바스가 루인을 쳐다보며 말햇다.

“갈까?”

루인도 역시 바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루나티스는 어서 신전으로 가서 하다 그만둔 기도를 마저 하고싶었지만 다른 남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힘입어 저 함성이 들려오는 노점상 거리로 향했다.

 

 

 

 

 

 

 

 

 

 

 

 

 

 

 

왠지 좀 이상했다. 분명 노점상 거리는 이런 축제때면 당연히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상당한 인구밀도를 보여줬지만 이건 너무나 사람들이 많았다. 가벼운 옷차림의 루나티스와 루인같은 사람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정도니 하프플레이트메일로 완전무장한 바스같은사람은 한걸음 움직일려면 온몸의 땀이 다 나올정도로 열심히 사람들 사이를 비비고 나와야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는거랍니까?”

그나마 호리호리한몸매덕에 바스에비하면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가고있던 루인이 용케도 자리를 잘 잡고 구경하고있던 행인에게 물었다.

“증말루 대단하구만! 저 작은 아이가 저렇게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다니는거 첨본다 아이가”

루인의 질문을 들은것인지 제대로 못들은 것인지 의미불명의 말을하며 행인은 여전히 고개를 쭈욱빼고 하늘만을 쳐다보고있었다.

“바스야 일단 저쪽으로 가보자 가면 도대체 무슨일인지 알수있겠지”

하지만 어느새 루인의 곁에는 카라스를 제외하고는 어느새 모든 파티원들이 뿔뿔히 흩어져있었다.

“다 어디간거야? 아 카로스 다들 어디로간건지 알고있냐?”

카로스는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옆의 노점상을 가리켰다.

닭고기를 동그랗게 뭉쳐 링모양으로 만든것을 여러개 묶어서 숯불에서 구운 링 온 링(RING ON RING)이라는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였다.

“바스오빠 천천히 드세요”

“형 하나더 시켜먹어도 되요?”

“아져씨 여기 링온링 10개 추가요!”

루인은 바스가 너무 많은 인파덕에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걸보고는 열심히 사람들 사이를 헤치면서 길을 만들고있었다. 파티의 제일 선두에서서 열심히 없는체력들을 열심히 끌어모아 땀내나는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뒤로 따라올 파티원들이 조금이라도 편할수있도록 작은공간이나마 조금씩 넓혀나가고있었는데 그런 루인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를 못하는지 어느새 카로스를 제외한 모든 파티원들이 노점상의 의자에 앉자 맛있는 링온링을 열심히 먹고있었다.

“크윽…루나티스 양까지!”

그나마 자신들의 파티의 꽃인 루나티스양은 자신의 고충을 이해해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루나티스양마저 열심히 링온링을 먹고있는 모습이 루인의 두눈에 포착되었다.

“그래도 너는 내 고생을 알아주는구나!”

그나마 위안인것은 카로스가 저 배은망덕한 친구들과 달리 자신의 곁에 있어주었다는것이다.

“쩝쩝”

그런데 카로스는 루인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우물거리고있었다. 아까전에 루인의 물음에 대답이 아닌 손짓으로 답한 이유가 그것때문인듯 싶었다.

카로스의 한손에는 3개나되는 링온링이 들려있었다. 그것을 연신 우물거리면서 감동에 휩싸여서 지금 당장이라도 카로스에게 뛰어들려고한 루인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먹겠나?”

어느새 입에물고있던 링온링을 다 먹었는지 카로스가 손에들고있던 링온링을 루인에게 내밀며 말했다.

“자식들! 나 빼놓고 먹으니 맛있더냐!”

이구동성으로 들려오는 파티원들의 목소리

“응”

파티원들에게 무시당한게 한두번이 아니기에 루인은 이런상황에 충분히 면역되있었다.

“쳇! 안그래도 배고픈데 먹고 죽어보자! 어이 카로스 새로 나올때 까지 못기달리겠다. 손에 들고있는것 먹으마!”

카로스는 손에들고있던 3개의 링온링중에서 유난히 붉은 링온링을 루인에게 내밀었다. 루인은 그것을 받아들며 요령좋게 길거리에 꽉꽉 들이찬 사람들을 헤쳐가며 파티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노점상으로 다가갔다.

“헤에 맛있겠네”

잘구워진 닭고기에 향기로운 소스가 뿌려져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났다. 게다가 방금 마악 구운것인지 아직까지 따끈했다.

루인마저 애초의 목적인 함성의 근원이 누구인가 알아보자하는 것을 까맣게 잊고 눈앞에있는 잘익은 링온링을 먹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루인도 점심도 먹지 않고 열심히 블러드 오우거를 수색을 하던참이라 배가 고프던참에 맛있어보이는 링온링을 보자 입에 침이 고였다. 루인은 링온링을 한입에 넣어 십지도 않고 삼켰다.

“끄아악!”

순간 뱃속에 어느 마법사가 타겟지정 헬파이어라도 쏜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 링온링은 충격적인 맛이였다. 첫맛은 강렬했고 뒷맛은 끔찍했다. 루인은 이렇게 매운음식이 존재할수있는가에대한 심각한 고찰을 해보는것도 좋겠군하는 망상에 빠졌다.

단순히 맵다정도가 아니였다. 이 링온링의 매운맛은 거의 살인무기정도였다. 평소에 풋고추에 고추장을 찍어먹는등 매운맛을 즐기던 루인마저 한입먹고 속이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므을…무…”

혀까지 꼬였는지 제대로 말도 안나오는 입으로 연신 물을 찾고있는 루인을 바스가 다행스럽다는듯이 바라보았다.

“휴, 역시 안먹길 다행이군 스페셜하게 맵다고하기에 얼마나 매운지 궁금했는데 저정도면 정말 생화학병기 수준이잖아? 루인아~그 꼬치는 네가 골른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먹도록 하려무나 크하하”

노점상에 준비되있는 물을 거의 1리터나 먹고서야 겨우 진정된 루인은 콧바람을 연신 뿜어내며 머리끝까지 열받아서는 노려보았다.

“바스 네 이놈이 지금 잠사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겠다!”

그러고는 손에 여전히 들고있는 링온링을 내밀었다.

“한개다. 너도 한번 당해봐라! 먹엇!”

하지만 바스는 루인의 그 엄청나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잘 보았다. 그런데 얌전하게 루인이 내밀고있는 링온링을 먹을리가 없었다.

“너나 많이 먹어라!”

아까까지만해도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제대로 못 움직이던주제에 루인이 다가가자 헤이스트라도 걸린양 요리조리 루인의 손길을 피해서 도망다니는 바스를 몇분간 쫒아다니다가 결국 루인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매운맛이 싫단말이지..? 그럼 대신 뜨거운맛을 보여주마”

루인은 품속에 잘 보관하고있던 지팡이를 꺼내들더니 바스의 주위를 잰걸음으로 몇바퀴 빙글빙글 돌았다. 루인이 입고있는 품이 큰 로브가 펄럭이면서 나부꼈다. 어느새 회전을 멈춘 루인은 지팡이의 끝부분에 오른손을 얻었다.

“전 스톡 개방(STOK ON) 스펠(SPELL) 제노사이드(ZENOCIDE) 시전준비 완료”

어느새 루인의 지팡이 주위로 엄청난 불길이 모이고있었다. 하지만 그 불길은 루인과 다른사람들에게는 전혀 뜨겁지 않았다. 마치 가짜불처럼 그저 밝게 빛나고있었다.

루인의 주문은 계속되었다.

“타겟지정(TARGET LOCK ON) 기사(Knight) 바스(BAS)”

이제 한마디의 시동어만 말하면 바스가 가진 주문중 헬파이어를 제외하고는 최강의 위력을 가진 주문인 제노사이드가 비록 한명에게 집중되는덕에 위력은 거의 1/10로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위력으로 바스를 한방에 사망(DEAD)시킬수 있는 위력의 마법이 쏘아질려고하고있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녀만 아니였으면 아마 바스는 분명 손에 들고있는 링온링보다 더 잘익은 바스구이가 되었을게 틀림없었다.

“우와”

루인에게 “장난이였다고 알잖아?” 라고 말하면서 어디 피할곳이 없나 열심히 찾고있던 바스도 하늘을 날고있는 검은천사를 보고는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검은천사는 날개는 가지지 못했지만 날개가있는것 마냥 건물과 건물사이를 거리와 거리사이를 그리고 하늘을 엄청난 속도로 날고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는것이 아닌 약간의 탄성만으로도 공중에서 회전을하는 문설트와 더블콤비네이션을 연속적으로 하는등 신기에가까운 묘기를 부리면서 하늘을 누비고있었다.

손에 들고있는것은 낡은천과 한자루의 단검뿐이였다. 그런 조악한 장비로 마치 날개라도 달린듯 공중에서 몸의 궤도를 바꾸고 그럴때마다 검은천사는 더욱더 높이 날아올랐다.

검은천사의 검은 머리카락이 석양빛을 반사해 금색과 검은색이 섞인 한폭의 수채화같은 장관을 하늘에다 연출했다.

“저..저게 뭐지 사람이 저런 몸놀림이 가능한거야?”

현직 도둑(Thief)인 카로스가 그 말에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민첩성이 극도로 높은 최고 수준의 도둑이라면 가능할것도 싶군요”

검은천사의 묘기를보던 루인의 손에쥐어진 지팡이에는 여전히 제노사이드의 불꽃이 타올르고 있었다.

“도둑이 저런 몸놀림이 가능하다고? 그럼 너도 저런거 할수있는거냐?”

바스는 자신의 생각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할줄아는거라고는 단검이나 좀 던질줄 알고 함정해체나 가끔 물건감정이나 하는 자들이겠지라는 카로스가 들으면 화낼듯한 생각이 지금까지의 도둑에 대한 바스의 생각이였다. 하지만 동체시력이라면 자신있는 자신도 가끔 놓칠정도의 엄청난 스피드의 움직임을 몸도 가누기 힘든 공중에서 해내는것을보니 저런사람을 상대로 싸운다면 과연 몇분이나 버틸수있을까? 아니 과연 몇초나 버틸수있을까 까마득해보였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지. 저정도 몸놀림을 할수있는 도둑은 100년전의 신마대전(RAGNAROK)때의 최고의 괴도 레이븐이 저정도의 신기에 가까운 엄청난 몸놀림을 보였다고 하더군 내가 가능한 수준이 아니지”

또다시 공중을 날고있는 검은천사의 모습이 바스일행의 눈에 비쳤다.

“체조의 드가체프인가…게다가 저렇게 깔끔하게 1회전 반의 틀기라니 어디 올림픽대표선수라도 되는거 아냐?”

조용하게 검은천사의 비행을 구경하던 데칼민이 넌지시 말했다. 철봉의 고난이도 기술인 드가체프를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저렇게 능숙하게 해내다니 놀라울따름이였다.

게다가 드가체프가 끝나자마자 천사는 연속해서 다음동작을 해냈다.

“트리플 레이션 루츠? 피겨 스케이팅 기술까지 저렇게 하다니 도대체 저 사람의 정체는 뭐야?!”

나름대로 샹그릴라의 게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각종 체조라던지 아크로바트와 피겨스케이팅등 인간의 몸의 유연성의 한계를 극도로 끌어들이는 기술이 보여지는 많은 자료를 봐왔는데 저런 묘기는 데칼민으로서도 처음이였다.

검은천사가 하고있는 묘기에대해 잘 알고있는 데칼민은 물론 전혀 모르는 사람들마저 저 아름다움에 빠져 멍하니 바라보고있을때 갑자기 검은천사가 공연중에 한번도 밟지 않은 땅을 밟았다.

그토록 격렬하게 움직였는데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검은 머리결이 루인의 눈앞에서 한순간 검은 장막을 만들었다.

어느새 땅으로 내려와서 루인의 앞에선 크레르가 루인을 왼손으로 가리켰다.

“다 큰 어른이 불장난이라니 너무 유치하지 않아요?”

 

 

 

 

 

 

 

 

 

 

 

 

 

 

 

********

크레르의 공연을 보기위해 모여든 사람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축제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지만 축제의 하이라이트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어중간한 시간이였고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더욱 흥을 돋구어 줄수있는 즐거운일을 원했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크레르의 공연은 완벽하게 채워주었다.

크레르의 공연에 모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덕을 본것은 노점 상인들 이였다. 갑자기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하고 결국 근처에있는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들이나 사 먹으면서 사람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덩달아 노점상들의 매출은 껑충 뛰어올랐다.

크레르는 단순히 고난이도의 기술만을 하는것이 아니라 비교적 간단한 텀블링이나 단검던지기 같은 기술을 하다 갑자기 고난이도의 기술과 연결을 하는 아슬아슬함을 적당하게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너무 어려운 기술만을 보여주다보면 떨어지기 쉬운 긴박감을 계속 유지시켜나갔다. 그래서 방금마악 구경을 시작한 관객부터 처음부터 구경을하고있던 관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채로 크레르의 공연을 볼수가있었다.

비록 크레르의 공연이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거나 우스꽝스러운 위트가 있는것은 아니였지만 작은 소녀가 선사하는 아슬아슬한 공중에서의 공연은 충분히 관객들의 시선을 연신 집중시키고있었다.

축제때면 크레르처럼 거리에서 공연을하는 음유시인이나 우스꽝스러운 광대들은 꽤 많았다. 하지만 실력있는 예인들은 대부분 귀족들의 산하에있는 유명한 서커스단등에서나 볼수있었고 그러한 서커스는 귀족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기에 일반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예인들은 대부분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거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고있는 크레르의 공연은 눈이 높은 귀족들이 보더라도 한눈에 반할정도인데 평상시 그러한 공연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시민들이 크레르의 공연에 열광하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머리위를 날아다니며 공연을 하고있는 크레르의 눈에 유난히 눈에띄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라? 저사람들 지금 위험하게 뭘하고있는거야?’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고있는 덩치가 큰 남자의 곁에있는 로브를 입고있는 남자가 손에들고있는 지팡이에 불타고 있었다.

그 로브를 입은 남자의 곁에있는 사람들은 그 불길을 눈치채지 못한건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크레르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크레르는 공중공연을 하고있었기에 위험해보이는 불덩어리가 잘 보였다. 공연을 보고있는 관객들중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저렇게 불덩이를 마구 휘두르며 갑옷을 입은 남자의 곁을 천천히 맴돌고있는 남자는 너무 위험해보였다. 한번 시작한 공연을 중간에 그만두는것은 크레르의 프로정신으로는 납득할수 없는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관객이 언제 다칠지 모르는 저런 위험해보이는 장난을 그냥 두고볼수 없었다.

결국 크레르는 공연을 시작한지 30분동안 한번도 밟지않은 땅을 밟았다.

10미터가 넘는 상공에서 바닥에 착지했는데도 작은 소리하나 나지 않았다. 정말로 크레르의 몸이 깃털로 이루어진것처럼 가볍게 바닥으로 내려온 크레르는 그렇게 격렬하게 공연했는데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긴 검은머리를 들고있던 두건으로 한데 모아 묶으면서 위험한 장난을 하고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다 큰 어른이 불장난이라니 너무 유치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제서야 데칼민은 자신을 놀라게한 엄청난 실력을 가진 검은천사의 모습을 똑똑히 볼수있었다.

“하…하…하…”

갑자기 거리에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의 눈길이 모여들자 루인은 지팡이에 맺어져있는 제노사이드의 불꽃을 끄고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바스는 어느새 사라져있었고 나머지 일행들은 루인을 모르는척하며 손에 들고있는 링온링을 우물거렸다.

짝짝짝

뒷머리를 벅벅 긁고있던 루인과 대치하고있던 크레르의 옆에서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렸다.

“대단하군(BRAVO)! 이런 아무런 장비도 없는 거리에서 행해진 저 신의 수준으로 보이는 엄청난 기예는 물론, 제노사이드의 불꽃을 다루는 마법사를 한마디로 휘어잡다니! 대단한 레이디(LADY)구만 허허허!”

그제서야 크레르는 갑자기 싸늘해진 주변의 분위기를 깨달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십여명의 호위병을 이끌고 나타난 중년의 남자가 왠지 거만하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크레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격 안좋게 생긴 호위병이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내쫒자 방금전까지만 해도 용감한 꼬마숙녀가 불장난 하는 어른을 혼내주려고하는 희극을 즐겁게 구경 하려고 한 사람들이 하얗게 질려서는 몇걸음씩 물러나는 바람에 크레르의 주위에는 루인과 바스를 제외한 바스의 파티원들만이 모여있었다.

덩치가 거의 바스만한 호위병이 10명정도가 중년의 남자와 크레르의 주위를 감싸고 서자 구경을하던 시민들은 크레르와 루인들과는 거의 완벽하게 단절이 되어버렸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중년의 남자는 여전히 그 거만해보이는 미소를 잃지 않은채 크레르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소개가 늦었군. 나는 피아애니 백작가의 수석집사인 되니츠(Doenitz)라고 한다네. 꼬마아가씨처럼 뛰어난 예인을 모셔오라는 백작님의 명을 받들어서 이렇게 이 더러운 축제까지 몸소 행차해서 꼬마아가씨 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스카우트 하고있지”

되니츠가 손짓을 하자 큰 상자를 들고있던 호위병이 상자를 땅에 내려놓더니 상자를 열었다. 상자안에는 반짝반짝 빛나고있는 엄청난 양의 은화가 들어있었다.

“어떤가? 계약금은 여기 이렇게 충분히 준비해 두었네 이런 더러운 거리에서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더러운것들한테 보여주기에는 레이디의 기술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멋진 기술은 우리 시크안 백작님같은 고귀하신 분한테나 어울리지. 나를 따라 백작님께 그 멋진 기술을 보여준다면 분명 백작님께서는 피아애니 서커스단에 넣어주실거라네”

되니츠는 웃고있었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되니츠의 주변에서 크레르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고있는 호위병들이 웃으면서 ‘그럼 다음에 뵙죠’하면서 보내줄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크레르가 거절한다면 힘으로라도 억지로 끌고서 갈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무슨 더러운 벌래라도 보는것마냥 루인일행을 쓰윽 쳐다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아 물론 일행분들도 정중하게 대해드리겠네, 물론 자네가 내 제안에 동의한다는걸 전재로 하지만 말일세”

아무래도 되니츠는 루인일행들을 크레르의 동료로 착각한듯 보였다. 방금전 일어난 해프닝도 미리 다 각본이 준비된 쑈의 일종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얼떨결에 크레르의 동료가 되어버린 루인은 제노사이드가 캔슬(cancel)되어버릴때 땅에 떨어진 지팡이를 주우면서 상황을 살펴보았다.

루인이 보기에는 저 검은천사(크레르)가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는것으로 보였다. 가끔 뛰어난 실력의 예인들을 모아서 자신의 성을 붙인 서커스단을 만들어서 과시용으로 사용하는 귀족이 있다는것에대한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목격할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얼핏보니 저 검은천사는 아직 어린아이로 보였다. 비록 신비스러울 정도로 윤기가 흐르는 검은빛의 머리카락과 투명해보이는 은빛눈동자로인해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신비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한 140중반정도나 되어보이는 작은키와 정말로 어려 보이는 얼굴을 보건대 분명 12~3살정도 된 어린아이로 보였다.

게다가 입고있는 옷과 허리에 차고있는 초보자전용 단검으로 보건대 이제 마악 이 세계에 온 유저로 보였다. 저런 초보자(NEWBE)가 어떻게 그런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보여준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 저 아이와 자신들 모두 저 거만해보이는 되니츠라는 백작의 집사에게 거의 협박수준인 스카우트의 위협을 받고있는것이다.

“이거 위험하잖아?”

되니츠에게까지 들리지 않을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루인이 중얼거렸다.

유저중에서도 몇명의 고수들은 얼마전의 전쟁으로 공을 세워서 작위를 받고 귀족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의 직위는 평민이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귀족들은 네이티브였고 루인은 언제나 네이티브를 대하는것이 껄끄러워했는데 저런 거만해보이는 네이티브는 껄끄러운 수준이 아니라 피해다니고 싶은 심정이였다.

그렇다고 저 순진해보이는 초보자를 가만히 두기에는 루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인이 이 상황에 대한 대처를 채 생각하지 전에 크레르가 상자안에 가득한 은화를 몇번 쳐다보더니 되니츠에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저 돈을 다 줄테니 지금 날보고 따라오라는 건가요?”

대충봐도 은화 천개는 넘어보였다. 오늘 크레르가 이렇게 거리에서 공연을 하게된 이유가 따지고 보면 은화 한개덕분이였으니 그것의 천배가 넘는 천실버라는 돈은 엄청난 돈이였다.

“그렇지! 게다가 저것은 단지 계약금일 뿐이네 나를 따라서 백작님의 피아애니 서커스단에 들어온다면 저것의 몇배나되는 돈을 받는것은 물론이고 네가 하는것에 따라서 준남작으로 습급을 시켜주기도 하지 물론! 네가 하는것에 따라서지만 말이다”

되니츠는 벌써 크레르가 따라가기로 정했다고 생각하는지 지금까지 하던 반존칭도 무시하고 아랫사람대하듯이 크레르에게 하대를 했다. 하지만 크레르는 특별히 그런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공연을 바쁜시간 쪼개어서 봐주었고 함께 기뻐해주었으며 같은 공간을 나누어서 같은 시간을 함께 즐긴 관객들을 무시한 저 되니츠란 자가 엄청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크레르는 여전히 되니츠를 향해서 천상의 미소를 보여주고있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공연을 시작한 이유는 제가 잊어먹은 돈을 벌기 위해서예요 그 때문에 저는 그쪽을 따라갈수 없겠네요 지금부터 공연료를 받아야되거든요”

되니츠는 내심 놀랐다. 대부분의 평민들은 천실버나 되는 엄청난 양의 돈과 십여명이나되는 호위병을 보면 내심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는 그런것은 전혀없고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했다. 역시 자신이 사람은 잘본듯 싶어서 내심 자랑스러웠다. 저 아이를 백작에게 가져다가 바치면 얼마나 엄청난 상을 내리실지 기대가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아이가 말한것중에 한가지 걸리는게 있었다. 천실버를 보여주었는데도 잃어버린 돈을 벌어야 된다면서 자신을 따라가기를 망설이고있는듯 보였다, 그럼 도대체 저 아이가 잃어버린 돈이 얼마나 되길래 저러는건지 되니츠는 상상도 할수없엇다.

하지만 저 아이가 보여준 기술은 지금까지의 예인들과는 하늘과 땅에 비할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자세히보니 좀 꼬질꼬질하기는 해도 아주귀엽게 생긴게 몇년만 지나면 엄청난 미인이 될것같은 아이였다. 저 아이가 잃어버린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백작님께 말씀드리면 그정도야 해주실수 있을것이다.

“허허 네가 잃어버린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다만 나와 백작님께 가서 말씀드리면 그정도는 얼마든지 해줄수있을거다”

그런말 하면서도 되니츠는 약간이지만 긴장했다. 저아이가 잃어버린돈이 수십골드라면야 당연히 백작님이 해주실게 분명하다. 하지만 수백골드라면? 아니 그 이상이라면? 하지만 만약 저 아이가 잃어버린 돈이 엄청 나더라도 일단 끌고가서 매운맛좀 보여주면 돈에 관련된 일은 입에도 안꺼낼게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되니츠는 자신만만하게 크레르를 향해 말할수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루인일행도 긴장하면서 듣고있었다. 만약 수가 틀어진다면 백작을 적으로 삼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도망쳐 나갈작정이였다. 어차피 다른나라로 간다면 저들로서는 잡을방법이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크레르는 여전히 진지하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헤에- 하지만 저는 제가 잃어버린돈을 제가 공연을 한 정당한 대가인 공연료로 보충하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받아야할 정당한 대가인걸요”

되니츠는 그런 크레르를 보고는 도대체 저 아이가 잃어버린 돈이 얼마나 크기에 저 아이가 저러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도대체 네가 잃어버린 돈이 얼마나 큰 돈이기에 그러느냐?”

크레르는 되니츠의 눈앞에 검지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되니츠의 질문에 여전히 멋진 미소이지만 어쩐지 싸늘하게까지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답했다.

“1실버요”

그 말을 들은 되니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되니츠는 자신이 잘못들은것이라고 생각했다. 1골드를 1실버로 들은것이 아닐까? 1골드면 100실버이니 100실버정도면 상당히 큰 돈이였다. 하지만 10골드에 달하는 은화를 보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사람이 1골드정도를 벌기위해서 저런 공연을 했다는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실버라니? 저자가 지금 은근히 자신을 놀리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매우 나빠졌다.

자신이 누구인가? 시크안 백작님의 왼팔이자 시크안 저택안의 대소사를 모두 관리하며 피아애니 서커스단의 단장까지 겸하고있는 시크안백작가의 능력있는 수석집사장인 되니츠가 아니였던가. 아무리 거리의 예인치고는 뛰어난 여자아이라고는 해도 신분자체가 완벽하게 틀리다. 저렇게 실실 웃으면서 자신을 놀리고있는 꼬마와는 하늘과 땅 아니 그 이상의 차이가 있는 상류계급이였다.

“뭐..뭐라고 했나? 다시 한번 말해보도록 해라”

그래도 되니츠는 끓어 올르는 화를 꾹 눌러서 참았다. 저번에도 백작님이 관심을 가지고있던 집시여자아이를 자꾸 말꼬리를 잡는다고 한칼에 베어버리는 바람에 백작님에게 조금 혼난적이 있었다. 비록 크게 혼난것은 아니지만 하찮은 잡종때문에 백작님에게 혼난것은 되니츠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었다. 그런데 저 당돌해보이는 소녀의 실력은 피아애니 서커스단의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보다도 더 뛰어나 보였다. 게다가 저렇게 어린나이에 그런 실력이라면 앞으로의 발전가능성도 무한했다.

분명 저 소녀는 백작님의 마음에 쏙 들것이고 저번의 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인해 떨어진 이미지를 단숨에 올려줄수 있을것이다.

“이상하네요 분명 스프린이 이곳에서의 돈단위는 100실링이 1실버고 100실버가 1골드라고 말해줬는데 그게 틀린거였나요? 분명 은색으로 반짝반짝빛나는 동전이 1실버가 맞을텐데요 아까 그 상자들속에있던 돈이 1실버짜리 맞죠?”

역시나 되니츠가 잘못들은것이 아니였다. 크레르는 특별한 의미없이 그저 순수하게 물어본것이지만 되니츠는 크레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을 비꼬고 놀리는듯이 느껴졌다.

되니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것을 본 루인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파티원인 데칼민과 카로스와 루나티스와 리힌에게 슬며시 신호를 보냈다. 전투중에는 말하기 여의치 못할때가 더 많은 법이다. 스톡된 주문을 개방시키는중이거나 급박한상황에 처했을때는 말보다는 눈빛등으로 보내는 작은 신호가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기 쉬운 경우가 있었다. 지금처럼 상대방들에게 들키지 않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때에도 유용했다.

루인이 다른 파티원들에게 보낸 신호는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여의치 않으면 도망가자는 뜻이였다.

점점더 얼굴이 일그러져가는 되니츠와 되니츠의 눈치를 보며 이 자리에서 피하고 싶어하는 루인들과는 달리 크레르는 전혀 다른생각을 하고있었다.

이제 공연이 끝났으니 공연료를 받을시간이였다. 저 산더미같은 돈을 받을생각은 없었으므로 노점상에서 사먹은 음식값을 낼려면 공연료를 받아야했다. 이곳의 인심이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엄청 많은 사람이 모여서 공연을 봐주었고, 일부분의 사람만이라도 몇실링씩 공연료를 지불해준다면 충분히 외상값을갚고 잃어버린 돈 1실버를 보충하고 이제 편한마음으로 축제를 즐길수있을거라고생각했다.

하지만 저 되니츠라는 사람의 곁에있는 덩치큰 남자들이 주변에 모여있는 시민들을 내쫒고있는것을 보게되자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비켜주시겠어요? 제 공연을 본 사람들한테 관람료를 받고싶거든요”

결국 그 말을 들은 되니츠가 폭팔했다.

되니츠는 플라톤제국에서도 손꼽히는 귀족인 피아애니 백작의 왼팔이였다. 그렇기에 왠만한 귀족들도 자신 앞에서는 조심스런 언행을 보여줬고 하물며 평민들은 자신의 그림자도 밟지못했다. 그런 자신이 정중하게 모셔간다고 했으면 엎드려 절이라도 하면서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망신을 주다니 여기서 한칼에 베어버리고 싶은게 되니츠의 솔찍한 심정이였다.

“저 계집을 당장 잡아 들여라!”

하지만 그냥 죽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재능이였다. 억지로라도 끌고가서 적당한 매질로 성격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고 백작님에게 바치는것이 가장 나은 선택으로 생각되었다. 물론 자신이 직접 말이다.

되니츠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되니츠의 호위병들은 칼을 뽑아들었다. 멀리서 구경하고있던 시민들은 십여명의 장정들이 칼을 뽑아들었는데도 되니츠가 귀족가의 측근이라는 사실때문에 마을 경비대에 신고를 하더라도 어쩔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발만 동동 구르고있었다.

되니츠의 호위병들은 칼을 뽑아들고 잠시 크레르의 눈치를 살폈다. 저 작은 꼬마아이는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 저 한무리의 사람들은 꽤나 강해보였다. 특히나 제노사이드의 불꽃을 다루는 저 마법사가 가장 위험해보였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톡을 개방시키고 발동을 명하는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저 마법사가 만약 주문을 외운다면 그 즉시 단칼에 베어버릴 속셈이엿다.

“뭘 멀뚱멀뚱 눈싸움을 하고있는게냐! 어서 저 아이를 포박하지 않는게냐!”

하지만 호위병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되니츠는 호위병들의 뒤에 숨어서 독촉만을 해왔다.

먼저 움직인것은 루인이였다.

“리힌! 네가 저 아이를 맡아줘 내가 길을 열도록 하지!”

흑기사 리힌이 아무말 없이 크레르에게 다가가 크레르를 한손에 안아들었다.

“뭐하시는 거에요? 전 관람료를 받아야 한다니까요”

하지만 리힌은 크레르를 보고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위험하니 얌전히 있으라는 뜻이였다. 크레르도 지금 상황이 안좋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냥 공연을 했으니 공연료를 받으려고 했고 저 되니츠라는 남자의 제안은 나름대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되니츠는 화가났고 그 결과 이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졌다. 무슨 일을 벌이려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들이 하는것을 가만히 보고있기로 결정했다.

루인은 천천히 걸어나오며 되니츠의 호위병앞에 단신으로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지팡이에 손을 올렸다.

“스톡 개방(STOK ON) 주문(SPELL) 제노사이드(ZENOCIDE) 시전준비 개시”

루인이 주문을 외울려고하자 몇명의 호위병이 루인에게 칼을 휘둘렀다. 스톡을 개방시키는 마법사는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목검조차 피하지 못할정도로 무력했다. 특히나 완전개방까지 오래걸리는 고위급의 주문일수록 그 딜레이는 컸다. 제노사이드정도의 주문이라면 거의 30초간은 제대로 주변의 상황에 대처를 하지 못한다고 볼수있었다.

하지만 루인을 향해 휘둘러진 칼들은 은빛섬광에의해 저지당했다.

“훗 너희들의 상대는 내가 해주도록하지”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건틀릿 끝자락 하나 보이지 않던 바스가 튀어나와 들고있던 검을 휘둘러 한번에 3명의 검을 단숨에 막고는 루인의 앞에 섰다.

루인의 제노사이드는 거의 스톡이 완료되어 이제 그 불꽃을 뿜을 장소만을 고르고있었다. 위험하다는것을 느낀 되니츠의 호위병을이 루인의 곁에서 조금씩 물러나며 굳건했던 포위망을 조금씩 허물어 트렸다.

“핫핫핫! 자유기사(Free Knight)바스 등장이시다!”

바스의 등장에 되니츠의 호위병들은 더욱 긴장했다. 마법사 한명에 여자와 꼬마애정도라면 쉽게 제압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신경쓰였지만 크레르를 안고있느라 제대로 싸움에 참여하기 힘들것으로 보였기에 저 마법사만을 제압하면 손쉽게 자신들의 우위로 몰아갈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마법사는 스톡의 개방을 끝낸듯 보였고 번쩍거리는 하프 플레이트 메일과 위협적인 바스타드소드로 무장한 자유기사까지 등장 했다.

마법 한방정도라면 되니츠가 가지고있는 쥬얼스톡(jewelstok)으로 디스펠마법을 개방시켜서 막는다고 쳐도 저 마법사가 사용할수있는 주문이 단 하나라는 보장도 없었다. 자신들은 10명이 넘기에 마법사가 주문을 개방시킬려고하면 제압을 할려고했으니 그 시도는 갑자기 등장한 기사에게 막혀서 무위로 돌아가버렸다. 명백하게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이였다.

“루인아! 내가 도망간줄 알았지? 하지만 그것은 네 착각이였다. 나는 저들의 빈틈을 노리고있었던 것이다! 핫핫핫!”

십여명의 호위병을 앞에두고도 당당하게 자신의 검한자루로 파티원들을 보호 하려고하는 바스는 그야말로 기사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바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은 되니츠와 그의 호위병뿐이였다.

“바스! 이 바보자식아 어서 피하지 않고 뭐해! 너 혼자 10명이랑 싸울셈이냐!”

어디선가 루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바스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혼자서는 힘들지만 네가 있잖냐. 일단 저기 재수없어 보이는 늙탱이한테 제노사이드 한방 갈겨버려! 네가 스톡을 개방할 시간은 내가 벌어주마!”

하지만 어디에서도 제노사이드의 불꽃이 터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이구 저 바보! 나 오늘 사용할수있는 마법은 다썼잖아? 아까 그 주문은 블러프(Bluff속임수)였다고! 그냥 도망칠 시간을 벌기위해서였단 말이야!”

그제서야 바스는 기억해냈다. 루인이 오늘 쓸수있는 마법은 제노사이드 2방과 디텍팅 한방. 그중 디텍팅은 오우거를 찾아다니다가 썼고. 제노사이드 한방은 오우거의 시체를보고 놀라서 얼떨결에 개방해버렸다.

그리고 한방은 스페셜하게 매운 링온링을 먹고 분노에 가득찬 루인이 바스를 겁주기 위해 스톡을 개방하는 바람에 써버렸다.

말그대로 지금 루인은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 즉 무능력자였다. 그런데 그런 루인을 믿고 자신만만하게 10명이 넘는 호위병들 사이로 돌진해온 바스는 말그대로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벌벌떨수밖에 없었다.

“저기 아하하하, 오늘 날씨 참 좋군요?”

호위병의 수가 3명만 적었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바스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스륵

스륵

호위병들은 그제서야 자신의 임무가 생각난듯 바스에게 칼자루를 향했다.

“튀어!!!”

바스는 크게 외치며 루인의 속임수에 속아서 만들어진 호위병들의 작은 틈새 사이로 냅다 달렸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은 바스가 말하기 전에 이미 도망가고있었다.

되니츠의 호위병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게 도망가는 바스의 뒷모습만을 바라보았다.

 

 

 

 

 

 

 

 

 

 

 

 

 

*****

바스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서도 엄청난 속도로 도망쳤다. 다행히 길가의 사람들은 대부분 중앙광장에 모여있어서 바스의 주행을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바스의 희생으로 이미 한참전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루인들과는 아무래도 거리상으로 차이가 좀 있었다. 크레르를 들쳐업은 데다가 바스가 입고있는것과 거의 동일한 무게의 갑옷을 입고있던 리힌이 제일 뒤쳐져서 달리고있었기에 바스는 리힌의 뒷모습을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갔다.

“여기 정도면 일단은 안전할겁니다”

“어이! 바스야 여기다!”

루인은 드림마을의 지리를 잘 아는 데칼민의 안내에 따라 골목길의 어두운구석으로 가서 바스를 불렀다. 엄청나게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오는게 꽤나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링온링에 당한걸 생각하니 오히려 고소할정도였다.

“헥헥, 이제 그놈들 더이상 안 쫒아 오냐?”

골목길의 구석에있는 나무술통 위에 걸터앉아서 숨을 고르고있던 데칼민이 바스의 표정에 황당하다는듯이 대답했다.

“형 애초에 쫒아오지도 않았어요”

되니츠들은 바스와 루인의 한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더니 멍해져서 채 바스를 쫒는것을 잊어먹었버리고 멍하니 도망가는 그들의 뒷모습만을 바라봤을뿐이였다. 그런데 바스는 그것도 모르고 10여명의 남자들에게 쫒긴다는 생각에 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어서 열심히 일행들이 달려가는 곳으로 뛰었었다.

“뭐야! 그럼 너희들 왜 그렇게 빨리 뛰어간거냐!”

되니츠들이 쫒아오지 않는다면 이렇게 빨리 달리는게 오히려 더 수상했다. 어차피 오늘은 축제 날이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인파사이로 섞여들어간다면 인상착이를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되니츠가 루인들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가는 한무리의 사람들은 오히려 더 눈에 띄는법이다.

그렇기에 차라리 뛰지 않고 모르는척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은 중앙광장쪽으로 가서 조용히 섞여버리는게 더 나온 선택이였다.

루인은 툴툴거리는 바스를 바라보며 대단히 중요하고 절대 밖으로는 유출되어서는 안되는 사실을 말한다는듯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핏보면 나이트로 착각할 크리쳐가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푸하하하하”

루인의 말은 루인이 진지한표정으로 말했기에 그 효과가 더욱 컸다. 술통위에 앉아있던 데칼민은 뒤집어졌고 샐쭉한 표정으로 바스를 바라보면 루나티스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쿡쿡거리고 있었다. 카로스도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돌리고있는것이 제법 즐거운 모양이였다. 유일하게 일행중에서 웃지 않는것은 마치 석고로 만든듯이 표정에 변화가 없는 리힌뿐이였다.

“형 죄송해요 하지만…우하하핫”

억지로 웃음을 참으면서 바스에게 걸어가던 데칼민은 바스가 마치 브레스라도 뿜을것처럼 크왕하고 울부짖자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날 놀리는거냐!!”

루인은 얼핏보면 굉장한 쿨가이로 보일정도로 멋진 미소를 지어보렸다.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또다시 티격태격거리고있는 루인과 바스를 무시한채 크레르가 자신을 들쳐업고있는 과묵한 흑기사에게 말했다.

“저기 이제 슬슬 내려주지 않겠어?”

리힌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크레르의 요구대로 슬며시 땅으로 내려주었다. 크레르는 옷에 묻어있는 먼지를 팡팡소리나게 털더니 일행의 리더로보이는 루인에게 말을걸었다.

“저기 말이야 도대체 지금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왜 아까 그 남자가 날 납치해갈려고 한걸까?”

크레르가 보기에는 이 사람들은 대부분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정도로 보였다. 지금은 비록 굉장히 어려보이지만 크레르는 20대 중반의 나이였다. 그래서 초면이지만 특별히 존대는 하지 않았다. 루인은 지팡이로 루인의 목을 졸르던 손을 풀며 크레르를 바라보았다.

은빛눈동자가 반짝였다.

“이거 실례했군요. 일단 자기 소개부터 하도록 하지요. 저는 마법사인 루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 이놈은 제 절친한 친우인 자유기사 바스라고 하죠”

루인은 크레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겉모습은 굉장히 어려보이는데도 얼떨결에 루인의 입에서는 존댓말이 나왔다. 무언가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마르크스의 성녀가 저런분위기일까? 인간이 아닌듯 그녀의 목소리에는 신비함 울림 마져 존재하고 있었다.

루인과 바스의 소개가 끝나자 쿡쿡거리다 자빠진 데칼민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레인져인 데칼민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의 소개로 이어졌다.

“도둑인 카로스입니다”

“잘부탁합니다. 성직자인 루나티스예요”

“…….”

언제 쿡쿡거리면서 웃었냐는듯이 신중한 표정으로 돌아온 루나티스양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모두의 소개가 끝났는데도 리힌이 벽에 기대어서는 진중한 표정만을 짓고 크레르를 바라보고있자 파티의 진짜 리더인 바스가 목에 걸려있는 지팡이를 무시한채 크레르에게 리힌을 대신 소개했다.

“저기 분위기 잡고있는 친구는 무서워 보이지만 사실은 순정파 흑기사지 이름은 리힌이라고 하고 흑기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저런지 말수가 좀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무서워 하지 않아도 돼요 꼬맹이 아가씨”

바스는 루인이 제노사이드의 불꽃으로 장난을 쳐서 크레르가 내려왔을때와 되니츠때문에 10여명의 남자들에게 포위당했을때 모두 일행들과 떨어져있었다. 그래서 크레르가 그 신기에 가까운 공연의 주인공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저 상황이 안좋기에 다칠지도 몰라 잠시 데리고있는 동네 꼬마아이정도로 생각했다.

꼬맹이라는 말을 들은 크레르는 무언가 울컥하고 입밖으로 튀어나올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반나절동안 도대체 몇번이나 꼬마라는 소리를 들은것인지 이제는 입에 붙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 이 일행들 덕분에 방금전의 명백히 위험했던 자신이 그 상황을 탈출했던것이니 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빚을 진것이라고 할수있었다. 그저 평상시와 똑같이 냉랭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나를 뭘로 보고있는거야? 꼬마라니 정말 황당해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라고.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말은 가려서 해줬으면 좋겠어. 올해 25살인 여자한테 꼬마 꼬마 꼬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한순간에 토해진 크레르의 말에 바스일행은 모두 얼어버렸다.

저렇게 어려보이는데 25살? 같은 여자인 루나티스도 크레르가 많이 쳐줘야 15살정도나 먹었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5살이라니 엄청나게 잘못짚은 것이였다. 파티에서 가장 연장자인 바스와 비교해봐도 크레르의 나이가 2살이나 많았다.

“누..누님이셨군요! 이거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저 누님이 너무 젊어보이셔서 아하하하”

바스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사태를 수습해 보려고 나섰지만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크레르도 그제서야 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분명 오늘 일어난 사건의 주 원인은 크레르였고 이들은 얼떨결에 사건에 열루된 일종의 피해자였다. 게다가 크레르의 외모는 자기가 보기에도 충분이 10대 초중반정도로나 보이는 어려보이는 외모였다. 이들에게는 분명 잘못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열받는것은 열받는것이였다.

“뭐 저기 바스군도 실수인거 같고 아 지금 자기 소개 중이였지?”

아까부터 하는짓으로 봐서는 바스를 그냥 바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크레르는 벙찐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루인 일행에게 공연할때의 영업용 스마일을 지어보였다.

“내 나이는 방금 말했으니까 또 말해줄 필요는 없지? 잘 부탁해 나는 크레르. 초보자(NEWBE)야”

**********

되니츠는 그 당돌한 계집애와 그 아이의 일행이 사라진 골목길을 이를 악물며 쳐다보았다. 그냥 조용히 잡혀주었다면 손수 매질몇대로 용서해주고 백작님에게 바칠려고했는데 이렇게 보는사람들이 많은장소에서 자신에게 엄청난 망신을 주었다.

“용서할수 없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일행들을 보니 꽤나 경험많은 모험가들로 보였다. 아마도 일행들을 믿고 그렇게 당돌하게 자신을 능멸한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모험가라고 하더라도 자신은 수백명의 사병을 보유하고있는 피아애니 백작의 왼팔이였다. 직접 움직일수있는 병사의 수만해도 수십명에 달했다.

되니츠는 이 마을 전부를 뒤져서라도 꼭 그 계집을 잡아서 매운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이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가 눈에 거슬리지만 비천한 여행자 출신의 준남작이 순수혈통의 귀족이 마을에서 사병을 풀어서 고작 여자아이 한명을 잡는것으로 불평을 토로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일이 있을것을 대비해서 백작의 인장을 챙겨오기것이 정말 다행이였다. 그 인장만 보여준다면 이곳의 경비병까지 동원할수 있다. 그렇다면 고작 조금 날랠뿐인 계집애 하나 잡는것은 식은죽 먹기일 것이다.

“큭큭큭”

그러자 왠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되니츠는 벌써부터 크레르를 잡고 어떻게 매운맛을 보여줄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있었다.

“이곳의 영주가 사는곳을 아는사람 없느냐?”

그러자 되니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되니츠의 호위병중 한명이 앞으로 나왔다. 되니츠는 그 사병에게 명령했다.

“안내해라. 이 곳에 귀족모독죄를 범한 빌어먹을 년이 있으니 영주의 도움을 받아 오늘밤안에 잡아야 겠지 않느냐”

말 그대로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였다. 귀족 모독죄는 즉시 처분해도 아무런 불평을 할수가 없는 중죄중에 하나였다. 그런 중죄를 범한 범죄자를 수색하는데 영주가 손을 빌려주지 않을리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그 소녀의 인상착의를 말하기만하면 오늘밤이 끝나기전에 이곳 경비대에 의해 잡힌 계집을 볼수 있을것이다.

서서히 붉은 노을이 지고있었다.

 

 

 

 

 

 

 

 

 

 

 

 

 

*******

샹그릴라를 오래동안 해온 유저라고 생각했다. 비록 입고있는 옷은 초보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적인 장비였지만 가끔씩 그런 옷을 입고다니는 올드유저(OLD USER)가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굉장히 나이가 여려보이지만 사실은 파티원들보다도 몇살은 연상인 저 사람도 그렇게 좀 특이한 취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에? 초보자시라구요?”

바스는 아까전보다 더욱 얼빠진 소리를 내밷었다. 동안에 키가작아서 나이보다 엄청나게 어려보이는 경우는 있을수있어도 초보자가 그런 엄청난 몸놀림을 보이는경우는 말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까 그 공연은 마치 괴도 레이븐의 재림을 보는것 같았어요 크레르 누나가 초보자시라면 애초에 그런 몸놀림을 할 민첩성이 부족하다고요”

데칼민은 민첩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도둑은 아니였지만 민첩하기로는 도둑 못지 않다는 레인져였다. 샹그릴라를 즐기는 여명의 여행자들의 모든 신체적 능력은 그들이 가지고있는 능력치(STATUS)에 따라 달라진다. 현실에서 아무리 힘이 강한사람이더라도 근력수치가 낮다면 샹그릴라에서는 무거운 검하나 제대로 들지 못한다. 그렇기에 저런 엄청난 민첩성을 보여주는 크레르가 뛰어난 도둑에다가 민첩성을 극도로 올려주는 아티펙트(보구)를 몇개이상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크레르님의 몸놀림은 신마전쟁당시 활약했던 괴도 레이븐의 몸놀림과 닮았습니다”

현직 도둑인 카로스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괴도 레이븐은 엄청난 민첩성을 보여주었고 지금도 많은 도둑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크레르가 보여준 공연과 레이븐의 모습은 무언가 닮아있었다. 하지만 레이븐은 신마전쟁당시 대부분이 소실된 엄청난 능력의 아티펙트(보구)를 다수 지니고 있었고 그 아티펙트들을 완벽하게 사용해서 그런 능력을 구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앞에서 바스파티원들을 몇번이나 놀라게한 동안의 여성은 아무리봐도 그런 아티펙트는커녕 제대로된 장비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설마 정말 초보자인가?’

정확한 사실은 당사자인 크레르만이 알고있었다. 어떤이유로 초보자이면서 저런 신체능력을 손에 넣었을수도 있고 사실은 엄청난 하이레벨의 유저이면서 자신들을 놀리고있는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정확한 사실을 알기위해서는 크레르를 그들의 파티로 초대해서 크레르의 유저정보를 보는수밖에는 없는것이다.

크레르는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냥 나는 평소에 하던대로 했을뿐인걸 그게 그렇게 이상한거니?”

“저기… 누나의 스테이터스중에서 민첩성의 수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실수있나요?”

결국 데칼민이 크레르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사실 같은 파티원이 아니라면 정말로 실례되는 질문중에 하나였다. 특히나 네이티브가 듣고있는 장소에서 물어봐서는 안되는 금기어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여기 이 골목길에는 숨어있는 사람도 없었고 듣고있는 사람도 전원 유저였다.

“난 그런거 잘 모르겠어”

데칼민은 역시라고 생각했다. 자기라도 자신의 능력치는 남에게 쉽게 가르쳐 주지는 않을것이다. 믿을만한 파티원이라면 몰라도 오늘 처음봐서 방금 막 통성명을 끝났을분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에는 이 세계에서 가지고 있는 능력치의 중요도는 극히 높았다.

“역시 안 알려 주시는군요. 저도 이해합니다. 이 게임에서 능력치를 알려준다는것은 자신의 전력을 전부 알려준다는것이니 그렇게 쉽게 아무한테나 알려줄수는 없겠죠”

하지만 크레르는 안 알려준것이 아니라 못 알려준것이였다. 애초에 능력치 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황혼의 여행자이기에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게 없다니까? 안 알려주는게 아니라 못 알려주는거야”

유저이긴 유저이지만 자신의 능력치가 수치로 구현화 되지 않은존재. 마치 네이티브처럼 모든것을 자신이 직접 해내야 하고 그 플레이 난이도는 여명의 여행자의 수십배나 되기에 전세계적으로 서비스 하고있는 이 샹그릴라에서도 채 몇명 플레이 하지 않아서 그저 샹그릴라의 안내서 구석에 조그맣게 쓰여진 설명에서나 언급되는 존재들의 이름이 크레르의 말을 듣고있던 일행들의 머리속에 스쳐지나갔다.

“설마 황혼쪽 유저이십니까?”

“응 그래 맞아”

그제서야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초보자이면서 어째서 그렇게 엄청난 민첩성을 보유할수 있었는가. 그리고 왜 저렇게 어려보이는가. 그것은 모두 크레르가 별종들의 모임이라는 황혼쪽 유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저 처음보는거 같아요 황혼쪽 유저분은…”

루나티스는 파티원들과 같이 있을때 빼고는 대부분 신전안에서 스톡을 높이기 위해 하루종일 기도를 하고 지낸다. 그렇기에 그 수가 극도로 적은 황혼쪽 유저는 말조차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파티원들도 황혼쪽 유저를 본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사실 당연할 지도 모른다. 주변에 황혼쪽 유저가 있더라도 그는 쉽게 그 사실을 밝히지 않거나 마치 네이티브인양 행동할것이다. 그것은 황혼쪽 유저가 한번죽는다면 어떤일이있어도 절대로 다시 부활이 불가능한 패널티를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네이티브 조차도 고위 성직자의 부활주문이 있다면 자연사가 아닌 사고나 상처에 의한 사망일경우 부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황혼의 여행자들은 그런것마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런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크레르는 그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이제 이해다 됬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바스 일행을 쳐다볼뿐이였다.

“일단 이야기는 제가 알고있는 술집에 가서 하도록 하지요 슬슬 어두워 지는군요”

카로스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술집으로 가자는것으로 이끌어 나갔다. 사실 여기서 크레르와 헤어져서 바스일행은 여관으로 가서 게임밖으로 나가는(LOG OFF)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였다. 하지만 카로스는 크레르에게 여러가지로 흥미가 일었다. 그것은 단순히 처음보는 황혼쪽 유저에 대한 호기심뿐만은 아니였다.

그쪽 방면에 관심이 많은 데칼민도 황혼쪽 유저니까 정도로 납득해 버린 한가지 사실을 카로스는 계속해서 의문을 품고있었다.

아무리 능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황혼쪽 유저는 그들의 정신적 허용량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만이 이 게임을 즐길수 있다. 여명쪽 유저에게 날개가 달렸다면 금새 적응하겠지만 황혼쪽 유저라면 현실과의 차이로 절대 익숙해 질수가 없을것이다. 그렇기에 아까 보여준 놀라운 몸놀림도 그녀가 현실에서도 가능한 기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기에 크레르라는 여성에 대해 조금더 알고 싶었졌다.

하지만 카로스 조차 황혼의 여행자에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황혼의 여행자가 HSLS을 이용해 이 게임에 접속할때의 모습이 바뀌는 이유 였다. 황혼의 여행자는 현실에서는 신체라는 족쇄에 엃매여서 평생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모든 잠재능력을 완벽히 구사할수 있는 현실의 몸보다 더욱더 그들의 정신에 어울리는 완벽한 몸으로 새로이 샹그릴라에서의 생활을 하고있는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카로스 뿐 아니라 크레르또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거리에서의 공연때 크레르가 현실에서의 자신의 전성기때의 실력을 뛰어넘어서 더욱 자유롭게 하늘을 날수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그저 크레르는 정말 오랫만에 나는거라 더 몸이 가벼운거 같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 속사정이 있는지도 모른채 바스가 카로스의 제안에 열렬히 동의의 의사를 표현해 왔다.

“찬성!! 오늘 먹고 죽어보자!”

어차피 오늘은 적당히 축제를 구경하다가 펍에 모여서 술파티나 벌일생각이였다. 크레르도 특별히 갈곳이 없었기에 바스 일행을 따라 술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때 바스 일행은 자신들이 완벽히 도망쳤다고 생각했던 되니츠로부터의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술집은 왠지 어두운 분위기와는 달리 실내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깔끔했다. 드림마을의 뒷골목을 몇십분이나 헤메면서 점점 더러운 골목이 나오는것을 보고 내심 불안해 한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안내되어진 술집은 꽤나 깔끔한 모습에 전체적으로 향기로운 훈제소세지의 향이 풍기는 펍으로서는 꽤나 괜찮은 곳이였다.

4인용 테이블을 2개로 합쳐서 한테이블에는 여자인 루나티스와 크레르와 파티의 막내인 데칼민이 앉았고 나머지 테이블에는 나머지 일행이 앉았다. 앉기가 무섭게 바스가 카로스에게 물었다.

“여기 무슨술이 맛있냐?”

카로스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듯이 바로 대답했다.

“기어스가 아주 좋지”

기어스는 흑맥주의 일종으로 맥주치고는 상당히 높은 도수와 달짝지근한 거품이 특징인 맥주였다. 남자들은 기어스로 통일하는정도로 시키기로 했지만 여자인 루나티스와 크레르가 문제였다. 게다가 크레르는 실제로 나이가 많다고는 해도 샹그릴라 안에서는 굉장히 어려서 술을 먹는다는 행동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저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보면서 바스가 묻자 대답은 데칼민에게서 튀어나왔다.

“형 나도 맥주!”

“어린게 밝히기는! 뭐 너정도면 샹그릴라 안에서는 다 큰 성인이니 마셔도 되겠지. 그래 시켜주마, 오늘이 평범한 날이냐! 우리 파티가 대박이 난 날 아니냐! 그건 그렇고 루나티스랑 크레르누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크레르는 왠지 자신이 끼기에는 좀 안 어울리는듯한 자리로 보였지만 그래도 이들의 호의를 무시할수는 없었기에 따라왔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것은 무리였다. 어릴때부터 고난이도의 공중묘기를 항상하면서 지내왔고 그런 크레르에게 알코올이란 독이였다. 그래서 성년식때 마셔본 축하주를 제외하고는 태어나서 알코올을 접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술을 시키기에는 좀 그렇고 그냥 다른 마실거리를 시키기로 결정했다.

“술 말고 그냥 식사를 할께”

루나티스는 결국 고민하다가 그냥 술을 마시기로 했다. 별로 술이 강한편은 아니였지만 오늘은 바스 파티가 대박을 만나고 게다가 몇년간 샹그릴라를 해오면서도 처음보는 황혼쪽 유저를 만난 특별한 날이였다. 게다가 기어스라는 흑맥주는 처음들어보는 이름이였다. 결국은 루나티스도 기어스를 한잔 시키기로 결정했다.

“주인아저씨 여기 기아스 6잔이랑 여기 누님이 먹을 정식 1인분 주세요!”

먼저 나온것은 기어스였다. 투명한잔에 검은빛이 도는 걸죽한 액체와 하얀 거품이 가득 담겨있었다.

“헤에 거품이 참 예쁘네요?”

루나티스는 기어스의 거품을 보더니 감탄사를 터트렸다. 다른 맥주들과는 달리 기어스의 거품은 마치 생크림처럼 부드럽게 흑맥주 위에 올려져 있었다.

살짝 한모금 마셔보니 정말로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과 부드럽게 넘어가는 기어스의 달콤한 향이 입안가득 퍼졌다. 맥주라고하면 씁쓸한맛만이 있다고 생각했던 루나티스로서는 달콤한 맛의 기어스가 더 입에 맞았다.

“크아! 죽이는데?”

어느새 반잔정도 되는 기어스를 한입에 먹은 바스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집의 기어스 맛은 끝내주지, 우리 길드에서 운영하는 가게이니 오죽 하겠나”

조용하게 기어스를 홀짝이고있던 카로스가 바스에게 말했다.

“뭐야? 너 도둑이잖아. 그럼 이 가게 도둑길드에서 운영하고 있다는거야?”

도둑길드에서 때때로 술집등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 가게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무엇보다 도둑길드에서 운영하는 술집이라면 좀더 음산하고 얼굴에 상처가 잔뜩난 남자들이 도박판을 벌이고있다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깔끔해보이고 맛있는 흑맥주를 파는 이 술집이 도둑길드가 운영하고있는 술집이라니 예상 밖이였다.

“그래. 나도 가끔 여기에서 서빙을 하곤하지”

“에헤? 그렇구만 가끔 너 길드일로 사라지더니 여기서 서빙을 하고있었군! 진작 말했다면 이 형님이 손수 놀러 와줬을텐데 왜 말 안한거냐?”

카로스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그냥 기어스만을 마시고 있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루인이 껄껄 웃으며 카로스 대신 바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너 같으면 너같은 괴수가 매일같이 찾아오면 좋겠냐?”

그 말을 들은 바스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는 이상하게 불길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차 술 먹는데 안주가 없으면 안되겠지?”

바스의 손에는 검은색의 물체가 쥐어져 있었다. 살아있는 생물인지 바스의 손에서 벗어나려는듯 연신 푸득거리고 있었다.

바스는 그 정체 불명의 생명체를 들고 주방쪽으로 다가가서는 크레르가 시킨 정식을 만들고 있던 도둑길드 길드원인지 그저 평범한 요리사인지 정체를 알수없는 요리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 까마귀 좀 구워주실수 없을까요? 역시 술안주에는 까마귀 고기가 최고죠!”

그 말을 들은 루인의 입에서 아차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바스가 들고있는 검은 생물은 루인에게는 거의 목숨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앗! 내 패밀리어!! 언제 가져간거야!”

바스가 손에 들고서 굽기 편하게 털을 뽑을려고 하고있는 검은 생물은 루인의 패밀리어인 검은 까마귀였다. 분명 로브 사이에서 쿨쿨 낮잠을 자고있었을 텐데 어느새 바스의 우악스러운 손에 잡히게 된것인지 루인으로서는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털이 뽑히는것은 막아야했다. 패밀리어와 주인은 일종의 정신적 교감을 행하고 있기에 패밀리어가 느끼는 고통은 전부 그 주인인 루인또한 느끼게된다.

“우리 귀염둥이를 잡아먹을려고 하다니 이 자식이!!”

루인은 의자들이 넘어지는것도 상관하지 않은채 바스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희미한 미소를 띈 얼굴로 카로스는 바라보았다. 언제봐도 재미있는 친구들이라니까

“저엉 말로 이거 마시 있는데요오~”

루나티스는 조금씩 홀짝거리더니 어느새 꽤 커다란 잔에 가득 들어있던 기어스를 전부 마신 모양이였다. 그리고는 채 반도 마시지 않은 데칼민의 기어스를 단숨에 집어올리더니 꼴깍꼴깍 소리가 나도록 마셔버렸다.

“쿠헷 마시써요오~”

기어스는 맥주치고는 그 도수가 엄청나게 강했다. 그저 달콤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고 저렇게 술마신다는 생각없이 마시다보면 취하기 마련이다.

“우아앙~ 루나누나가 내 기어스 뺏어 먹었어~”

루나티스가 데칼민의 술을 마시자 데칼민은 테이블에 엎드려서 훌쩍거렸다. 루나티스는 데칼민 몫의 기아스까지 다 마시고는 울고있는 데칼민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갑자기 입고있던 성직자용의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헤헤헤, 왠지 쪼오끔 덮네요오”

카로스도 어느새 취했는지 정작 이 술집에 모인 이유를 망각한채 기어스를 한잔 더 시켜서 꿀꺽거리며 마시면서 사이 좋게 놀고있는 바스와 루인의 모습을 보며 소리내서 웃고 있었다.

술집은 마치 바스들이 전세를 낸것처럼 바스파티를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바스들의 떠들석 함은 사람들이 가득찬 술집 못지 않았다.

크레르가 시킨 정식이 나왔지만 크레르는 바스 일행들이 마음껏 즐길수 있게 자리를 피해주기로 했다. 크레르가 술집의 2층에 있는 발코니로 나가자 크레르가 시킨 정식은 바스 일행의 안주거리가 되어 무참하게 도륙되어져 갔다.

“내 패밀리어!!”

“우아아앙”

“옷을 벗어도 벗어도 덥네요오~”

그런 그들을 카로스만이 실실거리며 바라보고있었다.

*******

“재미있는 사람들이야”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 있었고 하늘에는 은빛의 달 드림문이 떠있었다. 떠들썩한 축제의 분위기가 멀리떨어져 있는 크레르에게까지 느껴졌다. 오늘 처음만난 사람들이지만 크레르는 저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사이가 좋아보이는 저 사람들이 정말로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즐겁게 웃고 떠들며 같은것을 보고 같이 생활하며 언제나 즐거울거 같은 저 일행들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괜찮아 난 지금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고있는걸”

언제나 목표로했던 신의 기술을 향한 갈망. 비록 현실에서는 그것이 단 한번의 사고로인해 절대 이루어질수 없는 환상이 되었지만 이곳에서라면 언젠가는 이루어 질지 모르는 크레르의 단 하나의 꿈.

“살아가는 목표가 있으시군요”

크레르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기사가 말을 걸었다. 리힌이라는 이름의 저 흑기사의 목소리는 크레르로서는 처음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아닌 마치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은 소년의 그것처럼 중성적으로 느껴지는 기분좋은 목소리였다.

“응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거야. 그래서 날아야해 높이 더 높이”

리힌의 석고상같이 무표정했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리힌은 천천히 크레르의 반짝이는 은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시작했다.

“꿈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는것은 정말 멋진 것 입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망이라는 이름의 꿈이 필요한것이죠. 하지만 그 꿈이란 어찌보면 덧없기도 한 것 일지도 모릅니다”

왠지 쓸쓸해보이는 표정으로 리힌은 크레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하늘에 떠있는 달로 시선을 옮겼다.

“거리에서 날고있던 당신은 정말로 빛나 보였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한 그런 존재만이 내뿜을수 있는 강렬함을 전 당신에게서 볼수 있었습니다”

리힌은 잠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달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크레르의 앞에 무릎을 꿇어서 눈높이를 크레르와 똑같이 맞췄다. 크레르의 은빛 눈동자와 리힌의 검은 눈동자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꿈만을 갈구하실겁니까? 날고 또 날고 그리고 언제까지나 하늘만을 갈구해서 결국 무엇이 남을것인지 생각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마치 지금이라도 울것만같은 리힌을 바라보며 크레르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크레르는 발코니의 난간위에 뛰어올라 그 위에 걸터 앉았다. 어디서 불어왔는지 바람 한조각이 크레르의 머리를 살짝 흐트려 놓았다. 크레르는 머리를 묶고있는 가죽끈을 풀어서 양손에 쥐었다.

긴 머리를 풀어헤친 크레르는 신비스러운 눈빛으로 발코니의 중앙에 무릎을 꿇고있는 리힌을 바라보았다.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이카로스의 이야기, 알고있어?”

리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카로스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밀납으로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았어,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결국 너무 태양에 가까이 다가간 이카로스는 결국 밀납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서 재가되었어”

하늘에는 은빛의 달이 떠있었다. 그 달처럼 은빛으로 빛나고있는 크레르의 눈동자는 멀고 먼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레르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도 왠지 취한것처럼 몽롱한 기분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카로스는 자신이 죽을것이라는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럼에도 혼자서 바람을 맞으며 날아 올랐어. 날고 날고 날고 또 날아서 결국 이카로스는 재가 되었어. 하지만 말이야 나 그 기분 왠지 이해할수 있을거 같아 나도 똑같은 기분이거든”

조용히 하늘을 쳐다보자 하늘에는 은색의 달만이 떠있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서인지 드림문을 제외하고는 단하나의 별도 보이지 않았지만 드림문만은 밝게 빛나 두꺼운 구름을 통과해 크레르의 눈동자에 비쳤다.

“나도 언젠가는 이카로스처럼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꿈을 찾았어. 날고 날고 또 날아서 언젠가는 그것에 도달할꺼야. 그것이 비록 불가능하더라도 나는 계속 갈구하겠지”

크레르의 말을 조용히 듣고있던 리힌의 눈가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리힌은 점점히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을 남기고 발코니에서 내려갔다.

“…똑같군요”

리힌이 나간 발코니에서 크레르는 풀어헤친 머리를 다시 묶을 생각도 하지 못한채 빨려들것만 같은 심연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축제의 밤은 깊어만 갔다. 주점안에서는 오늘 만난 몇몇의 작은 인연들이 여전히 시끄럽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크레르의 엘리시움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어두운 방안에 불빛이라고는 커다란 벽걸이형 프로젝터 TV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뿐이 존재하지 않았다. 엄청난 크기의 TV답게 그곳에서 나오는 불빛은 굉장히 밝았지만 TV가있는 방안은 농구를해도 좋을정도로 엄청나게 넓었다.

TV에서는 뉴스앵커의 목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음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영원 소프트에서 서비스중인 다중접속 가상현실 온라인게임 샹그릴라를 플레이 하던 20대 게이머가….]

TV에 나오고있던 뉴스앵커가 갑자기 어디에선가 전달되어온 쪽지를 받아들고는 놀라서 말했다.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J전대통령의 비자금 3조원의 출처가 밝혀져서 검찰에서 긴급대책 회의를….]

시끄러운 TV소리에 잠에서 깼는지 어둠속에 잠겨있던 관뚜껑이 들썩거렸다.

관뚜껑을 열고 나온것은 부시시한 얼굴의 창백해보이는 소녀였다. 소녀는 TV가 켜져있는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TV소리였네요. 난 또 누구인지 헌터(HUNTER)라도 찾아온줄 알고 놀랐어요”

소녀는 정말이지 이 게임이 마음에 들었다. 밤의 일족의 특성상 태양이 떠있는 낮에는 밖으로 나갈수 없이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시간이나 죽이고 있어야했다. 요즘 불면증이 온것인지 잠은 거의 오지를 않았고 그래서 길고긴 낮동안 방안에서 TV를 보거나 랜이 연결된 단말기로 여러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는게 일상이였다.

그런데 우연히 만나게된 샹그릴라라는 게임은 그 리얼함뿐 아니라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그녀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해 주었다.

처음에는 낮에만 샹그릴라에 접속했었는데 지금은 밤의 일족의 시간인 밤마저도 엘리시움에 접속해서 시간을 보냈다.

소녀는 부시시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는 관처럼 디자인된 단말기에서 나와서 냉장고로 다가갔다.

냉장고 안에는 먹을 음식이라고는 한가지도 없고 팩에 들어있는 빨간 액체만이 가득히 들어있었다.

“오늘은 O형으로 할까해요”

빨대를 꼽고 빨간 액체를 먹었지만 게임에서의 그 쾌감에 비하면 새발의 피만도 못한 더러운 맛이였다.

일단 대충 배를 채우고 다시 엘리시움에 접속해서 진짜 ‘식사’를 할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소녀는 TV의 전원을 끄고는 다시금 관처럼 생긴 단말기에 들어가서 뚜껑을 덮었다.

 

 

 

 

 

 

 

 

 

 

 

 

 

 

 

크레르와 바스일행이 술집에서 왁작지껄하게 놀고있을때 되니츠의 호위병중 몇명은 되니츠의 명을 받고 크레르들을 찾고있었다. 드림마을의 영주인 드림에게 지원병을 요청할동안 크레르들이 있는 위치만이라도 찾아두라는 명령이였다. 고작 3명이서 크레르들을 사로잡는것은 되니츠가 생각해도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만약 크레르일행이 보인다면 지채없이 달려와서 숨어있는곳을 알린다는 별로 어렵지 않은 임무였다.

“이보게 그 꼬맹이 보이나?”

켄턴이라는 이름의 호위병이 동료에게 물었다. 고작 3명이서 마을 전체를 수색하기에는 무리였고. 그래서 마을의 외곽에 있는 성벽의 근처만을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주변은 성벽의 그림자덕에 굉장이 어두웠다. 하늘에서 비추는 드림문의 빛도 대부분 가려져서 켄턴이 들고있는 횃불의 불빛을 제외하고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어두웠다.

“머리털 하나 안 보이네”

“흠 역시 그렇군. 대충 반대쪽 성벽까지 돌아보고 되니츠님에게 돌아가도록 하는게 좋겠네”

켄턴은 한손에는 횃불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롱소드를 들고는 동료에게 말했다.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분명히 드림영지는 지금 한창 축제로 마을전체가 달아올라서 시끌벅쩍해야했다. 그런데 고작 조금 마을외곽으로 나왔다고 해서 이렇게 조용하다니 평소와는 무언가 달랐다.

“분위기가 으스스 하구만”

“횃불에 비친 자네가 더 무섭네!”

켄턴뿐 아니라 켄턴의 동료들도 무서운지 시시한 농담을 주절거리며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걸어갔다. 농담을 지껄이며 몇번 웃다보니 왠지모를 공포감도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드림문은 굉장히 밝아서 왠만큼 짙게낀 구름정도는 뚫고 그 은빛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까지만 해도 잘 보이던 드림문이 전혀 보이지 않고있었다. 처음에는 성벽에라도 가려졌나하고 생각했지만 성벽에서는 꽤 떨어져서 걷고있는데도 드림문의 빛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것은 무언가 이상했다.

“여기가 방금 전까지 걷고있던 드림마을의 외각이 맞는거냐?”

켄턴은 왠지모를 불안한 마음에 옆에서 걷고있던 동료를 불렀다. 하지만 동료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너희들 뭐하자는거냐? 지금 장난하는거냐?”

갑자기 무서워진 켄턴은 얼떨결에 크게 소리질렀다. 하지만 방금전까지 분명 곁에서 같이 걷고있던 동료들의 인기척이 어느순간 사라져있었다.

“장난도 정도껏 치란 말이다!”

방금전과는 비교도 할수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켄턴이 외치자 켄턴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켄턴은 불안한 마음과 조금씩 커져만 가고있던 공포감에 큰소리를 질러댔지만 마치 성벽외곽을 걷고 있는게 아니라 큰 절벽위에 서있는것처럼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질뿐이였다.

‘여기는 어디인가? 방금전까지만 해도 드림 영지의 외곽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여기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아니 여기가 길은 맞는것인가? 내가 지금 절벽을 향해 가고있지 않다는 보장이 어디있는가?’

켄턴은 자신이 미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명히 길을 밟고 걷고있는데 마치 허공을 걷는것처럼 한발자국만 내딛으면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져서 죽어버릴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에잇!”

손에 들고있던 횃불을 마구 휘둘러 봤지만 보이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끊임없어 이어져있는것만 같은 어둠속에서 켄턴은 혼자 서있을뿐이였다.

왠지모르게 더이상 앞으로 걸어 가서는 안된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걸음 한걸음씩 천천히 뒷걸음질 치자 갑자기 무언가 단단한것이 켄턴의 움직임을 막았다.

“헉!”

켄턴은 깜짝놀라 들고있던 횃불을 놓쳐 버렸다. 분명히 켄턴이 밟고온 길이 있을텐데도 횃불은 끊임없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켄턴의 눈에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켄턴은 어느새 엄청난 깊이의 낭떠러지 앞에 서있었다.

“정말 이게 뭐냔말이다!!”

이제 켄턴을 지켜줄것은 오른손에 들고있는 한자루의 롱소드 뿐이였다. 왠지모르게 울고싶어지는 기분이였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켄턴의 손에 차가운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친감촉과 돌들이 이루고있는 형태로 보아서는 드림마을의 성벽이였다.

“뭐야? 성벽은 여기 이렇게 잘 있군”

왠지 긴장이 풀려서는 주저앉아 버리고 싶어졌다. 성벽이 있다는 것은 여기가 의심할 여지 없이 드림 마을의 외곽지대라는 것이 된다. 그저 불안한 마음에 무언가 환상이라도 본 것이겠지라는 생각을 하자 지금까지 켄턴을 뒤덮고 있던 불안이 한 번에 날아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허깨비를 보다니 몸이 허 해졌나보군. 분명 횃불도 바닥 어딘가에 떨어져 있겠지. 아마 땅에 떨어지면서 불꽃이 꺼진 걸 내가 잘못 본 걸꺼다”

켄턴은 중얼거리며 허리를 숙여서 땅에 떨어져있을 횃불을 찾기 시작했다.

“달이 참 밝네요”

켄턴에게 보이지 않아야 될것이 보였다.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곳에 서 있는 존재인데 이상하게 그 존재의 모습은 켄턴에게는 똑바로 인식되었다. 눈으로 보는 것 인데도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존재는 성벽위에 앉아서 켄턴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

온통 붉었다.

하늘에는 지금까지 그토록 찾아 헤메던 달이 떠있었다. 하지만 은빛으로 빛나는 드림문이 아닌 마치 지금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듯이 선명한 핏빛을 띄고있는 붉은색의 달이 떠있었다. 그 달빛을 받으며 피빛 달보다 더욱 붉은눈을 가진 ‘소녀’가 켄턴에게 말했다.

“멋진 밤이네요. 달빛 아래에서의 식사라니 정말 로맨틱하지 않나요?”

“왠놈이냐!”

켄턴은 날카롭게 고함을 질르며 들고있던 롱소드를 거칠게 움켜줘었다. 켄턴은 직감적으로 들고있는 검으로 저 소녀를 상대할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지금 믿을것이라고는 롱소드 한자루 뿐이였다. 켄턴은 롱소드가 생명줄인것 마냥 죽을힘을 다해 양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소녀는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소녀가 입고있던 검은빛의 망토가 일순간 펄럭였지만 그것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것처럼 어느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으악!”

소녀는 마치 중력이 반대로 작용하는듯 서서히 켄턴의 앞으로 내려왔다. 켄턴은 10여년동안 배운 검술을 완전히 까먹었는지 들고있던 롱소드를 그냥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소녀를 쫒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소녀의 망토를 몇번인가 베었지만 마치 망토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듯이 롱소드는 망토를 통과할뿐이였다.

“제 이름을 물으셨나요?”

붉은눈의 소녀는 성벽에 가로막혀 더이상 물러날곳을 잃은 켄턴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켄턴은 소녀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헛된 몸부림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는 피빛 환상의 지배자 소우쥬”

그리고 천천히 소녀는 켄턴에게로 다가갔다. 켄턴이 열심히 휘두르는 롱소드는 그저 무한한 어둠으로 뒤덮인 허공만을 가로지를 뿐이였다.

켄턴은 갑자기 이 소녀가 미치도록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검을 쥐고있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소우쥬가 켄턴에게 안겨왔다. 켄턴은 소녀의 몸에서 왠지 비릿한 향기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순간 소녀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 너무도 아름다우시군요”

켄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마치 소우쥬는 성녀처럼 고귀해 보였다.

소우쥬는 켄턴에게 안기면서 켄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당신의 주인이예요”

켄턴은 정말로 그순간이 행복했다.

******

드림성의 주인인 드림에게 오늘은 정말이지 즐거운 날이였다. 비록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이지만 오늘은 그의 생일이였고, 그를 축하해주기 위해 그의 영지민들과 꽤 많은숫자의 귀족들이 찾아와주었다. 게다가 드림이 용병으로 있을때에는 젼혀 알지 못했던 영주의 여러가지 격무에서 해방될수있는 몇안되는 휴일중에 하나였다.

“허허 피아애니 백작님의 왼팔인 내가 고작 더러운 평민계집한테 그렇게 엄청난 모욕을 당했다네! 이 어찌 비통해 마지 않을수 없는 사건이지 않겠는가?”

와인 한잔을 먹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축제의 꽃이라고 할수있는 마법사들의 불꽃쑈를 보고있던 드림에게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은 엄청난 두통을 선사해주었다.

‘으! 정말 짜증나는군. 영주가 되면 좀 편하게 놀고 먹을줄 알았는데 매일매일 놀지도 못하고 할것도 많아 죽겟는데 저런 늙은이나 상대해야되다니 그냥 용병으로 돌아가 버릴까?’

드림이 마음속으로 엄청난 욕을 퍼붓고 있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되니츠는 자신은 고귀하고 존엄하시고 이 세상 아래 단하나뿐이 존재하지 아니하시는 시크안 백작의 분신같은 왼팔이고 그런 자신을 모욕한것은 백작님을 모욕한 것과 똑같은 것이기에 저 이세상의 모든 욕이란 욕은 다 퍼부어도 아깝지 않은 고약한 계집애를 당장 잡아들여서 적어도 수십년간은 감옥에 가둬두어야한다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귀족을 모욕한것은 단숨에 목을 쳐도 시원치 않을 중범죄라네. 그런데 내가 직접 손을 좀 봐주고 한 몇십년 감옥에서 먹여주고 재워준다니 이 어찌 너그럽지 아니한 판결인가”

드림은 단순히 전투와 전쟁만을 반복하고 돈이나 모으는 용병의 생활이 지겨워 졌기에 몇년간 게임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고위귀족에게 성의표시(뇌물)를 보여줌으로서 귀족이 된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원망했다. 그저 경영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이 영지를 발전시켜나가는것도 재미있어 보였기에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해봤는데 거의 5년간의 귀족생활끝에 드림은 자신이 정치에는 소질이 없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그러니 그 극악무도한 중 범죄자를 잡는데 병사들을 빌려주는것이 그 어찌 영광스러운일이 아니겠는가”

드림은 저 비열해보이는 중년의 남자를 한칼에 베어버리고 그냥 이 나라에서 도망가서 다시 용병일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이 영지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어마어마 했기에 쉽사리 포기할수는 없었다. 저런 짜증나는 사람이라도 그냥 웃으면서 시키는대로 해주는것이 자신처럼 신규귀족이 할수있는 최선의 방법이였다.

“하하. 되니츠님의 훌륭하심은 잘 알았습니다. 지금 축제중이다보니 제 영지의 경비병중에서 7할정도는 마을의 치안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니 남은 3할정도로도 괜찮겠습니까?”

되니츠는 드림성의 경비병의 수같은것은 몰랐기에 일단은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3할이면 몇명정도인가?”

“저희 영지의 경비병의 수는 대충 100여명 정도입니다. 그러니 30명정도까지는 어떻게 해볼수 있다는겁니다”

30명정도라면 충분했다. 30명에다가 자신이 데리고있는 12명의 호위병을 합치면 거의 40여명에 달하는 그럭저럭 많은수의 병사들이 모인다. 잘 무장된 40여명의 병사정도라면 고작 조금 날랜 여자아이와 모험가 대여섯명정도 잡는것은 쉬운일이였다.

“허허. 자네를 내 잘못 생각했네. 여행자 출신의 비천한 신분의 몹쓸 영주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민들을 생각할줄 아는 훌륭한 영주였다니! 내가 백작님에게 잘 말씀드리겠네”

되니츠는 껄껄 웃으면서 기뻐했다.

“잘 봐주셨다니 영광입니다”

드림은 그저 저 되니츠라는 사람이 빨리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단순 히 게임이다. 경비병 30~40명정도 빌려주는거로는 드림에게 전혀 피해가 갈일이 없었다. 게다가 피아애니 백작의 인장을 들고있는 저사람에게 밉보이면 앞으로 드림에게 좋은 영향이 끼칠리가 없었다.

“휴우~”

드림의 부관과 함께 되니츠가 나가자 드림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오늘은 빨리 로그아웃해서 푹 쉬자고 생각했다.

드림은 아무생각없이 빌려준 30명의 경비병 때문에 일어날 엄청난 소동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이 술집(PUB)으로 그 자들이 들어간것이 확실하더냐?”

되니츠의 앞에서 벌벌 떨고있는 노인이 연신 굽신거리며 되니츠에게 말했다.

“예,예! 그렇구 말구요. 분명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이 술집으로 5~6명정도 되는 모험가 일행과 낡은옷을 입고있는 검은머리가 허리까지오는 허연눈의 소녀가 들어가는것을 똑똑히 봤구만요”

되니츠가 1실버를 던져주자 노인은 허리가 부러질듯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되니츠의 뒤에 서있던 드림의 부관이 조심스럽게 되니츠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기 말입니다. 되니츠님 이 술집은 좀 조심하는게 좋을것으로 보입니다”

되니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낡은 술집이였고 이 안에 있는 자들은 이제 독안에 든 쥐와 다를바가 없었다. 아직 정찰을 보낸 호위병 3명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의 4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니 이런 작은 술집정도야 쉽게 제압할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관련된 대소사를 대부분 직접 처리하고 있는 부관이 하는 말이니 단순하게 무시할수는 없었다.

“무슨 뜻이냐?”

드림의 부관인 그레이는 되니츠가 굉장히 껄끄러웠다. 평민을 인간이하로 취급하는 이자가 평민출신 보좌관인 자신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잘 알것 같았다.

“이곳은 우리 영지의 암흑가입니다. 게다가 이 술집은 도둑길드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술집입니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도둑길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곳은 전무할정도로 도둑길드는 전국적으로 넓게 퍼져있었다. 특히나 이 술집은 그레이도 정확히 모를정도로 은밀하게 무언가 중요한 의식을 행하는 도둑길드의 주요 요점중 하나라는 소문이 도는곳이였다.

“허허! 지금 나보고 고작 도둑놈 몇놈을 무서워해서 꼬리말고 도망치라는게냐?”

그레이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아무리 이 마을에서는 드림의 유능한 부관으로 거의 영지에 신경을 안쓰는 드림 대신 직접 대부분의 실무를 처리하곤하는 그였지만 되니츠가 보기에는 더러운 평민일 뿐이였다. 언제 되니츠의 분노가 자신에게 미쳐 수십명이나 되는 병사들의 칼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라올지 모를 일이였다.

“그런것이 아니라, 조금 조심하자는 것입니다”

되니츠는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웃고있었다.

“하핫! 여기 이렇게 건장한 병사가 40명이나 있는데 무엇이 무섭겠는가”

그레이는 도둑길드의 무서움을 잘 알고있었다. 이 자리에 모여있는 병사 40명이 아니라 그 10배인 400명이라 할지라도 이 술집의 지하에 있는 ‘그곳’에는 절대로 도달할수 없을것이다. 그레이는 전대 부관에게 부관자리를 넘겨받으면서 유일하게 들은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도둑길드만은 절대 건드리지 말게나,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조용하게 지내는 그들이지만 만약 그들을 건드린다면 네 아내가 웃으며 들고있던 식칼로 널 찌를것이네’

도둑길드는 단순한 범죄집단이 아니였다. 초대 길드마스터인 레이븐에 의해 설립된지 거의 수백년. 그들의 전력은 철인왕 플라톤이라 하더라도 쉽게는 건드릴수 없는 초국가적인 길드가 되어 다른 길드들과 나란히 어깨를 두고있었다. 특히나 정보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그 어떠한 길드보다도 더욱 뛰어난 거대한 길드중에 하나였다.

특히나 영지의 치안을 어지럽히기는 커녕 오히려 규율이 엄격해서 가난한 자들의 물건을 손대는 일은 거의 없었고. 만약 길드원이 아닌자가 강도나 살인등의 범죄를 저질르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길드단위로 범인을 잡는등 영지의 치안을 지켜주고있기에 그레이는 그들이 고마울정도였다.

나름대로 공생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었는데 저 멍청한 자때문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일이 생기게 됬으니 그레이는 어찌해야 될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간다면 가는거네”

되니츠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그레이는 솔찍하게 도둑길드에 대해서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플라톤의 굴지의 귀족인 시크안 백작의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일은 걷잡을수 없을정도로 커져버리게 된다. 영지안의 범죄집단을 보고도 소탕하기는 커녕 그들과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성격이 불같은 철인왕의 귀에 들어간다면 대규모 소탕작전이 벌어질게 분명했다. 불론 그 대상에는 그레이와 드림남작도 끼어있을것이다.

어쩔수 없이 그레이는 여차하면 도망가서 남작님께 알리자는 생각을하며 되니츠를 안내했다.

“그럼. 일단은 뒷문으로 가도록 하지요. 정문으로 간다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기습작전을 하자는 말이군!”

“그런게 아닙니다만….”

그레이는 한번도 이 술집으로 와본적이 없었다. 다만 술집의 앞문을 길드원이 아닌자가 통과한다면 극히 위험하다는 것만은 이야기로 들어서 알고있었다. 그렇다고 뒷문이라고 해서 안전한것은 아니였지만 적어도 앞문처럼 술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엄청난 수의 단검이 날아와 목에 박히는 일은 없을것이다.

“그럼 뒷문으로 덮치는것으로 하도록 하지”

되니츠는 벌써부터 크레르가 질르는 비명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지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 조금 무례해 보이는 평민은 너그럽게 용서해주기로 했다. 일단은 안내자 아닌가?

“되니츠님! 정찰을 보냈던 켄턴들이 돌아왔습니다!”

되니츠의 호위병중 한명이 되니츠에게 고했다. 되니츠는 고작 정찰을 보냈을뿐인데 몇시간이나 늦게 돌아온 켄턴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켄턴은 되니츠를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는 그 빨간 눈으로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되니츠는 당장 벌을 내리고 싶었지만, 일단은 저 술집안에 있을 무뢰한 계집을 잡는것이 먼저였기에 벌은 나중에 주기로했다.

“일단 바로 저 술집을 덮칠것이네 그러니 알아서 행동하거라”

켄턴은 되니츠의 얼굴을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정신이 온통 술집안에 있을 크레르에게 쏠려있던 되니츠는 켄턴의 입가에 얼핏보인 긴 송곳니를 보지 못했다.

켄턴들이 병사들과 합류하자 그레이의 안내에 따라 40명의 병사들과 되니츠가 일사불란하게 술집의 뒷문으로 향했다.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진 켄턴들을 보며 다른 호위병들이 수근거렸다.

“저놈들 어디가서 또 여자나 후리다 왔나보군”

“그러게? 저 자식들 눈 완전히 충열된것들좀 봐라. 좀 급했나 보구만 하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왠지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군. 아직 겨울까지는 멀었는데 왜 이리 추운거지?”

떠들고있는 병사들과는 달리 켄턴들은 조용히 앞에서 걷고있는 되니츠와 그레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있었다.

40명이 넘는 병사들중에서 후미에서 걷고있던 병사들 몇명이 소리없는 비명을 질러대며 한명씩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는것을 알고있는 자는 켄턴들뿐이였다.

그렇게 4명의 병사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가 스르르 나타나기를 반복하자 켄턴이 자신의 주인을 불렀다.

[마스터시여,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희 7명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들을 모두 제압하고 마스터께서 얻고자 하시는것을 얻게 해드릴수 있습니다]

소우쥬는 어둠속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우쥬는 입가에 묻은 빨간 액체를 레이스가 잔뜩 달린 손수건으로 닦고는 자신의 노예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두고보도록 해요. 제가 찾는 이상적인 먹이가 있는곳을 저들은 알고있어요. 저 되니츠라는 자를 노예로 삼는 방법도 가능하겠지만 저런 더러운 피는 제쪽에서 사절이예요. 일단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것이 좋겠네요]

소우쥬의 명을 들은 7명의 노예는 그저 조용히 다른 병사들과 섞여서 되니츠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술집의 뒷문이 나타났다. 여러 건물들이 난잡하게 지어져있는 암흑가답게 겨우 앞문과 뒷문이지만 거리상으로는 꽤나 차이가 났다. 대부분의 길들이 다른 건물들과 쓰레기들로 가득했기에 꽤나 돌아서 와야 했기 떄문이다.

“큭큭큭. 이제 덮치는 일만 남았군. 일단 10명씩 조를 이루어서 저 술집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뛰어난 마법사가 한명있는것이 신경쓰였지만 분명 그 모험가들은 지금쯤 술에 잔뜩 취해서 몸도 못 가누는 상태일것이다. 그런자들 몇명 제압 하는것은 40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데리고있는 되니츠로서는 식은죽 먹기라고 생각됬다.

원래 되니츠의 부하였던 12명이 나머지 30여명의 병사를 지휘하기로하고 병사들의 전력은 전혀 생각지 않은 4개의 조가 편성 되었다. 그레이도 칼은 한자루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호신용일뿐, 평소의 그는 칼 같은것은 한번도 휘둘러 보지 못했기에 되니츠와 함께 밖에 남기로했다.

“자 모두 술집으로!”

되니츠가 명령을 내리자 40여명의 병사들이 나무로 만든 술집의 건물을 부실듯이 돌진했다.

“어라? 밤늦게 산책한다고 보기에는 너무 인원이 많은거 같은데요?”

술집의 2층 발코니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던 크레르의 중얼거림에 술집으로 돌진하려던 병사들과 되니츠는 일제히 고개를 들어서 크레르를 바라보았다.

***********

소우쥬가 그 소녀와 만난것은 우연이였다. 밤의 일족인 소우쥬였지만 샹그릴라 안에서는 해가 떠있더라도 얼마든지 행동할수 있었다. 비록 밝은 태양이 거부감이 들기는 해도 낮에 활동할수 있다는것이 즐거워서 오늘밤의 식사의 목표물이나 찾아볼까 하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요?”

한걸음 움직이기도 힘들정도로 많은 인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보며 열광하고 있었다. 때때로는 귀가 얼얼할 정도로 커다란 함성까지 들렸다.

“궁금하네요. 한번 구경을 하러 가봐야 겠어요”

소우쥬가 사람들을 향해 다가가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 사이가 갈라지면서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우쥬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서 보고있던 것에 다시금 집중했다.

“작은 소녀네요”

사람들이 모여있는곳의 중심으로 와보니 한 소녀가 하늘위에서 공연을 하고있었다. 15~6세정도로 보이는 소우쥬보다 몇살은 더 어려보이는 소녀는 소우쥬가 보기에도 엄청난 공연을 너무도 손쉽게 해내고있었다.

“대단하네요. 저렇게 작은데 마치 우리들처럼 하늘을 날고있어요. 게다가 단순히 하늘을 나는것뿐 아니라 정말 아름답게 보이는 기술들을 자연스럽게 펼치고 있네요”

소우쥬도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는 조그만 비명도 지르고 어려운 기술이 성공했을때는 환호성도 질러가며 소녀의 공연을 감상했다.

[두근]

소녀는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행복해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공연을 하고있었다. 그런 소녀를 보면서 소우쥬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상해요. 저 소녀의 공연을 보고있으면 정말이지 행복 해지는것 같아요. 식사를 할때 느껴지는 차가운 쾌감과는 다른 기분이예요. 무언가 가슴가득히 조금씩 따뜻해지는 느낌이예요”

소우쥬는 누구에게 하는말인지 모를말을 중얼거렸다.

신기한 기분이였다. 다른사람들은 멀리떨어진 소녀의 표정까지는 보지 못할테지만 소우쥬에게는 소녀의 표정이 아주 가까이 존재하는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 소우쥬의 마음속에 무언가 작은것이 생겨나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공연을 하던 소녀는 갑자기 땅으로 내려왔다. 그 장소가 소우쥬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것이 왠지 기분나빴다. 누가 저 소녀를 땅에 내려오게 했을까? 그것이 궁금해진 소우쥬는 소녀가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있는 장소로 천천히 걸어갔다.

소녀는 큰 불덩이를 다루고있는 마법사에게 호통을 치고있었다. 왠지 다 큰 어른이 작은 소녀에게 혼나고있는것같아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소우쥬는 갑자기 목이 타는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소우쥬가 조금씩 소녀에게 다가갈수록 심해졌다.

그저 평소에 느끼던 본능적인 갈증이 아니라 무언가 더욱더 가슴속 깊은곳에서 우러나오는듯한 그런 기묘한 느낌이였다.

천천히 소녀의 하얀 목을 바라보았다.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마음속에 자리잡고있던 무언가가 계속해서 유혹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도록 할께요. 곧 밤이 온답니다. 밤은 저의 시간. 밤이 오면 당신이 빼앗아간 저의 마음을 반드시 되찾으로 가겠어요”

소우쥬는 소녀가 갑자기 나타난 중년의 남자를 피해서 어딘가로 도망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곧 밤이된다.

밤의 일족의 시간. 왠지 오늘밤은 평소보다 몇배는 길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

얼핏봐도 병사들의 숫자는 30~40명 이상으로 보였다. 크레르는 2층 발코니에서 많은수의 병사들에게 농담조로 말을 던졌지만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저들이 정말로 산책을 나온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극히 적었다. 이들이 악의를 품고있는 대상은 크레르들이 있는 술집이라는 사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도 잘 알수있을 정도였고, 술집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크레르와 바스일행뿐이였으니 분명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것이 틀림 없었다. 게다가 거리가 어두워서 약간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자는 낮에 만났던 이상한 중년의 남자였다.

그 중년의 남자는 크레르를 보더니 크게 외쳤다.

“저 계집이다! 저 계집을 잡는자에게는 10골드를 하사하겠다!”

“우와아아!”

마을의 경비병들과 되니츠의 호위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한창 축제를 즐기고 있었는데 긴급소집되어서 들어보지도 못한 귀족의 하수인의 명령에 따라 어린계집 한명을 잡기위해 이렇게 모이게 된것이 내심 마음에 안 들었는데 고작 작은 계집 한명을 잡는것으로 10골드라는 엄청난 양의 포상이 내려진다니 방금 전까지 될대로 되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소녀를 잡아야 된다는 욕망이 눈동자에 서리기 시작했다.

환호성을 지르며 지금 당장이라도 술집으로 덮쳐 들어올것 같은 병사들을 보면서 크레르는 잠시동안 생각에 빠졌다. 혼자라면 얼마든지 도망갈수는 있다. 하지만 술집안에는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여기서 도망친다면 저들의 적의는 그들에게 전부 쏠릴것이다. 꽤나 강해보이는 여행자들이였지만 지금쯤은 거의 만취 상태 일것이다. 제대로된 대응한번 해보지 못한채 저들에게 잡힐것이 불보듯이 뻔했다.

‘어쩌지?’

그렇다고 샹그릴라를 시작한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잠자코 잡혀줄수는 없었다. 자신은 무사히 도망치고 저 병사들을 바스일행에게 손하나 못대게 하는 방법이 없을지 생각해보았지만 특별히 좋은 생각은 나오지 않았다.

고민에 빠져있는 크레르를 보면서 되니츠는 크레르가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있다고 생각하고는 안면가득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그 모험가 일행과는 떨어졌는지 혼자있었다. 그 엄청나게 날쌔서 언제 도망 칠지는 모르지만 40명의 병사중에서 30명정도는 석궁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날쌔고 공중에서의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보여준 정도의 크레르지만 30여명이 쏘아대는 석궁을 피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약 크레르가 공중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한다면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어 버릴것이다.

크레르는 병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허리춤에 차고있는 단검을 양손에 한자루씩 쥐었다. 크레르가 생각해낸 대책은 스스로 미끼가 되어 저자들을 이 술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는것이다. 그때 일어나는 소동을 듣고 뻗어있는 바스일행이 도망치기를 빌어볼수밖에 없었다.

병사들과 싸우거나 할생각은 없었다. 한두명이라면 몰라도 수십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싸워서 이길수있을 자신도 없었고 게다가 비록 가상현실 이지만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는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저들을 이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하하하. 잠자코 잡힌다면 다치는 일은 없을것이다!”

크레르가 왼손에 들고있던 단검을 껄껄 웃고있는 되니츠를 향해 던졌다. 애초에 맞출생각은 없었기에 단검은 종이한장 차이로 되니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 옆건물의 벽에 박혔다.

“뭐…뭐냐!”

되니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만큼 어둠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한자루의 단검은 순식간에 40여명의 병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크레르는 발코니의 난간위에 올라가에 되니츠를 바라보았다.

“어라? 빗나갔네요. 하지만 아직 단검은 5자루가 더 남아있어요. 5자루가 전부 빗나가지는 않겠죠”

그러면서 왼손에 다시 단검을 쥐어서 던지는 시늉을 해보였다.

명백한 도발이였다. 크레르의 도발에 되니츠는 전혀 침착한 대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잔뜩 흥분해서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시체라도 갈갈히 찢어버려야 내 속이 풀리겠다! ”

여려명의 사람들이 한사람을 무사하게 생포하기는 어려운 일이였다. 하지만 여러명의 사람이 한사람을 사냥하는 일은 훨씬 간단한 일이였다. 크레르가 연약한 토끼가 아니라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있는 늑대라는 사실을 깨닫게된 병사들은 한순간 멈칫했지만 자신들과 크레르의 숫자 차이를 생각하며 다시금 적의를 뿜어댔다.

10골드란 엄청난 액수였다. 경비병 한명이 1년에 벌수있는 돈은 많아야 1~2골드였다, 10골드라면 위험한 경비병짓을 때려치고 플라톤의 수도로 가서 작은 가게를 차릴수 있을정도로 큰돈이였다.

병사들의 엄청난 살기를 보며 크레르도 당황하고 있었다. 만약 도망치는데 실패하더라도 어딘가로 끌려가서 며칠 잡혀있겠거니 하며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되니츠라는 남자는 죽여도 괜찮다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죽을정도로 나쁜짓을 한일은 없었다. 비록 무허가로 거리에서 공연을 하긴했지만 그것은 축제라면 의례 그렇듯이 웃으면서 공연을 보고 마음에 들면 동전한개정도 던져주는 즐거운 쑈같은 것일뿐이였다.

‘설마…’

설마 샹그릴라 안에서는 거리에서 공연을하는것이 죽여도 좋을만큼 큰 범죄가 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크레르의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어찌되었든 더욱 더 저들에게 잡힐수 없게되었다. 크레르는 단 한번의 죽음이 영원한 죽음인 황혼의 여행자였다. 만약 죽더라도 일정한 패널티와 함께 다시 살아날수있는 이모탈(불멸자)인 여명의 여행자와는 죽음이 가지고있는 무게 자체가 다른것이다.

크레르와 병사들의 조용한 대치상황은 되니츠의 명령으로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뭐 하느냐 저 계집을 잡지 않고!”

달빛이 병사들이 들고있는 검에 반사해서 번쩍거렸다. 발코니에 가만히 서 있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크레르는 발코니의 난간을 밟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오싹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비행이였지만 병사들은 크레르를 잡는것에 혈안이 되어서는 크레르의 멋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저 어둠속에서 조용히 크레르와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 보고있던 소우쥬만이 크레르의 모습을 눈이 풀어지는것도 깨닫지 못한채 바라보고 있었다.

크레르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병사들이 석궁을 장전하고 하늘로 쏘기 시작했다. 대부분 크레르의 근처도 맞추지 못하고 엄청나게 빗나갔지만 몇방정도 크레르를 스치고 지나간 볼트도 있었다. 볼트 한 발이 어깨죽지를 스치고 지나가자 작은 상처가 생겼고 크레르가 움직이자 핏방울이 땅으로 떨어졌다.

‘공중은 위험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면 저 병사들이 공격할 수단이 전혀 없을꺼라고 생각하고 공중으로 날아 올라서 도망갈 생각이였는데 그것은 완전히 크레르만의 착각이였다.

비록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병사들은 공중에있는 크레르를 공격할 무기가 있다는 것을 크레르는 몰랐다.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석궁이 스치고 지나간 어깨에서 지릿한 아픔이 느껴졌다.

석궁이 몇발 더 발사됬지만 크레르는 공중에서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서 들고있던 단검으로 석궁을 쳐냈다. 신기하게도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석궁에서 발사된 볼트가 날아오는것이 느리게보였다. 그렇지만 전부 쳐내는것에는 실패해서 석궁 한발이 크레르의 허벅지에 박혔다.

“윽!”

볼트가 뼈까지 관통해서 박혀 버렸는지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그 아픔을 참지 못하고 크레르는 다른 건물의 옥상 위로 떨어졌다.

명백한 크레르의 실수였다. 되니츠는 오늘 낮의 크레르의 공연을 보았다. 그렇기에 크레르가 공중으로 날아서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예측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책 정도는 아무리 되니츠라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그것을 크레르는 생각하지 못하고 언제라도 도망칠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안일하게 행동했다. 아까전 되니츠를 향해 단검을 던졌을때 모든 병사들이 자신을 쫒게하기 위해서 되니츠를 도발했는데, 차라리 그때 도망쳤더라면 이렇게까지 상처를 입는것은 없었을것이다.

“하하하. 역시 아무리 날래더라도 고작 계집애 한명일 뿐이군! 자 계집애가 저 건물 옥상으로 떨어졌다! 가서 잡아오는 자에게는 10골드의 포상을 내리겠다. 하하하!”

“저 계집애를 명중시킨 볼트는 제가 쏜것입니다!”

병사 하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포상은 저 계집을 명중시켜기만 해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완벽하게 저 소녀를 붙잡아야만 주어지는 것이다.

“하하. 굉장한 실력의 명사수로군! 내 따로 1골드의 포상을 내리겠네.

하지만 되니츠는 너무도 기분이 좋았기에 따로 1골드라는 포상을 내리기로 결정했고 병사는 뛸듯이 기뻐했다.

병사들은 그말을 듣고는 들고있던 석궁을 집어 넣고는 롱소드를 손에 쥐었다.

몇몇 병사들은 어린 소녀를 향해 공격하는것이 내키지 않아서 제대로 공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 병사가 석궁을 쏘아서 소녀를 맞추고 그것으로 1골드나 되는 돈을 손에 넣는것을 보고는 죄책감이 어느새 대부분 사라졌다. 어차피 저 소녀는 범죄자라고 했다. 그런 소녀를 죽이는것은 살인이 아니다. 오히려 큰 포상을 받을정도로 훌륭한 일인것이다.

아직 10골드라는 포상은 남아있었다. 그 포상을 받을수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계집을 잡아라!”

40명의 병사들은 기쁜 함성을 질르며 크레르가 떨어진 건물의 문을 거칠게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허벅지에 박힌 볼트와 공중에서 추락해버린 충격때문에 크레르는 잠시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허벅지와 어깨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때문에 금새 정신은 돌아왔다.

엄청난 고통이였다. 지금까지 각종 고난이도의 기술을 연습해오면서 여러번 사고를 당했고, 1년전에는 크레르를 재기불능으로 만들어버린 엄청난 사고까지 당했지만 그때에는 정신을 완전히 잃었기에 정신적인 고통과 좌절은 맛보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볼트는 그렇게 길고 굵지는 않았지만 뿌리까지 완전히 크레르의 허벅지로 파고들어가 끊임없이 엄청난 고통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으으으…”

크레르는 자신이 무언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트가 주는 엄청난 아픔과 함께 깨달을수 있었다.

다치면 아프고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 그리고 피곤하면 졸리고 그리고 엄청난 상처를 입으면 결국 죽겠지. 샹그릴라는 황혼의 여행자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가상현실이 아니였다. 황혼의 여행자인 크레르에게 있어서는 샹그릴라는 또 하나의 현실인 것이다.

“무한의 현실감(Unlimited Reality)…”

지금까지 내가 뭘했지? 오늘 낮의 거리에서의 공연, 그 기술들이 단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난 아마 죽었을꺼야. 그런 생각을 하며 크레르는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해진것을 깨달았다.

신의 기술을 시도하다가 죽는것은 얼마든지 환영이였다. 하지만 별로 대단할것도 없는 기술을 하다가 사고로 죽는것은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샹그릴라는 크레르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절대로 그 기회를 놓칠수는 없었다.

게다가 크레르는 자신이 샹그릴라에 대해 알고있는 사실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샹그릴라 안에서 높은 지휘를 가지고있는 되니츠라는 자를 적으로 삼았다. 조금만 깊게 생각했더라도 이런 상황에는 놓이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후회해도 이미 저질러 버린 일인걸. 일단 지금 중요한것은 여기서 도망치는 일이잖아”

40명의 병사들이 쏘아댄 석궁의 소리는 엄청나서, 멀리까지 울려퍼졌다. 분명 그 소리를 듣고 바스들은 도망쳤을게 틀림 없었다. 이제는 다른것은 생각하지 말고 안전하게 도망치는것만을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으윽!”

갑자기 척추가 관통 당하는듯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허벅지에 박힌 볼트를 몇번 빼내어 보려고 했지만 뿌리까지 완전히 박혀버린 볼트는 쉽사리 빠질려고하지 않았다.

“일단 이것을 빼내야겠는데”

비록 가상현실이지만 자신의 상처를 직접 보는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것까지 생각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뿌리까지 박혀있는 볼트를 빼어내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였다.

“웁”

혀를 깨물지 않기위해 머리에 묶겨있던 가죽 두건을 풀어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제대로된 소독도 할 시간이 없었기에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단검을 들고 볼트가 박혀있는 상처부위를 조금씩 넓혀갔다.

“으으윽!”

다른사람이 다친것을 몇번 응급조치 삼아 치료해 준적은 있었지만 직접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보는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제대로 된 치료는 불가능했지만 이 볼트를 빼내지 않는다면 제대로 걷는것조차 불가능했기에 억지로라도 빼내야했다.

상처를 단검으로 헤짚어놓자 겨우 볼트의 뿌리부분이 보였다.

억지로 상처를 벌리자 볼트의 끝부분이 머리를 내밀었다. 크레르는 복잡한 생각을 할 정신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기에 바로 볼트의 끝부분을 잡고 강하게 당겼다.

다행히도 볼트는 촉까지 완전히 뺄수 있었다. 만약 운이 없어서 대부분만이 빠지고 촉부분이 남아있었다면 상처는 더욱 악화되었을것이다.

“여기다! 여기에 그 계집아이가 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할정도로 아픈것을 참으며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있는 크레르 앞에 나타난 40개의 칼날은 은빛으로 빛나는 달을 반사하며 번쩍거리고 있었다.

 

 

 

 

 

 

 

 

 

 

 

 

 

 

비록 허벅지에 박혀있던 볼트는 겨우 뽑아냈지만 겨우 급한 응급처치일 뿐이다. 허벅지에 박힌 볼트가 무릎관절까지 관통했는지 발에 조금이라도 힘을주면 전기가 오르듯이 찌릿한 감각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어졌다.

크레르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벽에 기대고 섰다. 제대로 지형조차 되지않은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와서 비릿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치기 싫으면 얌전히 잡히는게 좋을거다!”

병사중에 한명이 크레르에게 롱소드를 겨누며 말했다. 크레르는 왼쪽다리외에 다른곳은 제대로 움직이는지 슬쩍 움직여봤다. 오른쪽 어깨에서도 조금씩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스친 상처일뿐 움직이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크레르는 억지로 아픔을 참으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옥상을 완전히 포위하고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겨우 사람 한명 잡기위해 모이신분 치고는 인원수가 너무 많은거 아닌가요”

병사들에게 말을걸면서 슬쩍 병사들이 들고있는 무기를 바라 보았다. 병사들은 크레르가 공중으로 도망치거나 뛰지 못할정도로 크게 다쳤다는걸 잘 알고있는지 석궁이 아닌 근거리용 무기만을 들고있었다. 크레르가 다리가 무사해서 재빨리 다른 건물로 뛰어 도망쳤다면 제대로 쫒아오거나 공격할 수단이 없겠지만 크레르의 현재 몸상태로는 불가능했다.

“미안하게 됬수다. 하지만 어쩌겠수. 나라고 꼬마 아가씨를 다치게까지 하면서 잡고 싶은 생각은 없수다. 그쪽만한 딸내미도 있는 몸인데 좋아서 이러고 있겠수? 그저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수 없이 하는수밖에”

마지막까지 크레르를 공격하는걸 망설였던 병사한명이 바닥에 침을 밷으며 들고있던 롱소드를 검집에 짚어넣었다. 멀리서 봤을때는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몰랐었는데, 가까이서 그 귀족이 중범죄자라고 떠들던 자의 모습을 보니 지금쯤 축제에서 즐겁게 놀고있을 딸이 생각났다. 딱 딸정도의 나이의 작고 연약해보이는 작은소녀 한명을 잡기위해서 이렇게 난리를 피웠다고 생각하니 왠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퉤엣, 뭐 저 아이를 잡는데 나 하나 빠진다고 뭐 큰일이나 있겠수. 10골드가 아깝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괜히 칼이라도 휘둘렀다가는 딸아이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볼것 같수다”

그 병사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다른병사들의 후미로 물러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다른병사들이 비웃었다.

“하하하. 멍청하긴! 10골드를 거저 챙길수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버리다니! 10골드는 이 케밀이 챙겨주겠다!”

내 사냥감에 손대면 죽는다는듯이 다른 병사들을 노려본 케밀은 다른병사들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몸집답게 바스타드 소드를 마치 롱소드처럼 한손에 가볍게 쥐고는 크레르에게 다가갔다.

“큭큭큭. 죽여도 좋다고 했으니 오랫만에 몸좀 풀어볼까?”

“케밀! 보상금을 받아내면 술이라도 한잔 사는거다!”

케밀이 나선것을 보고 다른병사들은 크레르를 잡아 10골드의 보상금을 받는것을 포기했다. 드림마을에서 가장 강한 경비병인 케밀을 성격을 건드려서 화나게 만들면 동료인 자신들고 곱게 지나가기는 힘들었다.

케밀이라는 병사 한명만이 크레르에게로 다가왔지만 여차하면 구경중이던 나머지 40명의 병사들까지 상대해야했다. 케밀은 드림마을에서 벌어지는 무투대회에서 몇번 우승한 경력이 있을정도로 드림마을에서는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워낙 잔인한 성격덕에 어딘가의 기사단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마을의 경비대에서 번돈으로 하루하루 술이나 마시고 사는 거친성격의 남자였다.

크레르는 샹그릴라 안에서 아주 몸집이 작아졌기에 유난히 케밀이 거대해 보였다. 마치 거인처럼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큭큭큭. 그렇게 겁먹은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좀 날뛰어서 날 즐겁게 해보거라. 몇초라도 더 살고 싶으면 죽을때까지 발버둥쳐 보란말이다!”

케밀은 고양이가 다 잡은 쥐를 가지고 놀듯이 크레르를 가지고 놀 생각이였다. 작고 연약해보이는 소녀를 괴롭히는 것이 왠지모르게 케밀의 마음을 들뜨게했다.

케밀은 잔뜩 겁먹은것처럼 보이는 크레르를 더욱 더 몰아붙이기 위해서 천천히 크레르가 있는 옥상의 구석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바스타드 소드의 칼날을 크레르의 눈앞에 위협적으로 세워보였다.

케밀은 손을 뻗으면 크레르를 잡을수 있는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왔다.

“너무 다가오시면 위험하실 텐데요”

크레르는 어느새 고통도 잊었는지 무표정해진 얼굴로 케밀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조금씩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잡기위해 모인 40명이나되는 병사들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입안이 썼다.

10골드. 크레르는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병사들이 저렇게 눈에 불을 키고 원하는것을 보아서는 굉장히 큰돈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 10골드를 위해서 이들이 자신을 잡을려고 이렇게 모인것이다. 그것도 죽이든 살리든 관계가 없이 순수하게 자신을 사로잡아 10골드를 벌기위한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유일하게 한명만이 크레르를 안타깝게 쳐다보고있었다. 방금전 케밀에게 바보취급 당하면서 크레르를 잡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그 병사였다.

케밀은 크레르의 말을 듣고는 우습다는듯이 코웃음을 몇번 치고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더욱더 크레르에게 다가갔다.

“위험할꺼라고 했어요”

크레르는 아직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은 단검을 케밀에게 휘둘렀다.

“컥!”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크레르의 기습이였지만, 케밀은 아슬아슬하게 크레르의 단검을 피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케밀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든 단검은 케밀의 얼굴에 작은 상처를 냈다. 만약 케밀이 피하는것이 늦었다면 상처는 얼굴이 아니라 목이였으리라.

“이…젖비린내 나는 꼬마자식이!”

얼굴에 상처가 난것을 보고 열받은 케밀이 들고있던 바스타드 소드를 강하게 휘둘렀다.

손으로 벽을 밀며 튕기듯이 케밀의 검을 피하며 크레르는 당황해했다.

크레르는 싸움같은것은 특별히 해본적이 없었다. 그저 예전부터 단검 던지기정도는 취미삼아 자주 해봤었고 아크로바트로 다져진 날쌘 몸놀림이 자랑이기는 했지만 특별히 격투기는 배운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케밀이 휘두른 바스타드 소드가 바람을 가로지르며 공격하는 모습을 초근거리에서 보자 주저앉고 싶을정도로 무서워졌다.

‘장난아니잖아!’

거의 본능의 수준까지 갈고닦은 반사신경덕에 케밀의 공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한쪽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고 들고있는 단검으로는 곰처럼 덩치가 커다란 저 남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힘들어 보였다.

케밀은 바스타드 소드를 거칠게 휘두르며 크레르를 공격했지만 크레르는 가까스로 케밀의 공격을 피할수 있었다.

케밀과 크레르의 일방적인 싸움을 병사들은 마치 투견이라도 보는듯이 휘파람까지 불어가면서 보고있었다.

“꼬맹이가 제법 날랜걸!”

“휘우! 케밀, 뒤쪽이다 뒤쪽!”

구경꾼들은 케밀이 소녀를 가지고 놀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케밀또한 당황하고 있었다. 스피드라면 꽤나 자신이 있었는데. 저 소녀는 멀쩡한 몸으로 피하는것도 아니라 제대로 서있는것도 힘들어 보일정도의 중상을 입은 다리로 자신의 공격을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잘 피해다니고 있었다.

“이 계집이!”

케밀이 그때까지 한손으로 잡고 휘둘렀던 바스타드 소드를 양손으로 잡고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앗!”

크레르는 지금까지처럼 멀쩡한 다리를 축으로 회전을 해서 피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밀려온 통증때문에 상처를 입은 발이 뒤틀렸다.

케밀이 휘두른 검이 은빛의 궤적을 그리며 크레르의 몸을 노리고 베어들어왔다. 케밀이 휘두르는 바스타드 소드의 움직임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인식되었다.

‘죽어’

‘죽어?’

‘죽어!’

천천히 날라오는 칼날을 보면서 크레르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바스타드 소드가 베어들어오는 짧은순간동안 무수히 많은 상념들이 뇌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챙!

크레르의 몸을 노리던 케밀의 검격이 다른 겸에에 의해서 간단하게 막혔다. 케밀은 자신의 검을 막은 주인공을 눈을 부릅뜨고는 노려보았다.

“벅스! 너 이자식! 이 계집은 내 사냥감이라고 했잖아! 왜 끼어드는거냐!”

하지만 벅스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로드시여, 다음 명령을”

갑자기 자신을 방해한 벅스를 보고 열받은 케밀이 벅스에게 칼을 휘둘렀다. 온힘을 다해 휘둘러진 케밀의 일격을 벅스는 간단히 한손으로 막아냈다.

“너 언제 실력이 이렇게?!”

케밀이 알기로는 벅스는 그렇게 실력이 뛰어나지도 그렇게 실력이 나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실력의 남자였다. 그런데 자신이 온힘을 다해 양손으로 휘두른 검을 한손으로 가뿐히 막아내다니 무언가 이상했다.

갑자기 엄청나게 실력이 늘어난 벅스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케밀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채 벅스와 몇명의 병사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켄턴도 끼어있었다.

“나 피빛 환상의 지배자, 소우쥬의 사냥감을 노리는 자들이 당신들인가요?”

크레르와 무릎을 꿇고있는 병사를 제외한 다른 병사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온 장소로 집중 되었다.

마치 얼어붙을것만 같은 싸늘한 냉기를 풍기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달빛을 받으며 어둠속에 녹아있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것만 같은 심연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소우쥬는 천천히 노예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방해물들을 제거하도록 하는게 좋겠네요. 죽이지는 말고 전부 무력화 시키도록 해주세요”

소우쥬의 등장을 무릎을 꿇고 맞이한 노예들은 붉은 안광을 번쩍이며 얼마전까지만해도 동료였던 자들에게 칼을 겨누었다.

먼저 공격한것들은 노예들이였다.

“크억! 자네들 미친건가? 왜 우리들을 공격하는겐가!”

몇몇사람들이 노예들을 말로 설득해 보려고했지만 무용지물이였다. 노예들은 예전의 동료였던 자들을 한조각의 감정도 실리지 않은 검으로 거침없이 베어갔다.

켄턴은 가볍게 케밀을 상대하고 있었고 다른 노예들도 거의 5~6명씩의 병사들을 맡아서 한방에 한명씩 간단하게 무력화 시키고있었다.

“엄청난 힘이다!”

병사들은 마치 오우거와 상대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노예들의 검에 실린 파워는 엄청나서 제대로 방어했는데도 들고있던 검을 놓치는 사람이 다수 발생할정도로 인간이상의 힘이 실려있었다.

“으윽”

순식간에 10명이상의 병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케밀을 상대하고있던 켄턴은 어느새 케밀의 한쪽팔을 베어 버리는데 성공하고는 다른 병사를 상대하고있었다. 마치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4배이상의 숫자차가 있는 전투였음에도 결과는 노예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같은편끼리 싸우고있네?”

노예와 병사들의 싸움을 크레르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케밀의 공격에 분명 죽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자신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은빛 머리의 소녀가 명령하자 어느새 같은편이던 병사들끼리 싸우고있었다.

“일단 도망쳐야겠어”

아까 전에도 이렇게 멍하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있다가 도망갈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볼트에 맞는 부상을 입었다.

저 소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것은 충분히 알수있었다. 일단 저 소녀가 시간을 끌고있는 도중에 재빨리 도망가는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생각이 들자마자 크레르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옆건물로 뛰었다.

“읏!”

충분한 도약력을 얻지 못해서 옆건물의 옥상까지는 제대로 뛸수 없었지만 간신히 건물의 창문에는 매달릴수 있었다. 몸을 몇번 흔들어서 반동을 얻은후 어두운 건물의 창문을 깨고들어갔다.

*********

크레르가 옆건물로 사라진지 채 몇분 지나지 않아서 제대로 서있을수 있는 병사는 단 한명도 없게되었다.

“으으윽…저 마녀!”

병사들은 바닥에 누워 신음소리를 흘리며 소우쥬를 공포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소우쥬의 노예들은 30명이 넘는 병사들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은것이 아무것도 아니였다는듯이 전원이 작은 상처하나 입지 않은 몸이였다.

“어라? 그 검은 소녀, 어디론가 사라졌네요?”

“죄송합니다. 로드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그녀가 도망가는것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습니다”

켄턴이 소우쥬에게 굉장히 송구스럽다는듯이 머리를 숙였다.

“괜찮아요. 지금도 이렇게 느껴지고 있어요. 그녀가 흘리는 달콤한 향기. 그것이 그녀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는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소우쥬는 조용히 눈을감고 그녀의 흔적을 느껴보았다.

달콤한 향기가 났다. 크레르의 허벅지와 어깨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이 떨어진곳에서 소우쥬가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향기로운 향기가 풍기고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도 달콤한 향기가 멀지 않은곳에서도 느껴졌다.

소우쥬는 조용히 노예들을 쳐다보았다.

“아직 밤은 시작일 뿐이예요. 천천히 찾아보도록 해요”

그리고 다시 소우쥬는 어둠속으로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소우쥬의 7명의 노예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크레르를 찾기 시작했다.

“뭐였지 저 괴물들은…”

그런 모습을 바닥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던 병사들은 멍하니 쳐다봤다.

******

크레르가 들어온 건물은 한치앞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어두웠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할텐데…”

벽을 손으로 짚어가면서 천천히 한걸음씩 걸었다. 크레르가 들어온 건물은 3층이였으니 밖으로 나가기 이해서는 일단 계단을 찾아야했다.

격렬한 움직임을 해서인지 허벅지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왼손으로 누르며 계속해서 계단을 찾았다.

이상하게 넓은 건물이였다. 분명 밖에서는 작은 상점에 붙어있던 별로 크지않은 건물이 였는데 거의 십여분을 걸어갔지만 복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복도에 빛이 없는것은 그러려니 했지만, 크레르가 들어온 창문을 제외하고는 창문마저 하나도 없었다. 창문이 있었다면 밝은 달빛이 새어들어와 이렇게 어둡지만은 않았을것이다. 차라리 아까 들어온 창문이 있는곳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도 했지만 어차피 그 수십명의 병사들을 피하기 위해서 들어온 곳이기에 어서 이 건물의 입구를 찾아서 밖으로 나가는 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이상한 무늬들이 잔뜩 새겨져있는 벽을 의지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벽을 손으로 짚고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방문이나 계단이 나오는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수있는 사실이였다. 미로에 빠졌을때도 한손을 벽에대고 계속 나가다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크레르는 오른손의 감각에 의지한 채로 한걸음씩 걸어갔다.

볼트가 낸 상처자리가 자꾸만 욱식거렸다. 분명히 볼트는 빼냈는데도 아직까지 박혀있는것만 같은 이물감이 느껴졌다. 상처때문에 잘 움직여지지 않아서 한쪽발을 억지로 질질끌면서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두워…”

정말로 발밑에 깔려있는 푹신한 카페트의 감각이 아니였다면 구름이 잔뜩낀 밤하늘을 날고있는 착각마저 들정도로 어두웠다.

“이렇게 어두워서야 앞에 함정이라도 있으면 바로 빠질지도 모르겠네”

그런 어이없는 상상을 하자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곳은 그냥 평범한 건물이다. 그런 함정이 있을리가 없을터였다.

그런데

“으갸갸!”

구멍이 뚫려있었다. 크레르는 어떻게든 구멍으로 빠지지 않을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그 노력은 금새 수포로 돌아갔다. 한쪽발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한쪽손은 길을 잃지 않기위해 벽을 짚고있었다. 그래서 한쪽발이 구멍에 빠지자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구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우!”

다행히도 구멍은 그렇게 깊지 않았다. 하지만 구멍에서 떨어진 충격때문에 크레르의 입에서 얼빠진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엉덩이부터 떨어져서인지 지끈하게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며 천천히 일어나는 크레르에게 거의 십여분간 전혀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보였다.

빛이였다. 크레르가 떨어진 장소에는 비록 작지만 꽤나 넒은 공간을 환하게 비쳐주는 빛이존재했다.

한동안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장소에서 있어서인지 밝은빛을 보자 몇초간은 눈앞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금방 빛에 적응해서 이 장소가 어디인지 살펴볼수 있었다.

넓은 공간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크레르는 떨어진 구멍이 어디쯤인가 하고 살펴볼려고 천장을 쳐다봤지만 어디에서 구멍은 없었다.

“허허, 그래 만월을 에이는 밤바람이 되려고 찾아온게냐?”

갑자기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나이가 많은 노인의 목소리였다.

크레르가 목소리가 들린쪽을 바라보자 방금 보인 커다란 문의 구석에있는 작은 책상에 앉아있는 노인이 보였다.

그제서야 크레르는 문에적힌 글자를 읽어볼수 있었다.

문에는 커다랗게 ‘도둑길드’라고 적혀있었다.

 

 

 

 

 

 

 

 

 

 

 

 

 

 

자신을 쫒는 많은 병사를 피해서 우연히 들어오게된 어두운 건물. 그 건물의 복도에 뚫려있던 구멍을 통해서 도달한 곳은 드림영지의 도둑길드 입구였다.

“저 구멍으로 이곳까지 온 전직희망자는 자네가 처음이네”

도둑길드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노인은 크레르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래도 자네는 운이 좋군! 이제 곧 전직시험이 시작 된다네. 아주 딱 맞춰서 온거지”

크레르는 아무래도 도둑길드에서도 전직시험을 치루는 장소로 떨어진듯 싶었다. 샹그릴라를 처음 시작하는 여행자에게 주어진 역활(Class)은 초보자. 그렇기에 제대로 샹그릴라를 즐기기 위해서는 더 상위 직업으로의 전직은 필수적이였다. 검사나 성직자나 마법사등의 직업은 길드가 공개되어 있어 찾기 쉽지만 도둑같은 직업의 길드는 대부분 비밀리에 어딘가에 숨어있기에 찾기가 힘들다.그런데 운이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 우연하게 도둑길드의 전직소의 입구를 발견한것이다. 하지만 크레르는 특별히 전직 같은것을 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얼마동안 초보자로 지내고 마음에 드는 직업을 찾아보기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특별히 전직에 대한것은 염두에 두고있지 않았었다.

“특별히 전직같은건 하고 싶지 않은걸요. 게다가 도둑이라니 범죄자잖아요?”

크레르는 솔찍한 심정을 노인에게 이야기했다.

“허허, 무언가 잘못알고 있지 않느냐. 도둑을 범죄라 취급하는것은 귀족 나부랭이들이나 그렇지. 자네를 여행자라고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귀족이신가?”

크레르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귀족은 아니에요. 지금도 그 귀족한테 쫒겨서 여기까지 오게된거죠”

귀족이라고 하니 오늘만 몇번이나 얼굴을 본 되니츠라는 남자가 생각났다. 정보부족때문에 일어난 사소한 원인의 사건때문에 몇번이나 죽을고비를 넘은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만 화가났다.

노인은 크레르의 말을 듣더니 몇번

“역시 내 보는눈은 여전하군. 자네는 황혼의 여행자가 아닌가?”

정곡이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분명히 겉으로 보기에는 네이티브와 여행자들은 거의 겉모습만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말투와 행동거지를 보면 여행자들은 미묘하게 네이티브와 다른모습을 보여주기에 몇번정도 대화한다면 그 사람이 네이티브인지 여행자인지 정도는 파악이 가능할수 있다. 하지만 여명의 여행자와 황혼의 여행자는 당사자가 직접 말해주기 전까지는 구분해 내는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수 있었다. 그런데 저 노인은 크레르와 채 몇마디도 주고받지 않고는 크레르가 황혼의 여행자라는 사실을 알아낸것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여행자들과 밤바람이 되고자 하는 지망생들을 만나왔네. 여명의 여행자들은 그 특유의 불가사이한 능력으로 밤바람을 지망한다면 대부분 간단한 시험만으로 원하는것을 손에 넣을수 있지. 하지만 여행자보다 그 수가 월등히 많은 평범한 밤바람 지망생들은 더욱 혹독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밤바람(도둑)이 될수가 있지.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을 구분해 내는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야. 하지만 자네는 무언가 다르네. 그들과는 다른 어떠한것이 느껴진다네. 나는 그런것을 본능적으로 알수가 있지”

노인은 왠지 아련한 눈빛으로 크레르를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동안 무언가를 천천히 생각하더니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평생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노세스의 가호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일컬어지는 황혼의 여행자이기에 그런것이 아닌가?”

크레르는 마음속으로 내가 황혼의 여행자인게 그렇게 티가나나하고 생각해 보았다. 특별히 눈에 띄는 특징이나 딱히 황혼의 여행자라고 이름표같은걸 달고 다니는것도 아닌데 저 노인은 한눈에 알아봤다. 역시나 노년의 노련함이란 대단한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하시네요. 정답이예요”

“더 대단한것은 자네지. 내가 알기로는 여명의 여행자들이 가진 불가사의한 능력을 황혼의 여행자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네. 그래서 황혼의 여행자는 평범한 지망생들과 엄청난 경쟁을 해야만이 밤바람이 될수가있네. 그래서인지 도둑길드에 등록된 여행자중에는 황혼의 여행자는 한사람도 없다네. 만약 자네가 길드의 전직시험을 합격한다면 최초로 황혼의 여행자중에서 도둑길드에 가입하게되는 사람이 되는것이네”

그것은 크레르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였다. 스프린에게서 들은 황혼의 여행자가 얻는 패널티중 하나였다. 여명의 여행자들은 그 직업의 기본에 대해 배우는정도의 전직테스트만을 거친후 초보자를 탈피하고 직업을 얻게된다. 하지만 황혼의 여행자는 어떠한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직업이 필요한 능력치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검사라면 체력이 좋아야하고 마법사라면 머리가 좋아야했다.

그렇기에 네이티브들이 받는 전직시험과 동일한 과정을 밟아야만 직업을 가질수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아까 크레르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전혀 해주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크레르가 다시금 노인에게 질문했다.

“그런데요. 방금 말하신 도둑이 평범한 범죄자와 다르다는것. 설명해 주실수 있나요?”

노인은 무슨 당연한것을 묻냐는듯이 대답했다.

“허허. 도둑이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네. 비록 월담을 하는 도둑들도 가끔가다 있지만, 대부분의 도둑들은 모험가들과 함께 던젼탐사를 주로하는 트레져헌터라고 할수있네”

노인은 크레르에게 도둑이 얼마나 훌륭하고 모험가들의 파티에 얼마나 필수적인 존재이며 그 외에도 직접 파티의 선두에 나와서 전사들처럼 싸우지는 못하지만 단검을 사용한 민첩한 전투로 어떠한 직업보다도 스타일리쉬하게 파티원들을 보조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 정도라면 도둑이 얼마나 위대한 직업인지 잘 알수 있을거라네”

노인의 열정적인 설명을 듣자 괜히 도둑이라는 직업이 대단해보였다. 특히나 단검을 사용한 스타일리쉬한 전투법이란것이 어떤것인지도 궁금해졌다.

노인의 설명은 그로부터 몇분간 더 계속되어졌다. 노인의 설명을 듣다가 크레르는 문득 이 노인이 한가지 착각을 하고있다는것을 말해줄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저기, 한가지 착각하고 계시는것 같은데요 전 아직은 직업을 가지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요”

노인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어째서인가? 도둑으로 전직한다면 굉장하 자네에게 도움이 될걸세. 도둑길드에서 제공하는 막대한 정보는 물론 단검을 사용한 스타일리쉬한 전투법도 개개인의 성향에 맞게 맞춤형으로 교육되어 지지. 초보자때는 불가능했던 많은일이 가능해진다네. 그런데 왜 전직을 하지 않는다는게냐? 지금이 딱 좋은 기회일세. 오늘을 놓치면 적어도 한달간은 전직시험이 없다네”

노인의 설명을 듣자 갑자기 망설여졌다. 아직 크레르는 다른직업에 대해 접해본적이 없었다. 조금더 많은 직업을 접해보고 진정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선택하여 이곳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노인이 말하는 도둑의 장점이 너무나도 끌렸다. 길드에서 제공하는 많은 정보는 물론 스타일리쉬한 전투법까지 가르쳐준다고 한다. 게다가 오늘이 아니면 한동안 기회가 없다지 않은가? 아까전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어느새 사라지고 도둑이라는 직업에대한 흥미가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정보와 전투법이라니, 나한테 지금 가장 필요한것 2가지잖아?’

크레르는 오늘 겪은 몇가지 사건을 떠올려 보았다. 크레르에게 제대로된 정보가 부족해서 되니츠에게 쫒기게 되었다. 그리고 옥상에서의 거구의 병사와의 싸움에서도 제대로 싸우는 방법을 전혀 몰랐기에 일방적으로 피해 다닐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직을 한다면 그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다고 하니 얼마나 매력적인 제안인가.

사실 그것은 도둑이 아닌 다른직업으로 전직을 하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였지만 노인의 열정적인 도둑 예찬론을 듣게된 크레르가 다른직업을 선택한다는 선택지를 생각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였다.

“지금이라면 전직시험을 칠수가 있나요?”

“물론이네!”

노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지만 어떻게 할것인지 고민중이던 크레르는 노인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고민하는 크레르를 보고 노인이 말을 걸었다.

“그렇게 고민이 된다면 일단 시험부터 봐보는게 어떤가? 만약 자네가 도둑이란 역활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험을 보고나서 포기하는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네. 이제 잠시후면 전직시험이 시작이라네. 전직시험은 굉장히 어려워서 한번에 붙을지 어떨지는 아무도 장담할수 없네. 그러니 일단 시험을 보고 도둑이 될지 안될지를 결정하는것이 어떻겠나?”

결국 노인의 말을 들은 크레르는 한번 시험을 봐보기로 결정했다. 노인의 열렬한 설명을 들어보니 딱히 도둑이 안좋은 직업인것 같지는 않았고,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시험만 보고 도둑이 되지 않는 방법도 있다고했다. 생각해보니 낮에 만났던 바스들의 일행중에도 카로스라는 도둑이 있었는데 특별히 나쁜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일단 시험을 봐보기로 할께요”

“허허! 잘 결정했네. 시험장은 저 문으로 들어가서 바로 안이라네”

그리고는 노인은 책상위에 놓여있는 책을 내밀었다.

“여기에 이름을 적어주게나”

책을보니 순서대로 숫자와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크레르보다 먼저온 전직희망자들의 이름으로 보였다. 크레르는 책의 가장 마지막인 100번째의 페이지에 크레르라는 이름을 적어서 노인에게 다시 내밀었다. 책은 크레르가 이름을 적자 한순간 빛나더니 어느순간 평범한 책으로 돌아와있었다.

“그럼 행운을 빌겠네!”

커다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크레르는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의 말대로 마음에 안들면 시험만 보고 도둑이 되지 않으면 되는것이 아닌가? 어차피 병사들에게 도망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것이니 차라리 잘된건지도 몰랐다. 전직시험을 보기위해 몇시간정도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병사들도 찾는것을 포기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호호호”

크레르가 문안으로 들어간것을 확인한 노인은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중후한 노년의 목소리가 갑자기 발랄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이름이 크레르라고 했지? 왠지 마음에 드는 꼬맹이인걸”

이제 전직시험이 곧 시작된다. 변장을 하고 이번 지망생들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던것은 슬슬 그만둬야하는 시간이였다.

노인은 목부분에 손을 대서 지금까지 얼굴을 뒤덮고 있었던 주름투성이의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벗자 나타난것은 목까지 찰랑대는 금발이 매력적인 아름다운 여성이였다. 노인, 아니 도둑길드의 마스터인 시아나는 마지막으로 접수한 크레르라는 아이에 대해 생각했다. 겉보기에는 굉장히 어려보였는데 신기해보이는 은빛눈동자에 담긴 알수없는 감정의 깊이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많은 좌절을 거쳐온듯 보였다. 그러나 무언가 생각은 잔뜩 하는것 같았는데도 조금 사탕발림으로 유혹했더니 금새 넘어오는 모습을보니 귀엽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황혼의 여행자라고했지? 생각한것보다 더 거물인거 같네. 호호호!”

시아나는 책상아래에 존재하고 있던 또 하나의 문을 통해서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

문을 통해서 조금 나아가자 거의 수백미터는 되어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많은수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굉장히 흉악해보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크레르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도 있었다. 연신 단검을 던졌다 놓았다하고 있는 멋있게생긴 남자들도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방이라고 불르기에는 너무 커다란 공간의 중앙에 놓여있는 여러개의 테이블들의 근처에 모여있었다.

“사람이 엄청나네”

들어오는 입구에서 순서대로 이름을 적는것으로 보이던 책에 크레르의 이름이 적힌 곳의 페이지수는 100페이지였다. 한페이지에 한명의 이름만을 적는다고 생각해도 100명이였다. 이 중에서 몇명이나 합격할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치열한 경쟁이 될것 같았다.

광장의 중앙에있는 테이블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한줄기 불빛이 테이블들의 중앙에 있는 무대를 비추기 시작했다.

무대에는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손에는 흰색으로 빛나는 막대기를 들고 서있었다.

남자가 말을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막대기가 빛나면서 광장 가득히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리고 밤바람을 지망하시는 이곳에 모인 모든분들에게 이 리킨스 인사드립니다!”

남자가 쓰고있던 모자를 벗으며 테이블들에 앉아있는 전직 희망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길드 가입을 목표로 이곳에 이렇게 모여주신것 정말이지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같아서는 여기에 계신 모든분들을 동료로 받아주고 싶지만. 도둑길드는 소수정예를 기본으로 하는 실력파 길드! 오늘 모이신 100분의 사람들 중에서 합격하셔서 도둑길드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실수 있는분은 단 5분입니다! 전직 시험은 총 3단계로 진행되고 그 감독은 제 옆에 계시는 교관분들이 담당해 주실겁니다!”

남자의 곁에는 어느새 노련해보이는 교관들이 서 있었다. 크레르는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적당히 앉아서는 남자의 말을 들었다.

“자 그럼 첫번째 시험이 바로 시작됩니다. 첫번째 시험으로 남으실수 있는 분은 1/3인 30분이 되겠습니다! 그럼 첫번째 시험의 내용이 공개됩니다!”

어디선가 드럼을 치는듯이 두두두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대에 매달린 3개의 현수막중 한개가 펼쳐지면서 그곳에 적힌 글자가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도박(Gamble)]

현수막에는 도박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남자는 현수막을 가리키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도둑이라면 운과 다른사람의 마음을 읽는것정도는 기본! 첫번째 시험의 과제는 도박입니다!!”

도둑이 되기위해 전직시험을 치러온 99명의 지망자들은 도박이라는 첫번째 시험과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크레르만이 도둑과 도박이라는 단어에서 첫글자의 도자가 같으니 전직시험으로 도박이 나온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남자를 바라 보고있었다.

지망자들이 놀라던지 말던지 남자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여러분들이 하셔야 할 도박은 바로!”

막대를 잡고 열심히 외치고 있는 남자는 옷의 주머니에서 몇장의 카드를 꺼냈다. 남자를 보고있던 전직 희망자들중에서 몇명이 수근거렸다.

“뭐야? 저건 애들 장난감이잖아?”

“그래! 나도 동생이 저걸 가지고 노는거 본적 있다고!”

저 카드로 하는 게임을 아는사람들은 수근거렸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조용하게 남자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6장의 카드를 꺼내보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바로 이것! 절대영도(Absolute Zero)!”

절대영도는 1인당 카드 6장만 있으면 간단하게 즐길수 있는 게임이라서 엘리시움의 내에서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게임이였다. 적당히 종이를 오려서 만든 카드로도 할수있기 때문에 귀족들보다는 평민들에게 인기가 만은 대중적인 게임이였다.

“지금부터 모든 전직 희망자분들에게 6장의 카드를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그 카드를 걸고 도박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카드를 합쳐서 18장의 카드를 모아오시는 순서대로 다음단계의 시험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턱시도를 입은 남자는 들고있던 막대기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승부는 여기에 있는 50개의 테이블에서 하시면 됩니다! 제한 시간은 100분! 100분동안 ‘어떤방법’을 써서든 카드 18장을 모아오시기 바랍니다!”

“우우!”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하자는 것이냐! 우리는 도둑이 되려고 온거지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짓거리나 하려고 온게 아니란 말이다!”

무대의 근처에 앉아있던 몇명의 남자들이 난동을 부렸다. 오랜기간동안 준비한 후 힘들게 도둑이 되기위해 이곳까지 찾아왔다. 그런데 고작 카드게임이나 하라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였다.

“하하! 지금 애들 장난이라고 하셨습니까?”

턱시도를 입고 사회를 보고있던 남자 카실 리킨스는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있던 눈으로 불평을 이야기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입은 웃고있었지만 눈은 정면에서 바라 보았다면 얼어붙을것 같이 싸늘해보였다.

“사람은 때로는 아주 사소한 일로도 운명이 결정되어지곤 하는 아주 재미있는 존재이지요. 지금도 엘리시움의 어딘가에서는 카드패 한장에 목숨을 걸고 도박사들이 운명을 놓고 승부를 벌이고 있지요. 지금부터 여러분이 해야할일은 도박입니다. 돈을걸고 하는 도박이 아닌 도둑이 될수 있는 기회를 놓고 겨루는 도박이지요! 그런데 그런 도박이 시시하다니….”

카실의 손에 쥐어져있던 카드패중 한장이 어느새 남자의 목에 닿아있었다. 카드는 단순한 종이로 보기에는 이상하리만치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어서 남자의 목에서는 한줄기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저와 단 한순간에 목숨이 날라갈지도 모르는,그런 도박을 벌이고 싶으신겁니까?”

남자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카실은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살짝 뜨고있던 눈을 감아서 방금전처럼 사람좋아보이는 실눈으로 만들고는 말했다.

“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털썩

카실의 눈을 정면에서 바라본 남자는 어느샌가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남자의 소변으로 축축해진 바닥을 대충 닦으면서 카실이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듯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하하! 작은 헤프닝은 잊으시고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차 한분이 탈락되셨으니 남으신 분은 99분이시군요! 그럼 30분의 승자가 결정될때까지 모든분들께 행운의 여신의 축복이 따르기를!”

다시금 카실을 향해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기 시작했다.

카실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을 남기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It’s Show Time!”

99명의 사람들의 손에는 어느샌가 6장의 카드가 들려있었다.

*****

크레르는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서는 눈치채지도 못한 상황에서 주어진 6장의 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걸가지고 2번을 이기면 되는거네”

애초에 6장의 카드가 주어지니 18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2번을 이겨야했다. 한번을 이긴 상황에서는 만약 진다고 해서 다시 카드가 6장으로 돌아올뿐 기회는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주어진 6장의 카드를 걸고 한 도박에서 진다면 수중에 남아있는 카드는 한장도 없게된다. 그것들을 잘 알기에 사람들은 섯불리 게임을 하려고 하지 않고 조용하게 다른 도전자들의 눈치만을 보며 조용하게 앉아있을 뿐이였다.

“아직 다리도 아픈데 이런 앉아서 할수있는게 시험이라니 다행인걸까?”

다행히 상처에서는 더이상 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잘 움직이지는 않았다. 억지로 움직이려고 한다면 조금은 움직일수 있겠지만 조금 걷는정도가 한계일뿐 뛰거나 하는 거친 행동은 아직까지는 무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거친 행동을 요하는 내용의 시험이 아닌것은 천만 다행이였지만 크레르에게는 또 한가지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것보다 이 절대영도라는 게임 어떻게 하는거지?”

턱시도를 입은 사회자는 이것을 사용해 도박을 하라고만 했을뿐 절대영도라는 게임의 규칙은 전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역시나 도둑길드의 전직시험 답네”

룰을 알고있는 사람이 훨씬 유리했다. 트레져 헌팅이든 월담을 하는것이든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있는 도둑이 그렇지 못한 도둑보다 훨씬 유리하다. 애초에 공평한 상황이란것은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그렇기에 전직시험의 1회차 시험에서도 이렇듯 룰을 미리 알고있는 사람이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도박을 할수있는 게임이 선택되어 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최대한 빨리 다른사람들이 승부를 하는것을 구경이라도 해서 룰을 조금이라도 알아가는것이 중요했다.

일단 크레르는 손에 들고있는 6장의 카드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카드의 뒷면에는 기하학적으로 보이는 무늬들이 똑같이 그려져있었고, 카드의 앞면만이 6장의 카드가 각각 다르게 생겼다.

불(Fire)이라는 글자가 써져있는 온통 붉은색의 카드, 물(Water)이라는 글자가 써져있는 파랑색의 카드 그리고 바람(Wind)와 땅(Earth)이라는 글자가 써져있는 초록색의 카드와 고동색의 카드가 보였다. 그리고 아무런 색깔도 가지지 않은 그저 하얀색의 카드에는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흐릿한 색으로 허공(Air)이라는 글자가 써져있었다.

“절대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장의 카드는 금이라도 입혔는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카드에 쓰여있는 이름은 절대(Absolute)였다.

무색,붉은색,푸른색,초록색,고동색,금색의 6장의 카드가 크레르에게 주어진 카드 전부였다.

거의 10여분간 희망자들은 조용히 서로를 탐색하기만 했다. 결국 한 남자가 일어서더니 테이블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 무슨 승부가 되겠나! 아무나 나와서 나와 승부하지 않겠는가!”

조용히 남자를 바라 보고있던 한 여자가 일어났다.

“호호! 절대영도 게임이라면 자신 있지요. 저랑 승부를 해보는것이 어떨까요?”

눈치를 보고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그리고 누가 신호라도 한것처럼 한명 두명 승부를할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누구의 승부를 보기로 할지 잠시동안 생각한 크레르는 바로 옆의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남자와 여자의 승부를 보기로 결정했다.

남자와 여자가 제일 처음부터 자신있게 승부를 하자고 말할수 있었던것은 두명모두 절대영도의 룰을 알고있기 때문일것이고, 그런 두사람의 승부를 보는것이 룰을 알아내는데 제일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됬다. 두명은 테이블에 앉아서 상대방과 인사를 나눴다.

“나는 베어라고 하지. 어릴적에 몇번 절대영도를 해본적이있는데 이렇게 하려니 좀 창피하군”

여자도 남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저는 레인, 절대영도 게임은 자신있답니다. 지지 않을꺼예요”

레인과 베어는 상대방에게 카드패가 보이지 않게들고 한장씩의 카드를 골라서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다. 레인이 먼저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는데 베어는 레인보다 조금 늦게 카드 한장을 골라서 테이블위에 얹어놓았다.

“뭐예요? 너무 카드를 고르는 시간이 오래걸리잖아요?”

레인이 불만을 담아서 베어에게 말하자 베어는 껄껄웃었다.

“하하. 어차피 절대영도 게임은 카드를 올려두고 자신이 고른카드패를 뒤집을때만 동시에 뒤집는것이지. 카드를 테이블위에 올려두는것은 좀 늦어도 상관없지”

“뭐 그렇기는 하네요, 그럼 세팅(SETTING)이 끝났다면 오픈하도록 할까요?”

“그러지”

“오픈!”

베어와 레인이 동시에 외치며 서로의 카드패를 뒤집었다.

“윈드!”

“어스!”

베어가 내민 카드는 초록색을 띈 바람카드였고 레인이 낸 카드는 고동색의 땅카드였다.

베어가 의기양양하게 레인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무리 굳쎈 대지라고 할지라도 거친 바람의 흐름에는 그 몸이 조금씩 깍여서 어느순간 무너져 버리지. 내 바람카드가 너의 땅카드를 이겼군!”

레인이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레인은 억지로 웃어보이면서 베어에게 말했다.

“흥! 그렇게 다 이기셨다는듯이 말하지 마세요. 절대영도 카드는 2번을 이기지 못하고 3번을 비기게되면 연장전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정도는 아시죠?”

“당연하지. 그럼 바로 다음 승부로 넘어가볼까?”

베어가 테이블 위에서 뒤집어져있는 바람카드와 땅카드를 집어서 한쪽으로 쌓아뒀다. 서로에게 남아있는 카드의 수는 5장이 되어있었다.

“카드 세트(SET)!”

이번에는 베어의 준비가 빨랐다. 베어의 카드세팅이 빠른것을 보고는 레인이 미소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자신있나 보네요? 그 카드. 뒤집어 보지 않아도 어떤패인지 뻔히 보이네요”

레인은 천천히 5장의 카드들 중에서 한장을 골라서 테이블 위에 올렸다.

베어는 이상하게 기분 좋아보이는 레인을 이를갈며 쳐다보았다. 어차피 한판만 더 이기면 2번의 승리로 자신이 레인을 이기게 된다. 그렇다면 레인의 카드 6장은 자신의 것이다. 상황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레인이 테이블 위에 카드를 올려두자 베어가 말했다.

“그럼 카드를 오픈하도록 하지”

“오픈!”

베어와 레인은 동시에 서로의 카드패를 뒤집었다. 두 사람이 카드를 뒤집자 황금색으로 빛나는 빛이 뿜어져 나와서 한순간 주위가 밝아진것인가 하는 착각에 빠져버렸다.

“엡솔루트!”

“엡솔루트!”

베어와 레인이 낸것은 황금으로 빛나는 절대카드 2장이였다. 베어는 아쉽다는듯이 입맛을 다셧다.

“쳇! 속성카드를 모두 이기는 절대카드를 냈군. 내가 절대 카드를 내지 않았다면 네가 이겼다는것이지. 그리고 내가 절대카드를 내도 비긴다. 꽤나 좋은 전략이군!”

“비긴게 아쉬울뿐이군요”

베어가 두장의 절대카드를 바람과 땅카드가 모여있는 뭉치속에 넣으면서 이죽거렸다.

“하지만 방금전에 네가 말한 대로 내 카드를 다 알것 같다는것은 거짓말이군. 만약 내가 절대카드를 낸것을 알았다면 너는 절대카드와 비기는 카드인 절대카드를 내는게 아니라 다른 모든 카드에게 지지만 유일하게 절대카드를 이기는 허무카드를 냈어야 해! 하지만 네가 낸 카드는 절대카드, 아마 무서웠겠지. 내가 낸 카드가 절대카드가 아니라 평범한 속성카드 였을지 아닐지 말이다. 그렇다면 네가 허공카드를 냈다면 너의 2연패, 즉 나의 승리였지! 그래서 무서워서 절대카드라는 안전한패로 도망을 친것이로군. 하하! 그래서 겨우 이길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거지!”

“크윽”

레인은 정곡을 찔린것인지 신음소리를 내밷었다.

“흥!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요!”

“하하. 내가 보기엔 이미 끝난것으로 보이는군! 너 같은 겁쟁이 계집애에게 이기는것은 누워서 사탕먹기만큼 쉬운일이지!”

결국 승부는 다시한번의 무승부를 거쳐서 베어의 승리로 돌아갔다. 레인의 카드패를 손에 넣어서 12장의 카드를 손에 넣은 베어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의기양양 해져서는 시험장 밖으로 나가는 레인의 뒷모습을 보고는 웃고있었다.

“헤에, 그래도 규칙을 조금은 알거 같네”

절대영도라는 게임은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카드를 내고 그 카드를 동시에 뒤집어서 카드의 강약을 비교해서 강한쪽이 이기는 간단한 게임이다. 단지 2장의 특수카드인 절대카드와 허공카드가 절대영도게임 최고의 변수였다.

물,불,바람,땅이라는 4장의 속성카드는 서로의 속성에 따라 비기거나 이기거나 진다. 4대원소에 기본으로 한 서로의 강약에 따라 절대적인 강함도 없고 절대적인 약함도 없다. 그런데 절대카드와 허무카드는 특별했다. 절대카드는 모든속성의 위에 있어서 모든 속성카드보다 강하다. 하지만 모든 속성에게 지는 가장 약한카드인 허무카드를 만났을때 자신의 강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멸시켜버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무카드는 사용하지 않고 원소카드들과 절대카드만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 허를찌르는 강함만을 가지고 있을뿐 허공카드를 사용해서 졌을경우에는 엄청난 패널티가 있기 때문이다.

“뭐 일단은 사용방법이 확실한 이 속성카드와 절대카드만을 가지고 승부를 해봐야겠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것처럼 보이는 순백의 허공카드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크레르는 아직까지 이 절대영도라는 게임에 있어서 허공카드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절대영도라는 게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던 크레르에게 베어가 말을 걸었다.

“이봐. 나랑 승부하지 않겠나? 보아하니 규칙도 잘 모르는거 같은데 내가 잘 알려줄테니 어떤가? 승부해보는게”

베어는 아까부터 자신의 주위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소녀가 정말 만만해 보였다. 룰도 잘 몰르는듯 싶었고 조금 겁만주면 카드를 던져버리고 울면서 도망쳐버릴것 같이 생겼다. 하지만 그러면 왠지 주변의 경쟁자들에게 체면이 안설거 같았다. 그냥 조금 좋은말로 꼬셔서 승부를 하게한후에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이겨버리고 저 소녀의 카드를 챙긴다. 그러면 18장의 카드를 얻게되고 자연스럽게 1차관문을 통과하는것이 되는것이다.

마치 사탕 줄테니까 이 아저씨 따라가지 않을래라고 말하는듯한 표정으로 베어는 크레르를 바라보았다.

크레르는 아직까지는 승부를 시작할 생각이 없었다. 시간도 거의 80분 가까이 남아있었고 절대영도의 룰도 전부다 아는것은 아니였다.

“아직 게임을 할생각은 없..”

크레르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베어의 커다란 손이 크레르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승부 하지 않겠나?”

승부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손에 들고있는 카드를 뺏어갈것만 같았다.

만약 다리가 무사했다면 도망이라도 갔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무리였다.

‘어쩔수 없이 절대영도로 승부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베어에게 어깨에 올려둔 손이나 치워달라고 말을 하려고 할때 베어의 손을 잡은 다른 손이 있었다.

“덩치만 커다랗게 생기신 아저씨! 숙녀분이 싫어 하잖아요! 그렇게 승부하고 싶으면 이쪽이랑 하는게 어때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이 사람 좋아보이는 실눈으로 베어를 노려보며 크레르와 베어의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

몇명의 도전자들이 패해서 시험장을 나서는것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이겨 12장의 카드를 모아 한번만 더 이기면 합격이 확정되는 자들이였다. 12장의 카드를 모은 자들중에는 순수하게 실력이나 운으로 승부에서 이긴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자들도 있었다.

‘그렇게 어렵다던 전직시험이란 말인가? 상대방이 고른 카드가 뭔지만 알면 이기는것은 너무도 쉽다. 나는 이곳에 시험을 치러 혼자 온게 아니라 동료들과 같이 왔지. 구경꾼인척 상대방의 카드를 보고있던 동료의 사인을 보고 상대방의 카드를 이기는 카드를 내면 아주 간단하게 승리할수 있지. 그렇게 2번 이긴다음에는 다른 동료들을 도와주면 모두 합격할수 있다. 들킬확률도 극히 적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봐 애초에 이곳에 왔을때부터 동료들과는 멀리 떨어져서 앉아 었기에 내가 동료들과 팀을 짜서 전직시험을 보고있다는 사실을 아는사람은 우리뿐이지’

브룩스는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대전상대를 쳐다보았다. 역시나 1패를 해서 그런지 카드를 매우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 브룩스가 한번만 더 이긴다면 저자는 2연패로 카드 6장을 빼앗기는 상황이였기에 벌써 3분이 다 지나도록 패 고르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브룩스도 상대방이 카드를 내기 전까지는 카드를 낼수 없었기에 마치 열심히 고민중인듯한 시늉을 하면서 카드패를 바라보다가 슬쩍 동료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거라면 통한다!”

브룩스의 대전상대는 이거라면 반드시 이길수 있다는듯이 자신만만하게 카드를 테이블 위에 세팅했다. 거의 10여분간의 고민끝에 골라낸 카드였다.

대전상대가 오랜시간 고민끝에 카드를 냈으니 이제는 동료에게 상대가 고른 카드가 어떤카드인지 신호를 받은후 그 카드를 이기는 카드를 내면 간단하게 상대방의 카드를 빼앗을수 있었다.

‘신호를 안보내고 뭐하는거지?’

분명 상대가 카드를 고르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려는 순간 신호가 날라왔어야 됬다. 그런데 몇초의 시간이 더 흘렀는데도 동료로부터의 신호는 오지 않았다. 카드를 들고있던 브룩스의 손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용의주도 하시군요. 분명 저는 어떻게든 카드18장을 모으라고 했습니다. 비록 속임수를 쓰거나 상대방을 속여서 카드를 손에 넣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용납가능한 범위내의 행동입니다”

“네, 네놈은!”

인기척도 없이 브룩스의 곁에 나타난 카실의 손에는 브룩스의 동료들이 정신을 잃은채 잡혀있었다.

“하지만 그 트릭(속임수)이 이렇게 쉽게 들통나 버린다면 자격미달 입니다. 속임수를 사용 하실거라면 도박의 신마저 속일수 있을 고난이도의 트릭을 쓰셔야지 이렇게 저같은 사람한테도 들킬정도로 미숙한 트릭으로 승리할려고 하시다니”

브룩스가 가지고있던 12장의 카드는 어느샌가 카실의 손으로 옮겨져서 갈기갈기 찢겨져있었다.

“이 시험을 너무 우습게 보신거 아니십니까?”

6장의 카드는 승부를 위해서 손에 쥐고 있었지만 나머지 6장의 카드는 품속에 잘 숨겨 두었었다. 그런데 브룩스가 눈치도 못챌정도로 순식간에 브룩스의 카드들을 훔쳐낸 카실의 솜씨는 무서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브룩스는 카실을 향한 증오심만으로 가득차있어서 냉정한 판단은 불가능했다.

“이 자식이!”

브룩스는 허리에 차고있던 검을 빼어들고 카실을 향해 휘둘렀다.

“상대와의 실력차이를 생각 못하고 무턱대고 덤벼드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고 부릅니다”

도둑전직 시험을 보기위해 상당히 수행을 쌓은것인지 브룩스의 검은 날카롭게 상체를 노리고 찔러들어왔다. 하지만 브룩스의 공격을 카실은 사회를 볼때부터 들고있던 흰 막대로 간단하게 막았다.

“그런 바보가 합격할 정도로 전직시험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카실은 브룩스가 온힘을 다해 휘두른 검을 막대로 막으면서 교모하게 몸을 옆으로 이동했다. 카실의 손에 들린 막대기는 브룩스의 검을 막아 내고는 자연스럽게 이동해서 브룩스가 검을 쥐고있던 손을 강타했다.

“읍!”

갑자기 손목을 맞자 브룩스는 들고있던 검을 땅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런 브룩스에게 더이상의 공격을 하지 않은채 카실이 말을 이어갔다.

“아마 실전이였다면 땅에 떨어진것은 검이 아니라 당신의 목이였을 겁니다”

여전히 웃고있는 카실의 말을 들은 브룩스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살기가 순식간에 브룩스의 몸을 관통했기 때문이였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마 이상하다는것을 느낄수 있을겁니다. 왜 3명당 한명의 합격자가 나와야하는데 합격자의 수가 30명뿐이 되지 않는가 하는점. 이 자리에 계신 모든분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카실은 막대로 브룩스를 가리키며 순식간에 조용해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분처럼 미숙한 트릭으로 시험을 통과하려고 한사람의 카드는 처분되기 때문입니다”

카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해할수 있었다. 3명당 한명의 합격자가 나온다면 아까 한명의 탈락자가 있었지만 그래도 33명의 합격자가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1차시험의 합격자는 30명뿐이라는 것을 전제로 1차시험이 치루어 지고 있었다. 어떤수를 써도 괜찮다. 속임수를 쓰던지, 남의 카드를 훔치던지 어떻게 해서든 18장의 카드를 구한자만이 1차시험에서 합격할수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것을 들킨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은 탈락하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수만큼 카드는 폐기된다. 그렇기에 33명보다 적은 30명만의 합격자만이 1차시험을 통과하게 되는것이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사람들을 카실은 여전히 사람좋아보이는 실눈으로 바라보며 외쳤다.

“도박이 시작된지 30분! 아직 한명의 합격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건투하시기를!”

카실은 넋이 빠진 브룩스와 브룩스의 동료를 데리고 시험장의 밖으로 나갔다. 트릭을 썼었던자와 앞으로 쓰려고 했던자들의 머리속이 여러가지 상념으로 가득찼다.

적은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한사람뿐만이 아니라 감독을 하고있는 도둑길드의 길드원, 그들 전부가 적이였다.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는 카실을 보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괴물…!”

그 말을 들은것인지 아닌지 카실은 이죽거렸다.

“저같은 평범한 사람을 보고 괴물이라면 제 동생을 보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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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는 다잡은것 같은 먹이감을 채갈려는 소년을 노려보았다. 왠지 어디서 많이본것 같은 실눈이 기분나빠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뭐야!”

“그러니까. 그렇게 승부가 하고 싶으면 저랑 해보자는거죠. 카드 6장을 걸고 하는승부, 그게 하고 싶은거 맞으시죠?”

실눈의 소년은 6장의 카드를 들고는 베어의 눈앞에서 팔랑거렸다.

“애송이놈이..!”

베어는 저 건방져 보이는 실눈이 기분나쁜 소년에게 매운맛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다 잡은 고기를 놓치기는 싫었다. 마치 정의의 기사인것처럼 등장했지만 사실은 그것은 미끼일뿐 엄청난 실력을 숨기고있는 고수일수도 있었다. 그냥 저 약해보이는 소녀와 억지로라도 시합을 벌이면 모든것이 다 잘 풀리는것이다.

“설마, 아저씨처럼 자신만만하게 승부를 신청하신분이 저같은 애송이의 도전은 피하시진 않겠죠?”

어느새 몇명의 사람들이 베어와 소년의 실랑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년은 정말이지 시골에서 도시로 방금전에 올라온듯한 모습에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정도의 실눈덕에 정말 어리숙해 보였다. 그런데 그런 소년의 도전에 망설이고 있는 베어는 더욱 더 한심해 보였다.

“저기 저사람 저런 어리버리해 보이는 애의 도전도 피하고 있네, 겁먹었나봐”

“그렇군. 생긴것과는 다르게 겁이 많은가 보군.하하”

수근거리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베어는 더욱 열이 받았다.

‘만약 진다고 해도 나에겐 아직 카드가 6장이 남아있는 셈이다. 이렇게 개망신을 당하고도 뺀다면 사나이 베어의 이름이 울겠지’

실눈의 소년은 마치 자신이 기사라도 된듯이 크레르를 지키고 서서는 6장의 카드를 베어의 눈앞으로 흔들고 있었다.

“그래. 네 도전 받아들이기로 하지”

실눈의 소년이 씨익 웃었다. 왠지 불길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소년은 테이블로 향하면서 크레르에게 한쪽눈을 찡그려보였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시길. 반드시 승리해서 당신께 그 승리를 바치도록 하지요!”

마치 자신이 수습기사라도 된듯이 말하는 소년을 보고 크레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일단은 소년과 남자의 승부를 지켜보기로 했다.

베어가 테이블에 털석하는 소리가 날정도로 거칠게 앉으면서 기분나쁜 실눈에게 말했다.

“어쨋거나 승부를 하게 되었으니 통성명 부터 하도록 하지. 나는 베어라고 한다. 네놈의 카드 곧 내손으로 들어올거다”

실눈의 소년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의자에 깐후 크레르에게 앉으라고 하고는 다른 테이블의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쉽지만은 않을겁니다. 전 알테미안이라고 하죠. 아 숙녀분은 그냥 알테라고 불러주세요”

알테미안은 어느새 시선을 옆에 앉아있는 크레르로 옮기고는 베어가 아닌 크레르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크레르는 얼떨결에 알테미안의 말에 대답해버렸다.

“어..어? 아 난 크레르라고 해”

“헤에, 역시나 이름도 아름다우시군요”

완전히 무시당한게 어지간히 열받는지 베어는 테이블을 쾅하고 두들겼다.

“무시하는거냐!”

“아차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이 승부가 끝나고 하도록 하죠”

알테미안은 마치 티타임전의 간단한 놀이라도 하는듯이 여유롭게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베어는 더욱 화났지만 승부에서 무참하게 이긴후에 마음껏 비웃어 주기로 하고 지금은 참기로 했다.

“어디 네놈의 그 잘난 면상이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보도록하지”

“하하. 절 그렇게 봐주신다니 영광이군요”

베어는 어서 저 건방진 애송이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는것이 보고 싶었다. 어디서 기사들이 나오는 소설을 많이 읽었는지 하찮은 영웅심에 나선것으로 생각되었다. 전형적인 풋내기였다. 저런 타입의 애송이는 실력으로 짖밟아 주는게 최고였다. 베어는 다시한번 절대영도의 카드6장을 조심스럽게 갈무리했다.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일단 승부를 해보도록 하지”

“뭐, 그러도록 하죠”

베어는 알테미안이 카드를 정리하는 손놀림이 초보자처럼 미숙한것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하나 그것마저 실력을 숨기기위한 연극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카드를 섞었다.

“그럼 일단 카드를 세팅하도록 하지”

베어는 일단 알테미안이 카드를 세팅하는것을 보고난후 세팅을 하기로 했다. 카드를 테이블위에 세팅할때의 미세한 손놀림과 표정의 변화. 그리고 분위기로 그 카드가 무슨카드인지 추론을한다. 그것이 베어의 승리의 비결이였다.

“그럼 이것으로 하도록 할까나”

알테미안은 결국 카드 한장을 골랐는지 테이블위에 카드를 올렸다. 알테미안이 올려둔 카드를 본 사람들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으하하하. 정말 완전 생초보자 아니야? 카드를 뒷면으로 세팅하는것도 모르고 앞면으로 놓다니. 자기 카드를 완전히 다 가르쳐 주는구만! 정말 아까운걸? 저런애랑 붙었으면 카드6장은 거저 손에 넣는건데 말이지! 푸하하!”

테이블 위에는 카드가 무엇인지 볼수있게 앞면으로 놓여진 파랑색의 물(Water)카드가 놓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베어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괜히 겁먹었군. 절대영도 게임의 기초중의 기초도 모르다니. 정말 애송이였잖아? 카드가 거저 손에 들어오게 됬군!’

알테미안이 주변의 반응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라 이렇게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게 아닙니까? 제가 몰랐군요. 다시 다른걸로 올려둬도 되겠습니까?”

알테미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베어는 손에 들고있던 카드 한장을 뒤집어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크큭. 말이되는 소리를 해라. 한번 테이블에 세팅한 카드는 어떠한 상황이라도 절대 물르지 못하지. 그럼 카드를 뒤집어 보도록 할까?”

알테미안은 아쉽다는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렇군요. 뭐 룰을 모른 제 실수이니 어쩔수 없군요”

이미 알테미안의 카드는 뒤집혀져 있기에 카드 오픈은 베어혼자만이 뒤집었다. 당연하게도 베어의 카드는 고동색의 대지(Earth)카드였다.

“어스!”

“워터!”

그래도 카드를 오픈하면서 카드의 이름을 말하는 규칙은 아는지 알테미안도 자신의 카드의 이름을 외쳤다. 외치지 않아도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마저 알테미안의 카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알테미안은 특별히 당황하는 표정을 짓거나 하지는 않았다.

‘크큭. 지금 저렇게 괜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겠군. 생각만 해도 기분이 다 좋아지는군’

“끊없이 흐르는 물의 흐름이라도 굳센 대지 앞에서는 그 흐름을 잃게 되지. 내 대지 카드가 네 물카드를 이겼군!”

알테미안은 희극에 나오는 배우처럼 억지스럽게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져 버렸군요. 아이고!”

베어는 테이블위에 올려져있는 물카드와 대지카드를 집어서 테이블의 구석에 쌓았다.

“아직 승부는 한번이 더 남았지. 바로 승부를 시작하도록 하는게 어떤가?”

“잠시만요. 다음 승부에 대해 한가지 건의사항이 있는데 말입니다만”

베어는 승리의 흐름을 잃고싶지 않아 바로 다음 승부를 하고 싶었는데, 알테미안의 갑작스런말에 조금은 당황했다.

“뭐냐. 물러달라거나 그런 황당한 부탁은 사절이다”

엎드려서는 바지자락을 잡고 제발 물러주십시오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모습도 꽤나 기대가 되기는 했지만 일단은 카드를 챙기는게 더 중요했다. 거의 다 이긴 승부를 놓치고 싶은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알테미안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뒤적거리더니 금색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한개 꺼내서 베어의 앞에 내밀었다. 1골드짜리 금화 한닢이였다.

“판돈을 높이고 싶어서 그런데요. 저는 카드 6장과 이 1골드를 걸기로 할테니 아저씨는 12장의 카드를 전부 거는거 어떻습니까?”

베어는 저 애송이가 어처구니없게 져버리는 바람에 머리가 살짝 이상해진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번 이긴 베어쪽이 몇배는 유리한 승부인데도 갑자기 판돈을 올리자고하는 애송이의 생각을 베어는 전혀 짐작도 할수 없었다.

1골드라면 엄청난 금액이였다. 저 애송이는 의심할 여지없는 초보자다. 베어는 자신의 승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6장의 카드는 물론 거금 1골드까지 공짜로 생긴다니 엄청난 행운이였다.

속마음을 짐작할수 없을것만 같은 애송이의 의중을 읽어보려는지 베어는 알테미안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베어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작은 의문은 알테미안의 옷을 보고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고보니 저 애송이놈, 옷이 엄청나게 고급이군. 어디 귀족의 사생아라도 되는건가?’

얼핏보면 평범해 보이는 옷이였지만, 이쪽방면에는 눈썰미가 좋은 베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옷의 세단이라던지 광택이 평범한 옷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벌에 몇골드가 넘는 고급옷에서나 볼수있는 기품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큭큭. 그래. 돈이 많아서 주체를 못하는 도련님이였군. 우연히 도둑길드의 위치를 알게되고 놀러라도 온 모양이겠지. 어차피 이번에 진다면 저 애송이는 카드를 모두 잃지. 그렇기에 판돈을 조금 높여서 작은 확률이지만 대박을 노리려는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이상했던 애송이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갔다.

베어는 그렇게 알테미안이 돈많고 정의감만 앞서는 어리버리한 도련님 정도라고 완전히 단정지어버렸다.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완벽한 올인 승부를 받아 드려버렸다.

“그래. 그 조건 받아드리지”

베어는 품속에 잘 숨겨두었던 6장의 카드를 꺼내서 테이블위에 놓았다. 알테미안도 그 모습을 보더니 1골드를 자신의 카드뭉치위에 슬쩍 올려 두었다.

“지고 울지나 말거라 애송이놈. 크큭!”

카드 12장과 6장의 카드와 1골드가 걸린 승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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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요. 분명 그 소녀는 이 근처에 있을텐데. 그 향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어요”

분명히 조금 전까지 만해도 가까운 곳에서 나직하게 느껴지던 소녀의 향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소녀의 흔적을 따라 소우쥬와 7명의 노예들은 한 작은 상점에 딸려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소녀의 느낌은 이곳에서 사라졌어요. 분명, 이 장소에는 그 소녀를 찾을 수 있는 어떠한 단서가 있을 거예요”

소우쥬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면서 건물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자물쇠도 채워져 있지 않았는지 슬쩍 밀자 끼익하는 기묘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로드시여. 이 건물은 왠지 위험한 느낌이 듭니다. 조금 주의를…”

켄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람이 빠지는듯한 쉬익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소우쥬의 목을 노리고 날아 들어왔다.

“위험이라면 이런 걸 말하는 건가요”

소우쥬의 목을 노리고 날라온 화살들은 어느새 먼지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아이들이 장난쳐둔걸 가지고 위험하다고 하는 ‘어른’은 없답니다”

상하좌우에서 순식간에 발사된 화살들을 애들 장난으로 취급하며 소우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로 들어가는 소우쥬를 가로막는 몇 가지의 ‘장난’이 더 있었지만 소우쥬는 그것들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건물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진입해갔다.

“아차, 켄턴씨?”

“로드시여. 분부를!”

켄턴은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이 정중한 말투로 소우쥬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 소녀가 이곳에 없을 수도 있으니 노예들을 데리고 다른 곳을 찾아봐 주시겠어요?”

“명 받들겠습니다”

켄턴과 나머지 6명의 노예들은 소우쥬의 명령대로 혹시나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르는 소녀를 찾기 위해 마을의 중앙으로 향했다. 지금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마을광장이라면 소녀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켄턴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는 그럼 이곳을 찾아 보도록 하지요”

소우쥬는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듯이 편안한 걸음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걸었다. 눈으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소우쥬에게는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어둠의 일족인 소우쥬에게 있어서 어둠이란 존재는 너무도 친밀한 존재. 소우쥬는 너무나 익숙한 몸놀림으로 구불구불한 복도를 걸어갔다. 그 소녀가 있을지 모르는 심연 속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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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미안은 머리를 몇번 긁적이더니 카드를 한장 골라서 테이블위에 엎어두었다.

“크큭, 이번엔 뒷면으로 제대로 엎어두었군”

알테미안은 한번의 패배를 맛봤기에 이번에는 제대로 자신이 고른 카드를 상대방이 볼수 없도록 뒷면으로 테이블 위에 놓았다.

‘역시 초보자군. 카드를 골라서 테이블에 세팅을 할 때 먼저 하는쪽이 불리하다는 상식중의 상식도 모르다니’

절대영도는 카드를 뒤집는 것만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규칙만이 있을 뿐 카드를 골라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순서에는 크게 제약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카드를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쪽이 조금 더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카드를 늦게 올려두는 쪽은 상대방이 카드를 놓을 때의 분위기와 미묘한 느낌의 차이 등으로 상대방이 무슨 카드를 놓았을지 예측해보고 카드를 고를수있기 때문이다.

비록 카드는 보이지 않지만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을 정도로 노련한 사람이라면 대충은 상대의 카드를 예측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아마도 절대카드나 속성카드 중에서 한 종류겠지’

베어가 생각하기에는 알테미안이 허공카드를 냈을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허공카드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능력을 알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허공카드를 선택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절대영도의 기본적인 룰도 착각할 정도로 바보 같은 소년이 그런 수 읽기를 사용할 리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저 나와있는 카드는 절대카드나 속성카드 중 한장인듯 싶었다.

‘그렇다면, 절대카드겠군’

첫판에서는 절대카드를 두명 다 사용하지 않았다. 두번째 판에서 게임이 끝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는데 절대카드라는 최강의 카드를 사용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속성카드일 확률도 분명 존재하지’

낮긴 했지만 속성카드중에 한장을 골라서 냈을 확률도 분명 존재했다. 절대영도를 처음하는 초보자들은 대부분 속성카드를 사용했을 때는 한번을 져도 괜찮지만. 특수카드인 절대카드와 허공카드를 사용했다가 지게 된다면 이기고 있던 게임도 역전이 나오게 된다. 그렇기에 허공카드는 물론 절대카드의 사용도 꺼리는 초보자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알테미안이 절대영도를 접한지 얼마안되는 초보자라는 가정하에서는 이번에도 속성카드가 한번 더 나올 확률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그렇다면 답은 한가지군. 절대카드라면 통한다!’

현재 나와있는 카드는 물카드와 대지카드. 속성카드로만 승부를 한다면 확률상 조금이지만 알테미안이 유리한 상황이라도고 볼수 있었다. 하지만 베어와 알테미안 양쪽다 모두 특수카드를 한장도 사용하지 않았기에 속성카드들의 비교는 무의미했다.

베어는 조심스럽게 금빛으로 빛나는 절대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절대카드가 아직 손에 있다는 사실만 으로도 절대영도 게임에서 얼마만큼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베어는 잘 알고있었다.

알테미안이 허공카드를 낼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수 있었다. 허공카드란 상대방의 눈치를 최후의 최후까지 살펴서 상대방의 허를찔르는 일격필살의 무기이지만 실패했을시의 핸디캡은 엄청났다. 그런 카드를 베어가 카드를 골라서 내기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테이블위에 세팅할리가 없었다.

지금 상황은 알테미안이 허공카드를 사용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볼수 있었고 그렇다면 알테미안의 카드는 절대카드나 속성카드 두 종류중 한가지라는 소리가된다. 그렇다면 베어가 절대카드를 골라서 승부를 한다면 최악의 상황이라도 비기고 높은확률로 이긴다. 만약 양쪽 다 절대카드를 내서 비기게된다 할지라도 승부는 1승 1무라는 베어에게 유리한 상황이였다. 게다가 베어는 알테미안같은 초보자에게는 불가능한 상대의 수 읽기에 능숙했다.

결국 베어는 2회전이 시작하자 마자 카드를 골라서 낸 알테미안과는 다르게 거의 3분에 걸쳐서 신중하게 카드 한장을 골라서 테이블 위에 엎어두었다.

당연하겠지만 그 카드패는’절대(Absolute)’카드. 지금 상황에서 베어가 선택할수있는 최선의 카드패였다.

“세팅이 끝났다”

베어는 나머지카드를 포개어서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게 잘 갈무리 한후에 테이블 중앙에 놓여진 2장의 카드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두명이 동의를 하고 그 후에 자신들이 고른 카드패를 오픈해야 했는데, 알테미안은 그저 여전히 감은것인지 뜨고 있는것인지 모를 실눈으로 크레르를 쳐다보고 있을 뿐 베어에게는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

베어는 또다시 손끝까지 뜨거워질 정도로 머리가 끓어오르는 듯했지만 억지로 참았다. 어차피 거의 다 이긴 승부였다. 조금만 더 참으면 애송이의 6장의 카드와 1골드라는 엄청난 돈까지 생기는것이다. 만약 이번 승부가 비긴다고 해도 베어는 다음번이나 아무리 못해도 다 다음번까지는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알테미안이 이번 승부에서 절대카드를 내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알테미안의 최후의 한걸음일 뿐이다. 이제 더이상 안전하게 도망 칠수있는 카드는 남아있지 않다. 남은것은 속성카드로만 벌이는 진검승부뿐. 베어는 오히려 그런 진검승부를 더욱 잘했고. 즐기고 있었기에 알테미안이 절대카드를 내서 비기는것을 기대해버릴 정도였다.

“자 카드를 오픈하도록 해보실까?”

베어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자 크레르에게 자꾸만 이것저것 말을 걸어서 귀찮게 하고 있던 알테미안이 그때서야 베어를 바라보았다.

“아차. 깜빡했군요. 승부하고 있던 중이였죠?”

마치 자신과의 승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알테미안을 본 베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애송이놈. 어디 카드가 오픈되고도 그 헤실거리는 얼굴이 유지되는지 두고보마”

“하핫. 제 걱정까지 해주시다니 이거 감사해서 몸둘바를 모르겠군요”

알테미안은 정말로 부끄럽다는 듯이 콧잔등을 긁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주먹이 날라가지 않자 베어는 자신의 인내심이 이정도까지 대단했던가하는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바로 뒤집으면 됩니까?”

알테미안이 베어가 카드를 뒤집기도 전에 뒤집으려고 하자 베어는 그냥 가만히 놔둬서 반칙패 시켜버릴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이겨봤자 재미가 없기에 그것은 관두기로 했다.

“카드 오픈은 동시에 하는게 규칙이다”

“아 그렇군요. 하핫, 좋은거 많이 배웁니다”

베어는 저 애송이를 만난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헷깔리기 시작했다. 분명 쉽게 카드6장과 금화 한개를 손에 넣을수 있다는 것에서는 행운인듯도 싶었지만. 끊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하도 이를 갈아댔더니 턱이 다 얼얼할 정도였다. 하여간 정말 황당한 애송이라는게 베어의 알테미안에 대한 평가였다.

겨우 베어와 알테미안이 동시에 카드에 손을 대고서야 베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카드 오픈 개시!”

베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베어와 알테미안은 자신의 카드패를 뒤집었다.

“오픈!”

“오픈!”
 

 

 

 

 

 

 

 

 

 

 

 

 

 

 

알테미안의 카드패가 뒤집히면서 금빛이 얼핏 보이자 베어는 미소를 지었다.

‘통했다!’

“절대(Absolute)”

“절대(Absolute)!”

알테미안이 낸 카드패는 절대카드. 만약 베어가 속성카드를 냈다면 알테미안의 절대카드에게 졌겠지만, 베어가 낸 카드도 절대카드였기에 승부는 무승부였다.

“절대카드로 이번 한번은 도망갔지만. 이제 더이상 네가 특수카드를 사용할수는 없겠지. 그럼 남은 승부는 속성카드로만 벌여야 하지. 너는 단 한번이라도 지면 안되는 상황. 게다가 속성카드로만 승부를 한다면 내가 훨씬 유리하다. 네놈이 이길수 있는 확률이 채 1%가 되지 못하는것 같군. 크하핫!”

베어는 저런 애송이를 상대로 조금이나마 두려워했던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비록 이번에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럴 확률이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긴 했어도 그래도 조금이나마 불안해 했던 애송이의 카드가 허무(Air)카드가 아닌게 확실해 졌으니 비록 비긴 승부지만 한숨 돌린것 같은 심정이였다.

“절대카드라면 이길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알테미안은 회심의 일격이 통하지 않은것이 몹시도 분한지 자신이 낸 절대카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내가 저 애송이를 이겨서 카드를 18장으로 만든다면 내가 최초의 합격자가 되는셈이지. 비록 선착순대로 순위가 매겨지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등으로 1차시험에 합격한다니 왠지 기분이 좋단 말이지’

베어는 바로 다음 승부를 시작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고는 알테미안이 좌절하는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했다.

알테미안은 당장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테이블의 끝부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크레르가 알테미안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알테군? 지금 상황이 그렇게 불리한거야?”

“크윽…레이디께는 정말이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겨서 그 승리의 영광을 레이디에게 바칠려고 했는데. 이런 한심한 모습이나 보여 드리다니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죽고 싶은 기분만 드는군요”

왠지 알테미안의 말에서는 그 어떤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크레르는 그런 알테미안을 바라보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알테미안이 저런 무모한 승부를 벌이고 있는게 사실은 다 자기 때문아니였던가? 크레르는 남자가 자신때문에 저렇게 울것같은 상황에 빠지게 된것이 정말 미안했다.

“지더라도 걱정하지 마! 만약 이번 승부에서 지게 되면, 내가 내 카드 6장을 빌려줄께. 그걸 사용해서 알테군이 한번 더 승부를 해서 12장으로 불려서 나한테 6장의 카드를 돌려주면 되는거야. 어차피 나는 반드시 이 시험에 합격해야 되는 이유는 없으니까. 만약 진다고 해도 괜찮아”

크레르는 우물쭈물 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뭐 나도 일단은 합격하고 싶지만 말이야. 헤헷”

사실 크레르도 반드시 시험에 합격해야되는 이유가 있었다. 샹그릴라를 보다 안전하게 즐기기 위한 정보를 얻고, 위급할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단검 사용법을 반드시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불리한 승부를 하고, 그 승부에서 이겨 자랑스럽게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싶다던 소년의 성의를 무시하기도 싫었다. 어차피 지금 가장 중요한것은 오늘밤동안 어딘가에 숨은채로, 자신을 쫒고있던 병사들이 포기하고 돌아 가는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이 돌아간다면 전직시험은 이번이 아니라 한달뒤에 있다던 다음기회에 노려도 되는것이다.

알테미안은 정말로 소중한 6장의 카드를 자신에게 빌려 준다는 크레르를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말로는 빌려 준다는 것이지만 사실상은 완전히 양도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테미안 자신의 실력은 바로 옆에서 지켜본 크레르가 가장 잘 알고 있는것이다. 이긴다는 확신도 없었고, 만약 이긴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돌려받을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이 아직 가지고 있는 기회를 양도해 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 크레르를 본 알테미안에게 ‘정말’ 저 작은 소녀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생기려 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은채 알테미안은 정말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크레르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 아름다우신 외모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아름다우시군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길. 아직 승부는 끝난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보이겠습니다!”

“푸하하. 완전히 신파극을 찍고있군. 닭살돋는 행동은 그만하고 하던 승부나 마저 하지 않겠나?”

바보같이 자신의 카드를 애송이에게 넘겨준다는 여자아이나, 그런 여자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멋